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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잠자는 에너지를 깨워주고 싶어요. 왜냐고요? 모두들 행복해졌으면 하니까요."
칡서란 칡뿌리를 빻아 만든 붓으로 그린 먹그림이다. 기(氣)의 흐름이 읽혀진다고 해서 기서화(氣書畵), 기서예(氣書藝)라고도 불린다. 갑골문과 상형문자가 만들어졌던 고대 중국의 황실에서 시작된 기법으로 안 화백은 청소년기 우연히 알게 된 중국의 전수자를 통해 칡서를 배웠다.
지난 2008년 서울 인사동 갤러리 이즈에서 연 '알몸 전'을 통해 칡서를 첫 공개한 그는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 30여 차례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 9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2주간 전시를 갖기도 했다. 연말에 국내전을 열고 내년엔 칡서의 본고장인 중국 상해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30년 넘은 칡을 빻아 말린 뒤 그것으로 붓을 만든다. 큰 붓은 털의 지름이 20cm 가량 된다. 왜 하필 칡일까. "칡에는 균이 없어요. 천년을 둬도 곰팡이가 피지 않지요"라는 게 그의 설명.
먹을 듬뿍 묻혀 박달나무 한지에 단숨에 써내려간다. 갑골문과 상형문자를 회화적으로 풀어낸다. 말 그대로 일필휘지(一筆揮之). 짧은 것은 2초, 보통 7초 이내에 한 작품을 완성한다. 금새 먹물이 마르기 때문에, 또 먹의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한 번에 끝내야 한다. 붓질이 힘차고 매섭다. 강렬한 기운이 확 느껴진다.
작업은 보통 자정 이후에 한다. 냉수 목욕을 한 뒤 알몸 상태에서 그린다. "걸친 것이 하나도 없는 텅 빈 상태여야 우주와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어서" 이다. 하룻밤 작업을 하고 나면 완전히 탈진된다. 머리카락이 숭덩 빠질 정도이다.
칡서는 먹그림이라 흑과 백 밖에는 없다. 그런데 꿈틀대는 용같은 글자 사이로 어렴풋이 형상이 보인다. 여인의 얼굴 같기도 하고, 떠오르는 태양 같기도 하다. 보는 사람의 마음,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흑과 백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오묘함이다.
"흑백은 음과 양, 즉 빛과 어둠, 이상과 현실, 희망과 절망을 의미합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공생의 미학과 밤낮이 도는 자연의 이치처럼 우리의 인생에서도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이 바로 희망을 만나는 지점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담고 있어요."
기(氣)란 에너지의 흐름이다. 좋은 기운을 칡서에 담아 보는 이에게 그 에너지를 전해주겠다는 것이 그의 뜻이다. "누구나 기, 즉 에너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는 게 고달프다보니 그 에너지를 제대로 활용 못해 지쳐있어요. 잠자는 에너지를 되살려 다시 생동하게 해주는 거지요."
그는 칡서 못지않게 사진에도 큰 관심을 가져왔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찰나의 순간으로 멈추게 하는 사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한다. 사진의 모델 역시 태양, 달빛, 짐승 등 원초적인 자연이다. 태고의 생존본능을 간직한 생명을 포착한 사진 역시 그에겐 기를 담는 그릇인 셈이다.
그는 최근 e-파워포토 갤러리를 준비하고 있다. '천기누설' 강의와 사진, 칡서 등의 해설, 강의 등을 하는 아카데미이다. 올 연말 서울 인사동에 본점을 낸 뒤 전국으로 지점을 확대할 예정이다. 역학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다. 사주카페의 원조 격인 '천기누설 카페'를 80년대에 열었던 그는 2000년 문을 연 '토탈오즈스타닷컴'(www.totalozstar.com)도 운영하고 있다.
컴맹에 운전면허만 없고 나머지는 다 안다고 큰소리 떵떵 치는 기인. "세상을 관조하며 조롱하며 사는 게 즐겁다"는 그는 "남의 눈치 안 보고, 비위 안 맞추고 사니 얼마나 자유로운지 모른다"며 껄껄 웃었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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