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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문경은'이 이렇게 잘 할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는 지난 2011~12시즌을 앞두고 감독대행으로 SK 지휘봉을 잡았다. 성적이 처참했다. 10개팀 중 9위. 구단에서 6강 플레이오프를 기대했지만 문경은이라고 특출난 재주는 없었다.
스타 출신도 유능한 감독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SK를 우승 후보로 꼽은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6강 플레이오프 언저리에서 놀 것으로 봤다. 문 감독도 SK가 초반 선두로 치고 나가자 놀랐다. 하지만 33승7패(14일 현재)로 정규리그 막판까지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우리는 기회를 잡았다. 정규리그 우승부터 하고 플레이오프를 노릴 것이다"고 말했다. 문 감독은 6강 PO에서 4강 PO로 다시 우승으로 목표를 상향 조정했다. SK는 이제 객관적인 전력과 경기력, 선수 구성 모든 면에서 우승에 근접해 있다.
머리 20분, 넥타이 15분
문경은은 아직 갈길이 구만리 같은 초보 감독이다. 지금 잘 한다고 해서 그는 아직 명장이 아니다. 노련하지도 않다. 하지만 모래알 조직력의 대명사였던 SK농구를 바꿔 놓았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슬로건 아래 모두 끌어모았다.
그가 감독이 된 후 용인 클럽하우스의 방배정을 바꿨다. 코칭스태프는 모두 3층, 선수들은 2층으로 모았다. 될 수 있으면 선수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주고 싶었다. 선수 방에 가고 싶어도 참았다. 코트에서 운동시간과 미팅 시간 이외에는 선수들을 별도로 만나지 않았다. 대신 아침 밥 먹기전에 자유투 쏘기, 경기에 뛰지 못하는 주장(이현준) 선임 등으로 문경은만의 색깔을 만들어갔다. 주장을 중심으로 선수들끼리 알아서 뭉치게 만들었다. 감독은 분위기만 만들어줬다. 문 감독은 과거 SK 주장 시절 후배들을 편하게만 대해 주었다. 하지만 그게 SK를 망쳐놓았다.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자기 일만했다. 그때의 실패가 거울이 됐다.
그는 대행 꼬리표를 뗀 후 외모에 변화를 주었다. 감독이 멋지게 하고 나가야 선수들도 자신감이 생긴다는 논리다. 홈 경기를 위해 버스가 클럽하우스를 출발하기 1시간30분 전부터 꽃단장을 한다. 그 중 헤어스타일을 만드는데 20분, 넥타이 매는데 15분을 투자한다. 처음에는 그 두배의 시간이 들었다. 거울을 보면서 이런 저런 구상을 마무리한다고 했다. 친분이 두터운 탤런트 박준규가 "진작에 그렇게 멋있게 했더라면 지난 시즌에도 좋은 성적이 났을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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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문 감독을 만든 지도자는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문 감독을 전부로 생각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그의 부친 문귀곤씨다. 아버지는 아들이 농구선수가 된 후 지금까지 문경은 이름 석자가 나온 신문 스크랩을 하고 있다. 20년 이상 해왔다. 아들이 결혼했을 때 그때까지 모았던 스크랩을 며느리(김혜림씨)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스크랩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아들 이름을 찾아 형광팬으로 색칠한 후 기사를 오려낸다. 그리고 남은 신문을 정리했다가 팔아서 그 돈을 모아 아들 이름으로 기부를 해오고 있다. 모친은 아버지의 그런 정성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문 감독은 아버지에게 경기 전날과 경기 직후 바로 전화를 올린다. 아내는 그 다음이다. 그는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 나야 마음이 편안해진다"면서 "아버지가 경기장에 자주 오시지 못한다. 가슴을 졸여서 4쿼터 내내 복도에 서 계신다"고 말했다.
문 감독은 한창 사춘기인 외동딸(진원)에게 60점짜리 아빠밖에 되지 못한다고 했다. 중요한 시기에 옆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했다. 감독이 된 후 가족과 단 한 번도 여행을 가지 못했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꼭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승이 더 간절하다고 했다. 우승하고 소홀했던 가정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것이다.
용인=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