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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사나이가 약속을 어길 수 있나. 이미 뱉은 말인데."
수영초등학교 3학년 때 추신수와의 첫 만남이 유명하다. 이대호를 야구에 입문시킨 주인공이 바로 추신수다. 훗날 두 선수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으니, 말 그대로 운명적 만남이었다. 1994년에는 롯데기 초등야구대회에선 '유격수' 이대호가 최우수선수, '투수' 추신수가 우수투수상을 차지했다.
경남고와 청소년대표팀을 거쳐 2001년 2차 1순위로 롯데에 입단했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당시 투수였던 이대호는 덩치에 비해 공이 빠르지 않았다. 스프링캠프에서 어?틸 팔꿈치 통증에도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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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지도하에 21세기 롯데의 흑역사였던 비밀번호(8888577)를 깨고 첫 가을야구에 성공한다. 이대호가 올해 스승의날 인터뷰에서 자신의 스승으로 "믿고 기용해준 양상문, 야구에 눈뜨게 해준 제리 로이스터, 타자로 전향시켜준 우용득" 3명을 꼽은 이유다. 이대호는 시즌초에도 '가장 야구가 즐거웠던 시기'로 2008~2010년 로이스터 감독과 함께 한 3년간을 꼽았다.
하지만 이대호의 기량이 절정에 다다랐던 이때,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가지 못한 건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이대호 평생 유일한 플레이오프 진출이 바로 양승호 감독이 이끈 2011년이다. 이대호는 이후 일본야구로 진출, 오릭스 버팔로스와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뛰었다. 퍼시픽리그 베스트9에 2번이나 뽑혔고, 특히 2015년에는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며 시리즈 MVP의 영광까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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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는 2016년 메이저리그 무대까지 밟았다.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한시즌 활약한 뒤 롯데 컴백을 결정, 2017년 롯데로 돌아와 5년만의 가을야구를 이끌었다.
KBO리그 복귀 후에도 매년 좋은 성적을 냈다. 특히 2017, 2018, 2020, 2022년까지 4번의 100타점 시즌을 추가하며 통산 7번을 기록, 이승엽 최형우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40세 이상 타자가 100타점을 기록한 건 2016년 이승엽(118타점)과 올해 이대호, 역대 단 2명 뿐이다.
은퇴 시즌인 올해도 타율 3할3푼2리 22홈런 100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82의 호성적을 냈다. 부문별로 이정후 피렐라 김현수 나성범 최지훈 등 신구 강자들과 자웅을 겨룬 한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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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의 KBO리그 17년은 화려하고 찬란했다. 하지만 준플레이오프 진출 5회, 플레이오프 진출 1회가 전부인 가을야구 커리어가 한으로 남았다. 한국시리즈 무대는 밟지도 못했다. 한국시리즈 우승 후 팬들과 술한잔 하고 싶다던 바람은 끝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