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건형,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 선 이 남자

김표향 기자

기사입력 2012-08-05 15:06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MBC '아이두 아이두'가 한창 방영되던 중에 한 포털사이트에서 네티즌 투표를 내걸었다. 당신이라면 박건형과 이장우 중에 누구를 택하겠냐고. 이장우에겐 몹시 미안하지만 대부분의 여심은 박건형에게 쏠렸다. 사랑하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고도 결혼을 결심하고, 기꺼이 그녀와 뱃속 아이의 주치의가 되어주는가 하면, 그 여자에게 다른 사랑이 찾아오자 쿨하게 그 사랑을 응원하는 남자. 대체 이렇게 멋진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바로 지금 여기, 제가 보여드렸잖아요. 비현실적인 건 우리가 아직 못 봤던 것일 뿐,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박건형의 다정한 목소리는 실제의 그도 드라마에서처럼 이상적인 남자일지 모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묘한 설득력 있었다. "사실 저도 조은성 캐릭터를 이해하기가 쉽진 않았어요. 캐릭터가 제 안으로부터 나와야 하는데,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 여자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했죠. '내가 왜 이 여자를 사랑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결국 '이 여자여야만 하니까'라는 것이었어요. 가장 현실적이되 판타지가 있는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게 아니라, 언젠가 정복해볼 수 있을 것만 같은 판타지 말입니다."

박건형은 이 드라마를 하며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랑과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생각도 자뭇 진지했다. "여자는 항상 서운해하고 남자는 항상 억울해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남녀의 사고방식과 기대치는 참 다른 것 같아요. 그러니까 더더욱 서로가 서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지 일방적으로 상대의 덕을 보려 하면 안 돼요. 결혼도 인격적인 준비가 필요하고요. 결혼이 주는 행복이 있으면 그 반대급부도 있으니까."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박건형의 얘기들은 '사랑학개론'처럼 흥미롭게 다가와 '공자님 말씀'처럼 정곡을 찌른다. 어른들의 성장기 같았던 '아이두 아이두'에서 박건형이 선보인 명대사들도 원래 그의 말이었을 것만 같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세상에 원래 어른은 없어요. 주름진 애들만 있을 뿐이지." "미리 줄거리 짜지 마요. 그럼 심술 나서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게 인생이니까." 같은 것들. 박건형도 "참 나다운 대사들이 많았다"고 했다. 무대에서나 카메라 앞에서나 한번도 쉬운 길을 간 적이 없었던, 그래서 "쉬우면 재미없잖아"라고 되뇌며 자신을 다잡았던 그는 극 중 인물의 말을 빌려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멘토링을 했다. "인생을 걸고 열심히 달려왔는데도 문득 허탈함과 박탈감을 느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래도 네가 온 길이 맞는 거야, 잠시 지쳤을 뿐이야'라고 손 내밀어주고 등을 토닥여줄 수 있는 사람. 이 드라마에선 그게 저였으면 했어요. 시청자들이 위로를 받았다면, 아마도 캐릭터에 제 성장을 담으려 했던 걸 잘 봐주셨기 때문일 거예요."

박건형이 혼자서 돋보이려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나 시청자들과의 호흡을 유독 중요시하는 건 오랜 무대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언제나 생방송'인 뮤지컬에선 앙상블이 개인기보다 우선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독무에서 틀리는 건 창피하지만, 군무에서 실수하면 모두의 역량을 깎아먹는 거잖아요. 그래서 앙상블에 대해선 저 자신에게 굉장히 잔인해져요. 전체적인 움직임 속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박건형은 요즘 또 한번 스스로에게 '잔인'해졌다. 오만석과 더블 캐스팅된 뮤지컬 '헤드윅'의 공연을 앞두고 '근육 감량'을 하는 탓이다. '모든 헤드윅이 다 여자같아야 하는 건가' 생각했는데 여장을 해본 뒤 생각이 좀 바뀌었다. "브래지어가 그렇게 답답할 줄 몰랐어요. 치마는 왜 그렇게 허전한지…. '아이두 아이두'에선 여자들을 이해하려고 했다면, '헤드윅'에선 좀 더 여자에 밀착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를 잘 모르는 남자관객들이 제 공연을 보고나서 저를 진짜 여자로 착각해 사랑에 빠지도록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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