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핫포커스]#이해 #신뢰 #존중, 허문회식 소통법이 롯데를 바꿨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20-05-10 21:01 | 최종수정 2020-05-11 05:05


6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KT 위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열린다. 롯데 허문회 감독이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고 있다. 수원=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20.05.06/

[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꼴찌에서 단독 선두까지 5경기면 족했다.

거인군단의 질주가 무섭다. 롯데 자이언츠가 2020 KBO리그 개막과 동시에 5연승 파죽지세로 단독 1위로 올라섰다. 롯데의 개막 후 5연승은 2013년 4월 4일 마산 NC 다이노스전 이후 2593일만. 가장 최근 단독 1위도 2014년 4월 5일(당시 3승1패) 이후 2227일만이다. 지난해 부진을 거듭하며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던 모습과는 딴판. 시즌 극초반이라 아직 흐름을 단정 짓기엔 표본 자체가 적다. 그러나 앞선 경기를 통해 드러낸 롯데의 행보는 분명 주목받을 만했다.

더그아웃엔 경기 내용과 상관없이 유쾌함이 넘친다. 투-타, 신예-베테랑 할 것 없이 경기 내내 시끌벅적 하다. 안타, 득점 등이 나올 땐 베테랑들이 소위 '오버'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8일과 10일 사직 SK 와이번스전에서 마차도가 잇달아 홈런을 터뜨리자, 더그아웃에선 선수들이 그를 둘러싸고 광란의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롯데의 반등을 두고 다양한 요소들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 중심엔 신임 사령탑인 허문회 감독이 있다는 것엔 이견이 없다. 아무리 좋은 전력, 환경을 만들어도, 결국 그라운드에서 이를 제대로 펼쳐 보이지 못한다면 모든 게 수포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장 총사령관인 허 감독의 역량이 적절하게 반영되고 있는 게 롯데의 약진에 가장 큰 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허 감독이 외부 소통에 적극적인 지도자는 아니다. 코치 시절부터 꾸준히 지적됐던 부분. 롯데 지휘봉을 잡은 뒤에도 전체적인 구상엔 두루뭉술한 답이 많고, 세세한 팀 훈련 방식이나 요점을 집어달라는 질문엔 "그건 밝힐 수 없다"고 딱 자르는 모습도 마다하지 않는다. 딱딱함을 넘어 오해마저 부를 법한 화법을 즐긴다. 하지만 선수단 내부에선 "감독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롯데 선수들은 초반 상승세의 원인으로 분위기, 정신적인 부분을 유독 강조하고 있다. 허 감독이나 코치진 모두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조언은 크지 않았다고 말한다. 기술보다 준비 과정, 자세에 좀 더 중점을 두겠다던 허 감독의 철학과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이런 허 감독의 소통법은 '멘털 코칭'에 기반한다. 키움 2군 코치 시절 보스턴 레드삭스 연수를 통해 얻은 경험이다.

롯데 사령탑 취임 후 드러난 그의 내부 소통법은 자신의 경험에 발판을 둔 '이해'에서 출발한다. 현역 시절 유망주 평가를 받으며 데뷔했으나, 빛을 보지 못했던 본인의 과거를 '실패'로 규정 짓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게 사람이다", "당연히 그 상황에선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랬다"며 경쟁과 승부에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를 보듬는다. 선발 투수 장시환을 내주고 트레이드로 영입한 포수 지성준을 개막엔트리 진입 대신 2군행을 결정하면서 "대타로 활용할 수도 있지만, 벤치에 앉는 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위축되고, 발전도 안된다. 나처럼 반쪽자리 선수가 돼선 안된다"고 강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선수들을 향한 '신뢰'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동희는 개막전 실책, 정보근은 부진한 타격으로 우려를 샀지만, 허 감독은 이들을 끝까지 기용하는 뚝심으로 결국 반등을 이끌어냈다. 4번 타자 이대호의 에이징커브로 인한 활약 우려에 "국내 1루수 중 그만한 선수가 누가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방패막이'도 자처하고 나섰다. 이런 요소들이 선수들의 자신감을 끌어 올리고, 긍정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허 감독의 결단으로 1루수 겸업 대신 주포지션인 외야수로 출전 중인 전준우는 "감독님은 선수들이 스스로 나서서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시는 것 같다"고 긍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존중은 이런 이해와 신뢰를 더 빛나게 한다. "우리는 자영업자"라며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던 그는 "기본적인 관계의 출발점은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에 있다. 존중이 없다면 관계가 맺어질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최근 중용되고 있는 정 훈이 대표적 케이스로 꼽힌다. 정 훈은 큰 스윙폼으로 호불호가 갈렸던 선수지만, 허 감독은 "정 훈의 스윙폼이 커 보일 수도 있지만, 강한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칭찬을 보냈다. 정 훈은 "내 스윙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감독님은 내 스윙폼을 두고 단 한 번도 지적한 적이 없다"며 "선수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신다.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하고, 팀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첫 스타트를 기분 좋게 끊은 롯데를 향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앞으로 여러 상황에서 드러날 허문회식 소통법에 더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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