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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스토리]'피에타' 김기덕 감독의 남다른 패션 감각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2-09-11 14:20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영화제에서 입었던 의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은 시상식에서 연미복이 아닌 우리나라의 전통 의상을 입고 한국의 멋을 알리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김기덕 감독이 영화제에서 입은 의상은 윗 옷이 140만원대, 바지는 60만원대로 총 200만원대의 전통 의상으로 인사동 옷가게 '니히'에서 직접 구입한 옷이다. 매장에 김기덕 감독이 입었던 옷이 진열되어 있다. 인사동=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2.9.10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영화제에서 선보인 패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한국의 전통미가 느껴지는 먹색 갈옷을 입고 맨발로 낡은 신발을 구겨 신은 모습으로 레드카펫에 등장한 김감독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고급 드레스와 턱시도 사이에서 독특한 아우라를 풍겼다. 듬성듬성 흰머리가 섞인 꽁지머리와 너그러운 웃음도 여기에 한몫 거들었다.

김감독은 4일(현지시각) 열린 '피에타' 공식 상영과 황금사자상 트로피를 안긴 8일 폐막식 등 베니스영화제 공식 행사에서 모두 같은 차림을 선보였다. 이뿐만 아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출연했던 KBS2 '이야기쇼 두드림'에서도 이미 영화제에서와 똑같은 패션을 선보였고, 영화제 참석을 위해 이탈리아 베니스로 출국하기 전 국내 언론과 가졌던 기자간담회에서도 똑같은 하의와 신발에 상의만 밀리터리룩으로 다르게 매치했다. 사실 알고 보면 한가지 옷으로 여러 행사를 소화한 '단벌 신사'였던 셈이다.

김감독은 베니스영화제를 위해 서울 인사동의 니히(NIHEE)라는 옷가게에서 이 갈옷을 구입했다. 니히는 면, 마, 실크 등 자연소재에 감물로 천연염색을 한 옷감으로 직접 디자인한 옷을 판매한다. 10일 직접 찾아간 니히 매장은 김감독으로 인한 유명세와는 달리 인사동의 한적한 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매장 크기는 소박했지만 단정한 분위기와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옷이 주인장의 정갈한 솜씨를 엿보게 했다.

니히의 사장이자 디자이너인 김대표는 "대략 2주 전 쯤에 김기덕 감독이 베니스영화제에 참석한다면서 상의와 하의를 한벌씩 구입하셨다"며 "입어보지도 않고 그 옷들을 가져가셨는데 색감이나 디자인 등을 보는 안목이 남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상의와 하의 모두 여성용이지만 품이 넉넉한 편이라 김감독처럼 남자들도 종종 구입해 입는다는 설명. 김감독이 구입한 옷은 감물 염색 후에 먹을 한번 더 염색한 것으로, 상의는 마 소재이고 하의는 면 소재로 만들어졌다. 디자인은 비슷해도 소재와 색상이 전부 달라서 김감독의 옷도 단 한 벌밖에 없는 것이라고 한다. 김대표는 "영화제 참석 전에 옷매무새를 수선해줄 테니 매장에 다시 한번 들러달라고 얘기했더니 김감독이 괜찮다고 하면서 쇼핑백도 마다한 채 자신의 가방에 옷을 넣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소탈해 보였다"는 에피소드도 덧붙였다.

김대표는 김감독의 '시상식 패션'에 대해 거듭 놀라워했다. 원래 하의는 밑단을 좁게 매서 윗부분을 풍성하게 부풀려 입도록 디자인됐지만 김감독은 밑단을 풀어서 입었고 상의의 소매도 걷어서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대표는 "이 옷에 신발을 잘 매치하기가 쉬운 게 아닌데, 약간 낡은 신발을 구겨 신어 자연스러움을 돋보이게 한 김감독의 탁월한 감각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라"고 말했다.

김감독이 입은 상의는 140만원대, 하의는 60만원대로 상하의를 합쳐서 대략 200만원 정도 된다. 신발은 캠퍼의 제품으로 30만원대로 알려져 있다. 얼핏 옷의 가격대가 다소 높은 듯 생각되지만, 물에 삶아서 살균처리를 한 원단에 생감의 즙으로 감물을 들여 햇볕과 바람에 말리는 작업을 수차례 거듭하는 등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격대가 그렇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대신 감물의 코팅효과로 인해 때가 안 타고 통풍이 좋아서, 외투의 경우 세탁 없이도 7~8년 정도 입을 수 있다고 한다. 김감독의 '단벌 패션'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해되는 대목이다.

"김감독께서 어떻게 알고 저희 가게를 찾아오셨는지 모르겠다"는 김대표는 "사실 김기덕이 누구인지 잘 몰랐다. 김감독을 만난 이후에야 영화들을 찾아봤다. '아리랑'과 '비몽' 등의 작품에 스며 있는 불교 철학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김감독은 분명 '따뜻한 천재'일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혹시 감독님께 누를 끼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며 매장 사진 촬영도 부담스러워했지만 "수상을 축하드린다"는 인사는 잊지 않았다.

한편, 한국영화 최초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은 11일 오전 조민수 이정진 등과 귀국해 오후에 수상기념 기자회견을 가질 계획이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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