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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분석]'만수'의 돌출발언, 고도의 심리전인가

류동혁 기자

기사입력 2015-04-02 07:54


28일 오전 서울 신사동 한국프로농구연맹에서 2014-2015 시즌 챔피언결정전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챔피언결정전 미디어데이에는 모비스 유재학 감독과 양동근, 동부 김영만 감독과 김주성이 참석해 각오와 출사표 등을 밝혔다. 재치 있는 우승 공약을 비롯해 사전에 KBL SNS를 통해 받은 농구 팬들의 다양한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 등을 가졌다.

2014-2015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은 3월 29일(일) 울산에서 1차전을 시작으로 4월 10일(금)까지 우승을 향한 열띤 승부를 펼칠 예정이다.

미디어데이에서 모비스 유재학 감독의 농담에 동부 김영만 감독과 김주성이 웃고 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3.28.



2년 전 SK와의 챔프전 미디어데이.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과감한 발언을 했다.

당시 챔프전 파트너 SK의 대표적 수비 전술은 3-2 드롭존이었다. 유 감독은 "나 같으면 10초 안에 깰 수 있다"고 했다.

지난해다. LG와의 챔프전에서는 항상 "제퍼슨만 막으면 된다. 국내 선수는 어떻게든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올해 유 감독은 "동부는 김주성과 윤호영의 체력이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디어데이 때 "7차전까지 가고 싶다"는 김주성에게 농담조로 "4강 전자랜드오의 5차전에서도 발을 끌고 다니던데 7차전 가면 은퇴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윤호영에 대해서는 "한계가 노출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쯤되면 생각나는 단어가 '고도의 심리전'이다.

2차전이 끝난 뒤 유 감독은 여기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그냥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다른 의도는 없다"며 "2년 전 미디어데이 때 했던 얘기도 상대를 자극을 줄 순 있다는 생각은 들었다. 하지만 평소에 늘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심리전은 아닐까.

드롭존 발언


SK가 사용한 3-2 드롭존은 대표적인 한국형 변형전술이다. 실제 '드롭존'이라는 공식적인 말 자체가 없다. 농구에서 '드롭(drop)'이라는 의미는 외곽에서 골밑으로 떨어지는 움직임이다.

3-2 드롭존은 외곽에 3명, 골밑에 2명을 서는 3-2 지역방어의 변형이다. 외곽 가운데 빅맨을 배치, 상대가 골밑공격을 할 때 순간적으로 골밑으로 '떨어져(드롭)' 도움수비를 주는 형태다. 원래 2010년부터 동부의 대표적 전술이었다.

스피드와 센스가 뛰어난 김주성을 외곽 중앙에 배치, 엄청난 효과를 거뒀다. 당시 드롭존은 약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상대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김주성 역시 "내 농구 인생에서 3-2 드롭존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할 정도였다.

SK가 2012~2013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3-2 드롭존은 많은 효과를 얻었다. 가장 긍정적 요소는 대인방어가 약한 김민수 박상오 등의 수비 약점을 커버하면서, 상대를 압박하는 효과를 가졌다는 점이다. SK가 3-2 드롭존을 도입한 이유가 개개인의 수비 약점을 지역방어로 커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에서 SK의 3-2 드롭존은 동부와 비교할 때 완성도가 떨어진 부분이 많았다. 당시 SK의 드롭존을 깨지 못했던 가장 큰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수비 센스가 뛰어난 애런 헤인즈의 존재감이다. 또 하나는 상대적으로 3-2 드롭존을 깰 수 있는 영리한 포인트가드가 많이 부족했다. 당시 오리온스에 있던 전태풍이나 KGC에 있던 김태술에 의해 깨지는 경우가 많았다. 전태풍은 외곽 중앙의 적절한 3점포를 이용했고, 김태술은 가운데 효율적인 볼 투입을 통해 쉽게 파괴시켰다. 모비스 역시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SK의 드롭존에 잘 대응하는 편이었다.

이같은 배경 때문에 유 감독의 10초 발언이 나올 수 있었다. 현역시절 그는 천재 포인트가드로 평가받았다. 특히 패싱능력은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SK의 드롭존을 공략해야 하는 주체는 유 감독이 아닌 모비스였다. 그는 정규리그 때 이미 드롭존에 대한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결국 4전 전승으로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유재학 감독의 모습.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03.18/
허언은 없다

유 감독이 가진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선수와 팀에 대한 본질을 가장 빨리 꿰뚫어 본다는 점이다. 일종의 '농구 직관력'이 독보적인 사령탑이다. 지난 시즌 LG가 대표적인 예다. 데이본 제퍼슨을 중심으로 한 LG는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문태종 김시래 김종규 등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

하지만 유 감독은 "LG는 제퍼슨의 팀이다. 나머지는 컨트롤이 가능하지만, 제퍼슨은 쉽지 않다"고 했다.

이 부분은 사실이다. 지난 시즌 제퍼슨이 있을 때 LG는 그를 중심으로 문태종과 2대2 공격이 파괴적이었다. 나머지 선수들은 보조 역할이었다. 올 시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제퍼슨이 나간 뒤 나머지 선수들의 역할확대가 이뤄지면서 더욱 매력적인 팀으로 변모한 것도 사실이다.

그 팀의 돌아가는 작동법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대책을 효율적으로 세울 수 있다는 의미. 지난 시즌 챔프전에서 모비스가 4승2패로 우승한 가장 큰 이유는 이 부분을 잘 수행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제퍼슨을 막는데 집중하고, 때로는 제퍼슨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를 봉쇄하면서 LG의 팀 밸런스를 흐트러뜨렸다. 미세한 균열이 미세한 힘 차이로 연결됐고, 결국 혈투 끝에 모비스가 우승반지를 차지했다.

동부의 경우, 김주성과 윤호영은 전자랜드와의 4강 1차전 후반부터 체력적 약점을 노출했다. 워낙 넓은 수비범위를 커버하다 보니 생긴 문제점이었다. 당연히 유 감독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개인의 약점도 파악했다. 윤호영이 대표적인 경우다. 포스트 업이 잘 되지 않은 이유를 세세하게 알고 있었다. 결국 유 감독의 과감한 발언은 그동안 관찰의 결과물이다.

때문에 상대를 자극시킬 순 있어도, '허언'은 없다. 그래서 더 무서운 유 감독의 '단정'이다.

유 감독이 과감한 발언을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는 2년간 대표팀을 맡으면서, 한국농구 대표선수들의 현실을 잘 알고 있다. 여전히 부족한 개인기와 세부적 테크닉. 티는 내지 않았지만, 지난해 대표팀을 맡은 뒤 고민 중 하나는 김종규에게 외곽 수비를 장착시킨 뒤 국내리그에서 돌아올 '부메랑'이었다. 당시 유 감독은 "김종규가 성장할 경우, LG에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농담처럼 얘기했다. 하지만,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유 감독은 김종규에게 외곽 수비를 장착시켰고, 아시안게임 우승의 보이지 않은 원동력이 됐다. 당시 "지금 내 머리에는 모비스가 없다"고 말할 정도로 대표팀에 총력을 기울였다.

당시에도 이종현 최준용 등 젊은 선수들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챔프전 돌출발언은 전반적으로 나태해진 한국농구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의도도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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