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섹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와이프랑은 하고 싶지 않아" "애인끼리도 의무방어전을 치르는 듯해"….
내가 살짝 다른 포즈를 취해도 잠시, 그는 금세 자기가 편한 자세로 돌아갔고 장소에 변화를 주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은근슬쩍 그에게 불을 지필 때나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을 때나 부엌 싱크대에서 강하게 자극해봐도 그는 "침대로 갈까" 하며 맥 빠지게 침실로 끌고가는 것이다.
슬쩍 친구에게 선물받은 섹스포지션 책을 그가 볼 만한 자리에 두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장 흥미를 보이며 "이런 체위도 있구나" 하며 놀라는 듯하더니 이내 "이건 불가능하지 않나" 내 눈을 피하며 책을 덮어버리는 것이었다. 그가 너무 민망해하니 나도 더 이상의 노력이 불가능했다. '이건 아니다' 싶은데도 그 부분을 당당하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섹스에 대해서 솔직한 나조차도 말이다!
그러나 이 부분은 단순히 '섹스'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한 문제는 그와의 다른 관계에서도 계속 발견됐다. 생활습관, 나에게 말하는 태도, 애정표현을 하는 방식이나 화를 내고 또 화해하는 방법…… 모두 섹스와 마찬가지였다. 애인으로서 그의 단점을 발견할 때마다 난 그에게 개선을 요구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몰랐고, 자신도 없었고, 그가 자존심 상해할까봐 겁났다.
그와 헤어지고 난 뒤에 깨달았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속궁합이 맞는 연인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서로 눈치가 빨라 몇 번의 섹스를 통해 몸의 작은 움직임, 반응만으로 속궁합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부분도 잘 안 된다면 누구든 먼저 용기 낼 필요가 있다. 난 이런 섹스를 원해, 이런 건 싫어, 이런 건 나를 자극시켜…….
나는 말하기 민망하고 구차하다는 이유로 그걸 포기했고 또 아주 많은 연인이나 부부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점점 더 멀어지는 두 사람의 관계는? 표현하고 개선하는 대신 포기하고 버려버리는 것들은?
'아차' 싶을 때는 너무 멀리 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희망을 버리지 않기를. 조금, 아주 조금씩만 용기를 내보기를.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것보다는 기존의 파트너를 고쳐나가는 게 더 편리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