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 보석같은 레게 영화…무성의한 가사 번역은 실망

임기태 기자

기사입력 2012-08-21 16:09


'라스트 킹'의 케빈 맥도날드 감독의 '말리'는 세계적인 레게 아티스트 밥 말리의 일대기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입니다. 1945년 영국 출신의 백인 아버지와 자메이카의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탄생해 36년간의 밥 말리의 굵고 짧았던 삶과 죽음을 재구성합니다.

어머니, 아내, 자녀, 동료, 연인 등 주변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과 밥 말리 본인의 생전의 인터뷰를 통해 '말리'는 사적인 인간으로서의 밥 말리와 공적인 인간으로서의 밥 말리의 삶을 비슷한 비중으로 다룹니다. 아버지를 거의 만나지 못한 채 성장한 밥 말리는 7명의 여성을 상대로 11명의 자식을 낳을 정도로 바람둥이였는데 자녀들의 증언을 통해 아버지로서는 낙제점이었음을 밝히기도 합니다. 축구와 대마초를 사랑했던 밥 말리의 취향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적인 인간 밥 말리는 엄청난 음악적 성과뿐만 아니라 종교적, 정치적 역할까지 자임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상징과도 같은 머리 모양 드레드락스는 종교적 신념인 라스타파리 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두 개의 정파로 양분되어 내전을 벌인 자메이카의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에서 밥 말리는 암살의 표적이 되어 부상을 입으면서도 화해를 위한 콘서트를 위험을 무릅쓰고 개최하는 심지가 굳은 인물로 묘사됩니다. 밥 말리는 눈을 세계로 돌려 짐바브웨의 독립을 위한 곡을 부르는 등 아프리카 흑인을 지지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합니다. 혼혈로 태어나 흑인 위주의 자메이카에서도 어린 시절 인종 차별을 경험한 밥 말리는 자신의 음악이 서구의 흑인들에게는 인기가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말리'는 깔끔한 편집과 다양한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밥 말리나 레게, 자메이카 등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어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밥 말리가 활동하던 당시의 다양한 영상과 녹음 자료들 또한 눈과 귀를 즐겁게 합니다. 엔딩 크레디트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그의 음악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음이 제시됩니다.

하지만 밥 말리가 그처럼 풍부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곡들의 가사를 거의 전부 번역하지 않은 무성의한 한글 자막은 관객을 위한 기본을 전혀 갖추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은 결국 밥 말리의 노래 가사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유료로 상영되는 음악 영화의 다큐멘터리에 노래 가사가 번역되어 있지 않은 것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IMDB 등에는 144분으로 러닝 타임이 등록되어 있는데 국내에는 120분으로 개봉되어 삭제가 의심스럽습니다.

<이용선 객원기자, 디제의 애니와 영화이야기(http://tomino.egloos.com/)>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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