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설의 고향'으로 대표되던 납량특집 드라마가 안방극장에서 사라졌다. "내 다리 내놔"를 외치던 외발귀신과 남자의 간을 노리던 백발의 구미호는 자료화면에서나 볼 수 있는 캐릭터가 됐다. 극장가에서도 공포영화가 예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여름 무더위엔 오싹한 공포물이 제격이라는 공식은 조만간 용도 폐기될 듯하다.
최근 SBS '추적자 THE CHASER'와 '유령' 같은 장르극이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도 납량특집극이 설 자리를 더욱 비좁게 했다. 이 드라마들은 부조리한 현실 사회를 떠올리게 하는 사건과 소재들을 차용해 권력의 냉정함과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시청자들을 섬뜩하게 했다. 그 섬뜩한 전율은 납량특집극의 오싹한 공포감을 대체하는 효과를 줬다. '추적자'와 '유령'의 극 전개를 이끄는 주요 코드가 추리, 미스터리라는 점도 납량특집극의 속성과 비슷하다.
올해 상반기에 판타지 드라마들이 유독 많았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로 꼽힌다. MBC '해를 품은 달'은 무속 판타지를 내세웠고 SBS '옥탑방 왕세자'와 MBC '닥터진'은 시간여행을, KBS2 '빅'은 영혼 체인지를 전면에 내걸었다. 시청자들이 판타지 설정에 익숙해지다 못해 식상하게 느끼고 있어, 판타지가 생명인 납량특집극의 매력은 더욱 반감된다. 최근엔 장르드라마의 성공으로 인해 극의 사실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안방극장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판타지도 개연성이 없으면 허무맹랑하다 비판 받기 쉽다는 얘기다. 허구인 걸 알면서도 속아주는 납량특집극이 성공하기가 현실적으로 더 어렵게 됐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