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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100만 돌파, '대단한 암탉' 만든 오성윤 감독

이예은 기자

기사입력 2011-08-11 11:46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이 만화 캐릭터같은 코믹한 포즈를 선보이고 있다. 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저 미대 나온 남자예요~"

애니메이션 감독은 뭔가 달랐다. 사진을 찍을 때부터 팔짱을 끼거나 먼 곳을 응시하는 '폼'과는 거리가 멀었다. 만화 캐릭터같은 코믹 포즈 일색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종전 캐릭터와 현재 공개된 캐릭터의 다른 점을 지적하자 "다 고민 끝에 바뀌었죠. 저 이래봬도 미대 나온 남자예요~"라며 웃음을 선사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오돌또기와 영화제작사 명필름이 손잡고 만든 '마당을 나온 암탉'은 10일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대로라면 손익분기점인 150만도 넘길 것 같다는 전망도 있다. 젊어 보이는 모습과 달리 벌써 40대 후반인 오 감독은 "다 늙어 만든 작품으로 대학생, 중학생 두 딸에게 '아빠의 정체'를 제대로 밝힐 수 있게 됐다"며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서울대 서양화과 출신인 오 감독은 오랜 경력과 달리 이번 작품이 장편 데뷔작이다.

명필름?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다

"명필름과 손을 잡은 건 기막힌 우연이자 운명입니다." 오돌또기와 명필름이 '마당을 나온 암탉'을 함께 만들게 된 뒷얘기는 신기할 정도다. 1963년생 동갑내기인 오 감독과 심재명 대표가 이 작품을 애니메이션화하려고 따로따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원래 저는 '마당을 나온 암탉'을 2000년에 책이 출판되기도 전에 접했습니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나서야 들여다보고 '이건 정말 잘 되겠다'고 생각했죠. 차차 진행해서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지원금까지 받고 준비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명필름은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다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고 저를 먼저 찾아온 겁니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놀랍죠." 오 감독 역시 앞서간 애니메이션의 실패를 보고 '메이저 영화사와 협력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혀갈 즈음이었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왔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구나 했어요. 동시대에 비슷하게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동갑내기 제작자와 감독이었기 때문에 이런 행운이 주어진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도 같았고요. "

쓴 종이 다 늘어놓으면 부산까지?

명필름과 오돌또기는 시나리오 기획 단계부터 함께 작품을 만들어갔다. 대신 서로 잘 하는 분야는 분명히 나누었다. 명필름은 영화 홍보, 이미지 세팅, 자금 조달 등을 책임졌고, 오돌또기 측에선 프로덕션에만 매달리기도 했다. 오 감독은 "사실 프로덕션도 고생이었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투자 상황이 완전히 나락에 빠진 수준이어서, 100만부 베스트셀러 원작에다 명필름까지 합세했는데도 완성될 때까지 투자를 못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 되고 나서야 투자를 받았죠. 그런 고생을 모른 척하고 저는 프로덕션에만 매달렸어요"라고 돌아봤다. "대신 우리 인건비를 깎아 가면서 공동제작자의 정신으로 임했죠." '마당을 나온 암탉'을 만들면서 오돌또기가 내놓은 파지(못쓰게 된 종이) 분량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애니메이션에 최종적으로 들어간 게 12만매라고 하면, 파지로 나간 건 30만매가 넘어요. 파지까지 합해서 다 늘어놓으면 부산까지 갈 것 같아요." 대학교 3학년, 중학교 3학년인 오 감독의 두 딸은 이렇게 고생 끝에 나온 아버지의 데뷔작을 보고 감동의 물결에 휩싸였다고. "사실 아버지가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는 하는데, 지금까지 극장에서 본 게 없거든요. 이제야 좀 아버지 체면이 선다고 할까요. 하하."

다음 작품 주인공은 '강아지'일 듯?

오 감독은 '마당을 나온 암탉'이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여전히 자연, 생태, 환경, 생명을 다루는 가족용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만들겠다고 정하기 전부터 그게 기본 방향이었어요. 결국 또 동물을 통해서 인간들에 대한 얘기를 할 것 같아요. 사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한국 애니에서 거의 최초의 동물 주인공을 쓴 극장용 애니메이션이에요. 사람만 등장했던 것부터가 뭔가 심각하고 무거운 얘기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사치스러운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이 때 오 감독의 전화벨이 울렸다. 강아지 소리가 벨 소리로 흘러나왔다. 오 감독은 "다음 작품이 아마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하는 창작 스토리가 될 것 같습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 눈높이가 맞춰져 있다 보니, 그 정도 되는 원작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아마 창작 스토리가 될 것 같습니다." 주인공과 스토리는 달라지지만, 영화사와 손을 잡고 작품을 만들겠다는 방침은 같다. "애니메이션도 영화사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 산업구조 내에서 상품으로 팔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가 경험치가 쌓이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도 영화사처럼 독립할 수 있겠지요. 만일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어 두 번째 작품도 호응을 얻으면, 저희도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를 바라볼 수 있을 듯합니다."
이예은 기자 yeeuney@sportschosun.com


'마당을 나온 암탉' 포스터에 기댄 오성윤 감독. 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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