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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SK와의 챔프전 미디어데이.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과감한 발언을 했다.
지난해다. LG와의 챔프전에서는 항상 "제퍼슨만 막으면 된다. 국내 선수는 어떻게든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올해 유 감독은 "동부는 김주성과 윤호영의 체력이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디어데이 때 "7차전까지 가고 싶다"는 김주성에게 농담조로 "4강 전자랜드오의 5차전에서도 발을 끌고 다니던데 7차전 가면 은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호영에 대해서는 "한계가 노출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2차전이 끝난 뒤 유 감독은 여기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그냥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다른 의도는 없다"며 "2년 전 미디어데이 때 했던 얘기도 상대를 자극을 줄 순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평소에 늘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심리전은 아닐까.
드롭존 발언
SK가 사용한 3-2 드롭존은 대표적인 한국형 변형전술이다. 실제 '드롭존'이라는 공식적인 말 자체가 없다. 농구에서 '드롭(drop)'이라는 의미는 외곽에서 골밑으로 떨어지는 움직임이다.
3-2 드롭존은 외곽에 3명, 골밑에 2명을 서는 3-2 지역방어의 변형이다. 외곽 가운데 빅맨을 배치, 상대가 골밑공격을 할 때 순간적으로 골밑으로 '떨어져(드롭)' 도움수비를 주는 형태다. 원래 2010년부터 동부의 대표적 전술이었다.
스피드와 센스가 뛰어난 김주성을 외곽 중앙에 배치, 엄청난 효과를 거뒀다. 당시 드롭존은 약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상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김주성 역시 "내 농구 인생에서 3-2 드롭존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할 정도였다.
SK가 2012~2013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3-2 드롭존은 많은 효과를 얻었다. 가장 긍정적 요소는 대인방어가 약한 김민수 박상오 등의 수비 약점을 커버하면서, 상대를 압박하는 효과를 가졌다는 점이다. SK가 3-2 드롭존을 도입한 이유가 개개인의 수비 약점을 지역방어로 커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에서 SK의 3-2 드롭존은 동부와 비교할 때 완성도가 떨어진 부분이 많았다. 당시 SK의 드롭존을 깨지 못했던 가장 큰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수비 센스가 뛰어난 애런 헤인즈의 존재감이다. 또 하나는 상대적으로 3-2 드롭존을 깰 수 있는 영리한 포인트가드가 많이 부족했다. 당시 오리온스에 있던 전태풍이나 KGC에 있던 김태술에 의해 깨지는 경우가 많았다. 전태풍은 외곽 중앙의 적절한 3점포를 이용했고, 김태술은 가운데 효율적인 볼 투입을 통해 쉽게 파괴시켰다. 모비스 역시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SK의 드롭존에 잘 대응하는 편이었다.
이같은 배경 때문에 유 감독의 10초 발언이 나올 수 있었다. 현역시절 그는 천재 포인트가드로 평가받았다. 특히 패싱능력은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SK의 드롭존을 공략해야 하는 주체는 유 감독이 아닌 모비스였다. 그는 정규리그 때 이미 드롭존에 대한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결국 4전 전승으로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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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감독이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선수와 팀에 대한 본질을 가장 빨리 꿰뚫어 본다는 점이다. 일종의 '농구 직관력'이 독보적인 사령탑이다. 지난 시즌 LG가 대표적인 예다. 데이본 제퍼슨을 중심으로 한 LG는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문태종 김시래 김종규 등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유 감독은 "LG는 제퍼슨의 팀이다. 나머지는 컨트롤이 가능하지만, 제퍼슨은 쉽지 않다"고 했다.
이 부분은 사실이다. 지난 시즌 제퍼슨이 있을 때 LG는 그를 중심으로 문태종과 2대2 공격이 파괴적이었다. 나머지 선수들은 보조 역할이었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제퍼슨이 나간 뒤 나머지 선수들의 역할확대가 이뤄지면서 더욱 매력적인 팀으로 변모한 것도 사실이다.
그 팀의 돌아가는 작동법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대책을 효율적으로 세울 수 있다는 의미. 지난 시즌 챔프전에서 모비스가 4승2패로 우승한 가장 큰 이유는 이 부분을 잘 수행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제퍼슨을 막는데 집중하고, 때로는 제퍼슨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를 봉쇄하면서 LG의 팀 밸런스를 흐트러뜨렸다. 미세한 균열이 미세한 힘 차이로 연결됐고, 결국 혈투 끝에 모비스가 우승반지를 차지했다.
동부의 경우, 김주성과 윤호영은 전자랜드와의 4강 1차전 후반부터 체력적 약점을 노출했다. 워낙 넓은 수비범위를 커버하다 보니 생긴 문제점이었다. 당연히 유 감독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개인의 약점도 파악했다. 윤호영이 대표적인 경우다. 포스트 업이 잘 되지 않은 이유를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 결국 유 감독의 과감한 발언은 그동안 관찰의 결과물이다.
때문에 상대를 자극시킬 순 있어도, '허언'은 없다. 그래서 더 무서운 유 감독의 '단정'이다.
유 감독이 과감한 발언을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는 2년간 대표팀을 맡으면서, 한국농구 대표선수들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여전히 부족한 개인기와 세부적 테크닉. 티는 내지 않았지만, 지난해 대표팀을 맡은 뒤 고민 중 하나는 김종규에게 외곽 수비를 장착시킨 뒤 국내리그에서 돌아올 '부메랑'이었다. 당시 유 감독은 "김종규가 성장할 경우, LG에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농담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유 감독은 김종규에게 외곽 수비를 장착시켰고, 아시안게임 우승의 보이지 않은 원동력이 됐다. 당시 "지금 내 머리에는 모비스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대표팀에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에도 이종현 최준용 등 젊은 선수들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챔프전 돌출발언은 전반적으로 나태해진 한국농구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의도도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