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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에서 불치병은 필요악이 된지 오래다. 러브스토리에 애절함을 더해주는 불치병은 작가들이 손쉽게 차용하는 소재다. 그중 예전 드라마는 암을 소재로한 드라마가 많았다. 암이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불치병'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때문에 작가들은 위암, 간암, 폐암 등 각종 암을 극중에 등장시키며 시청자들의 눈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에서는 암이 아닌 다른 종류의 병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암이 불치병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좀 더 드라마틱한 소재를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KBS2 수목극 '영광의 재인' 속 서인우(이장우)는 공황장애다 우울증과 틱장애까지 함께 가지고 있다. 그는 파티장처럼 넓은 장소에 가면 견디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서인우는 비닐봉지를 입에 대고 깊게 심호흡을 해야만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종영한 SBS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에서도 지성이 연기한 차지헌은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다.
이미 시즌2까지 방송한 케이블채널 OCN 드라마 '신의 퀴즈'시리즈는 아예 희귀병들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을 소재로 한 추리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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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암을 소재로한 드라마도 있다. 종영한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김선아는 담낭암을 앓고 있었고 SBS주말극 '폼나게 살거야' 속 이효춘은 극중 폐암 진단을 받았다. '마이더스' 속 노민우는 췌장암을 앓는 것으로 설정됐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암이라는 병보다는 버킷리스트, 안락사 등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춘 채 이야기가 진행됐다. 그만큼 이제 시청자들에게 암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필하기는 한계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한 외주제작사 제작PD는 "많은 작가들이 희귀병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사실이다. 가장 드라마틱한 소재임과 동시에 자칫 잘못 선택하면 큰 질타를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심사숙고하는 편이다"라며 "최근 암은 완치되는 병이라는 인식도 많아서 암 투병을 하다 치료돼도 그리 극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불치병에 집중하기 보다는 부차적인 소재로 차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멜로물이나 가족극이 주를 이루는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 작가들에게 불치병은 유혹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만큼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한껏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은 이제 웬만한 불치병에는 '저게 말이 돼'라며 코웃음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고민은 점점 더 깊어져 가고 있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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