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 남남커플, 로맨스 없어도 재미가 '쫄깃'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2-08-08 14:38 | 최종수정 2012-08-24 17:56


사진제공=MBC

왕도 연애하고 의사도 연애하고 백수도 연애하고 '드라마에선 온통 연애만 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안방극장에 거센 '남남풍(男男風)'이 불고 있다. 그 바람의 진원지는 MBC '골든타임'과 tvN '응답하라 1997'. 최근 종영한 MBC '닥터진'과 SBS '유령'에서도 남자들의 걸죽한 우정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사랑은 아니지만 우정보단 조금 애틋한 '남남커플'의 화학작용이 남녀의 로맨스를 밀어내고 드라마의 필수 흥행 요소로 자리잡았다.

요즘 가장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남남커플은 '골든타임'의 이성민과 이선균이다. 수술실의 상황이 위급할수록 더욱더 미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최인혁(이성민)과 스승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흡수하는 인턴 이민우(이선균), 그리고 두 배우의 탁월한 연기호흡은 시청률 1위의 견인차다. 드라마 '파스타'와 영화 '체포왕' 등 무려 5편의 작품에 함께 출연하며 쌓은 관록이 드라마에 배어 나온다. 극 중 해운대 세중병원에 외상센터가 생기면서 두 남자는 최근 '드림팀'으로 뭉쳤다. 인혁에게 감흥을 받아 개인병원의 억대 연봉을 버리고 인턴 생활을 시작한 민우는 인혁을 따라서 외상센터에 자원하고, 인혁은 환자에 대한 헌신과 재능을 보이는 민우를 뒤에서 지켜보며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살뜰하지 않아도 진심의 깊이가 남다른 두 남자의 관계는 울림이 크다. 드라마가 중반을 훌쩍 넘기도록 주인공인 이선균과 황정음의 러브라인이 별다른 발전이 없어도 시청자들이 크게 게의치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진캡처=tvN
1997년 부산을 배경으로 동갑내기 친구들의 성장담을 그린 복고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아예 동성애 코드를 극에 새롭게 추가했다. 시원(정은지)을 사이에 둔 라이벌인 줄 알았던 준희(호야)와 윤제(서인국). 하지만 준희가 시원이 아닌 윤제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그려지면서 시청자들은 '멘붕'에 빠졌다. 최근 학찬(은지원)과 유정(신소율), 태웅(송종호)과 시원이 커플로 맺어지면서 외로이 둘만 남게 된 윤제와 준희는 한층 더 가까워진 분위기다. 21일 방송에선 "누구를 좋아하냐"는 윤제의 질문에 준희가 조심스럽게 "너"라고 답하면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말에 윤제는 껄껄 웃으며 장난으로 받아넘겼지만, 앞서 공군사관학교 입시에서 시력이 나빠 떨어진 윤제 때문에 준희도 면접에 불참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준희와 윤제 커플을 애틋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준희는 하드코어한 동성애가 아니라 학창 시절 동성에 호감을 품었던 경험과 감정들을 풀어낸 캐릭터"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지난 12일 종영한 '닥터 진'에도 우정과 대립을 넘나드는 '죽마고우' 김재중과 진이한이 있었다. 서자로 태어나 가문을 위해 기꺼이 이용당하는 김경탁(김재중)과 조선의 개혁을 꿈꾸는 홍영휘(진이한)는 끝내 서로에게 칼을 겨눠야 하는 운명에 처했지만 한번도 그 칼을 휘두르지는 못했다. 팽팽히 맞서면서도 눈빛에 일렁이는 처연함은 차라리 사랑에 가깝다. 김재중도 인터뷰에서 "내가 봐도 두 사람의 표정이 묘하다"며 "마지막회에 영휘가 죽음을 맞이한 경탁을 끌어안고 오열하는 장면을 찍는데 주변에서 슬프기는커녕 예뻐보인다고 하더라"고 말했을 정도다. '닥터 진'에 출연하기 전부터 친했던 데다 촬영장에 같은 차로 이동하면서 틈틈이 대본을 맞춰보기도 했다고 하니, 둘의 같한 우정이 캐릭터를 통해 재현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진캡처=MBC
9일 종영한 '유령'의 소지섭과 곽도원은 조만간 영화로 다시 돌아온다. '회사원'이란 작품이다. 이미 지난 해 12월에 크랭크업하고 가을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유령'에서 소지섭은 '소간지', 곽도원은 '미친소'라 불렸다. 그래서 '미친소간지' 커플이다. 극 초반에 권혁주(곽도원)는 김우현으로 살고 있는 박기영(소지섭)의 정체를 의심하며 대립각을 세웠지만 후반부엔 완벽한 조력자이자 둘도 없는 명콤비로 맹활약을 펼쳤다. "난 네가 싫지만 한 번도 네가 능력 없는 경찰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라든가 "같은 옷 다른 느낌", "이 XX 마음에 드네" 등 두 사람이 주고 받는 찰떡같은 대사들도 안방에 자잘한 웃음을 전했다.

'응답하라 1997' 외에는 이들 드라마 모두 러브라인을 극의 주요 갈등 요소로 삼지 않았다. 대신 선명한 캐릭터와 촘촘한 관계 설정을 토대로 캐릭터의 충돌 지점에서 에너지를 발생시켜 시청자들에게 로맨스 못지않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여기에 전문직 주인공을 내세운 장르드라마라는 점, 그리고 모두 웰메이드 드라마로 손꼽힌다는 공통점도 있다. 최근 들어 SBS '신사의 품격' 외에는 눈에 띄는 멜로물이 없었던 상황에서, 남자들의 닭살 우정 '브로맨스'(Brother와 Romance의 합성어)는 다양한 볼거리를 원하는 시청자들을 충족시키고 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사진캡처=SBS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