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의 일본 거래소 상장, 어떻게 봐야 하나?

남정석 기자

기사입력 2011-12-18 13:50


◇지난 14일 넥슨은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넥슨 일본법인 최승우 대표와 도쿄증권거래소 사이토 아쓰시 사장이 사장 인증서를 교환하고 있다. 사진제공=넥슨

◇넥슨 일본법인 최승우 대표가 14일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상장을 알리는 타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넥슨

지난 14일 게임계에서 또 하나의 '성공신화'가 탄생했다.

국내 최대 게임사인 넥슨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을 한 것. 상장 당일 시가 총액은 8조원대였고, 16일 현재 6조9500억원으로 게임강국 일본에서 닌텐도에 이어 게임사 가운데 2위의 규모이자 일본 상장기업 가운데 127위에 이른다. 국내 거래소와 비교해봐도 상장사 시가총액 기준으로 게임사로선 1위, 전체 37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넥슨을 설립한 넥슨 지주회사 NXC의 김정주 대표(43)는 부인인 유정현 NXC 이사의 지분을 합쳐 상당 당일 3조3000억원, 16일 현재 2조8000억원대의 자산가가 됐다.

김 대표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8조8000억원·이하 16일 현재),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6조6078억원),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2조9277억원)에 이어 국내에서 4번째의 갑부로 떠오른 동시에, 후계 경영인이 아닌 창업주 가운데선 단연 1위가 됐다. 이 부문 수위를 달렸던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1조5623억원)를 단번에 뛰어넘었다.

넥슨의 일본 상장은 게임 산업의 파급력이 얼만큼 큰지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됐다. 또 한국 온라인게임의 위상을 한단계 높인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최대 게임사가 자국이 아닌 일본행을 선택했다는 것에 대해선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왜 넥슨은 일본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향후 어떤 파급효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넥슨은 어떻게 성장했나?

지난 1994년에 설립된 넥슨은 2년 뒤 MMORPG '바람의 나라'를 선보이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바람의 나라'는 최근 세계 최장수이자 최초 상용화 MMORPG로 기네스북에 등재됐으며, 누적회원수 1800만명으로 여전히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어 캐주얼 게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크레이지 아케이드', 국민게임 반열까지 올랐던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 전세계 1억명 이상의 회원을 확보한 '메이플스토리', '마비노기'까지 성공 가도를 달렸다.

개발과 함께 성공 가능한 게임을 보는데 탁월한 눈을 가진 김정주 대표는 2004년 '메이플스토리'를 만든 위젯스튜디오를 시작으로,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한 네오플을 2008년, '서든어택'을 개발한 게임하이를 2010년에 각각 인수하면서 기업 규모를 키워왔다. 올해 예상 매출은 국내 게임사 가운데 최대인 1조2636억원, 영업이익은 5517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보다 매출은 10%, 영업익은 30% 이상 성장한 수치.

김 대표는 지난 2005년 투자부문인 넥슨홀딩스, 그리고 게임사업부문인 넥슨으로 기업을 분할하면서 사실상 게임 개발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2000년에 설립한 넥슨재팬 등 일본법인을 중심으로 사업 부문을 재편했다. 이 때부터 한국이 아닌 일본 거래소에 상장하겠다는 얘기는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지난해부터 김태균이 뛰고 있던 일본 프로야구 지바롯데에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며 넥슨이란 이름을 계속 노출시킨 것도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 일환이었다. 당초 올해 초 상장을 준비했지만, 일본 동북부 지방 대지진 여파로 이를 미루다 끝내 연내 상장에 성공했다.


왜 하필 일본인가?

김정주 대표는 지난달 모교인 KAIST 강연에서 "일본 상장이 결정됐을 때 딸을 시집보내는 것처럼 착잡했다"고 말했다. 최승우 일본법인 대표는 상장 직후 컨퍼런스콜에서 "넥슨의 기업이념은 창의와 세계화이다. 한국이 온라인게임의 종주국이지만, 전통적인 측면에서 게임의 메카와 종주국은 일본이기에 여기서 반드시 성공해야 겠다는 꿈으로 일본에 상장했다"고 밝혔다.

물론 이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국내에서 게임사를 운영한다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정부는 진흥과 규제책을 적절히 구사하며 한국 게임을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로 성장시켰다. 국내 문화 콘텐츠 가운데 게임의 수출액은 60~70% 이상을 차지한다. 고용 창출도 상당하다. 하지만 어느새 게임산업은 '사회악'으로 낙인찍혀 규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사실상 규제책인 등급심의도 모자라 '셧다운제'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제도로 게임산업을 위축시키고 있다. 최근 상정된 게임진흥법 개정안에서도 규제 투성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활용해 풍부한 콘텐츠를 생산하면서 전형적인 '원소스 멀티 유즈'를 구현하고 있으며, 문화 콘텐츠 창작자가 대우를 받고 심지어 존경까지 받으며 게임강국을 유지하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이 어느새 한국의 온라인게임을 위협할만큼 성장, 다른 산업처럼 국내 게임산업도 자칫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로 전락할 수도 있다.

게임사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규제책이 나오는데다, 성장의 한계에 부딪힌 국내 시장을 뛰어넘어 해외 진출을 계속 노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넥슨이 만약 일본 시장에서 제대로 안착된다면 다른 게임사들도 국내 대신 일본이나 미국에서 상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넥슨의 앞길이 탄탄대로만은 아니다. 국내 증시보다는 변동성이 적지만 일본 증시는 연 최고점 대비 23% 이상 하락한 상태로, 유럽 위기까지 겹치며 8월 이후 횡보를 거듭하고 있다. 게다가 상장가가 1300엔이었는데, 16일엔 1100엔까지 떨어지면서 시가총액도 1조원 이상 줄었다.

게임 전문가들은 "국내 최대 게임사임에도 일본을 택한 것에 대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면서도 "그만큼 국내에선 상장 게임사로서 위험요소가 많다는 얘기도 된다. 어쨌든 일본 증권시장에서 넥슨의 행보가 국내 게임사들의 해외진출에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주목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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