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의 S다이어리] 그 남자의 이중생활

김형중 기자

기사입력 2011-10-05 11:41


K는 중소기업의 임원이다. 과거 잘나가던 영업사원이었던 그는 술 한 잔으로도 굵직한 거래를 간단히 트고도 남을 능력자이기도 하다. 이미 예전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그였지만 현재 급여는 엔간한 전문직 아쉽지 않을 정도이고, 지금도 매우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회사 법인카드도 마음껏 긁고 지방의 한 사무소는 아예 별장으로 쓰고 있다.

사실 그는 사내에서 쉬쉬하는 민폐적 존재다. 술 접대에 익숙해진 터라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주정도 마음 놓고 부리는, 고도로 지능적인 알콜릭이었다. 심지어 여직원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슬그머니 허벅지를 더듬는 일은 자연스럽고도 흔했다. 그가 정한 규칙 중에 하나가 여직원은 반드시 치마를 입어야 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대학을 갓 졸업한 여직원 둘은 입사 일주일 만에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실제로 그는 마음에 드는 여직원을 찍어 개인비서처럼 부리기도 했다. 예전에 K의 총애를 받던 한 여직원이 있었다. 그녀는 유난히 큰 가슴을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가슴골이 드러나는 쫄티와 궁둥이 살이 다 감춰지지 않는 핫팬츠를 입고 다녔다. 어느 날 그녀는 회식 자리에서 술기운에 사내의 앙숙에게 비밀 하나를 털어놓고 말았다. "그 사람이 내 가슴을 만졌어." 그래서 그녀는 흥분했단 말인가? 사내에는 두 사람이 이미 잠자리를 가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K는 권력적이고 또 자유로웠다. 직업의 특성상 술 접대와 음주가무, 환락에 무한 노출되어 있었는데, 업소 여자들과도 질펀하게 놀았다. K는 호탕했고, 술과 여자를 정복하고 즐기는 남자였다. 술 한 잔으로 큰 계약도 따냈고, 어떤 거래처 담당에게 어떤 여자를 붙여야 할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능력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사업 파트너로 만나는 여자들과도 관계를 가지곤 했다. 같이 밥도 먹고 자고, 놀고 그런 식이었다. 죄책감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도 변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그래도 난 절대로 가정은 깨지 않아." 남자 바짓가랑이 물고 늘어질 여자는 애초에 싹을 잘라놓는다. 그는 공과 사가 확실했다. 아내에게도 당당히 자신의 일에 대한 터치를 거부했다. 또한 아내에게 돈 벌어오라는 자잘한 타박도 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 역시 매우 호화롭게 살고 있다.

여러 여자들에게 손대는 걸 좋아하는 그였지만, 그에게도 아끼는 딸이 있다. 명문대 출신에 미모도 뛰어난 스물 세 살의 딸. K는 그 애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줬다. 돈이 급하면 빚을 내기도 했다. 똑똑하고 야무지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자기 딸보다도 어린 여자와 노는 K가 말이다.

평소 얌전한 고양이처럼 반듯한 사람이 사실은 뒷구멍으로 여러 애인과 놀아나는 엉큼한 인간이었다면 그의 이중생활에 놀랄 수밖에 없다. 반대로 소문난 바람둥이가 사실은 미련한 '딸바보'라는 사실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몹쓸 인간이 좋은 아버지란 말인가.

뷔페에 가면 다 먹지 못할 정도로 퍼 와서는 대충 먹고는 많이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남의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멀쩡한 음식을 버리고 여러 여자를 함부로 취하는 것도 일종의 낭비며 사치인 것이다. 정말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면 무엇이든 아끼게 되어 있다.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수도꼭지 물도 막 쓰고, 보일러와 에어컨을 동시에 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도 만만치만은 않아서 마구 퍼갈 수 있는 것일수록 싸구려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

K가 얄밉지만 어찌하겠는가. 세상에는 완벽하게 착한 남자도 완벽하게 못된 남자도 없다. 그것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지 여자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나를 '남의 것'이라 여기는 남자와는 깊이 관계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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