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에서 '폐소공포증'까지, 작가들 고민 깊어지네

고재완 기자

기사입력 2011-12-04 16:35


사진제공=예인문화

드라마 속에서 불치병은 필요악이 된지 오래다. 러브스토리에 애절함을 더해주는 불치병은 작가들이 손쉽게 차용하는 소재다. 그중 예전 드라마는 암을 소재로한 드라마가 많았다. 암이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불치병'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작가들은 위암, 간암, 폐암 등 각종 암을 극중에 등장시키며 시청자들의 눈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에서는 암이 아닌 다른 종류의 병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암이 불치병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좀 더 드라마틱한 소재를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부터 '폐소공포증'까지

SBS월화극 '천일의 약속'에서 수애는 30대 초반의 나이에도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 '치매'라고 불리는 이 병을 젊은 나이에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드라마는 순식간에 애절한 분위기를 풍긴다. 집필을 맡은 김수현은 예전 '완전한 사랑'에서도 특발성 폐섬유종이라는 희귀 질병을 등장시켜 눈길을 끌기도 했다.

KBS2 수목극 '영광의 재인' 속 서인우(이장우)는 공황장애다 우울증과 틱장애까지 함께 가지고 있다. 그는 파티장처럼 넓은 장소에 가면 견디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서인우는 비닐봉지를 입에 대고 깊게 심호흡을 해야만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종영한 SBS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에서도 지성이 연기한 차지헌은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반면 SBS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김주원(현빈)은 폐소공포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장면을 연기한 후 한 전문의로부터 "드라마 사상 가장 정확히 증세를 표현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MBC 일일시트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는 잠에 관한 희귀병들이 등장한다. 김지원이 기면증을, 백진희가 몽유병을 앓고 있다.

이미 시즌2까지 방송한 케이블채널 OCN 드라마 '신의 퀴즈'시리즈는 아예 희귀병들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을 소재로 한 추리극이다.


KBS '영광의 재인'에서 공황장애와 틱장애 연기를 하고 있는 이장우. 사진캡처=KBS

SBS '시크릿가든'에서 폐소공포증 연기를 하고 이쓴 현빈. 사진캡처=SBS
작가들 희귀병 고민 깊네


물론 암을 소재로한 드라마도 있다. 종영한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김선아는 담낭암을 앓고 있었고 SBS주말극 '폼나게 살거야' 속 이효춘은 극중 폐암 진단을 받았다. '마이더스' 속 노민우는 췌장암을 앓는 것으로 설정됐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암이라는 병보다는 버킷리스트, 안락사 등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춘 채 이야기가 진행됐다. 그만큼 이제 시청자들에게 암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필하기는 한계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한 외주제작사 제작PD는 "많은 작가들이 희귀병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사실이다. 가장 드라마틱한 소재임과 동시에 자칫 잘못 선택하면 큰 질타를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심사숙고하는 편이다"라며 "최근 암은 완치되는 병이라는 인식도 많아서 암 투병을 하다 치료돼도 그리 극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불치병에 집중하기 보다는 부차적인 소재로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멜로물이나 가족극이 주를 이루는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작가들에게 불치병은 유혹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한껏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은 이제 웬만한 불치병에는 '저게 말이 돼'라며 코웃음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져 가고 있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SBS '천일의 약속'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 수애. 사진캡처=SBS

SBS '보스를 지켜라'에서 공황장애를 연기한 지성. 사진캡처=SBS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