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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데요?"
두산 베어스 최주환은 2006년 프로에 입단했다. 데뷔 이후 두산에서만 뛰었지만, 1군 주전 선수로 자리 잡기까지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최주환은 "서러워서 울기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만큼 힘든 시간을 스스로 견디며 성장해왔다. 하지만 절대 포기한 적은 없다. 다른 선수들이 기회를 기다리다 지쳐 포기할때, 최주환은 그 기회를 스스로 만들었다.
성과있는 시즌을 보낸만큼 이번 겨울은 더 바쁘다. 프로 선수가 되고나서 처음으로 양복을 차려입고 시상식에서 상도 받았고,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 후보도 됐다. 최주환은 "(양)의지가 대상을 받는 모습을 보니 정말 멋졌다. 이번엔 '기량발전상'을 받았으니, 앞으로 더 이 악물고 열심히 해서 또다시 그런 멋진 자리에 서고싶다는 동기부여가 확실히 됐다"며 눈을 반짝였다.
모두가 단숨에 스타가 될 수는 없다. 최주환은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탑을 쌓았다. 그래서 더 견고하고 단단하다.
◇보람찬 1년, 따뜻한 마무리
-며칠전 한 시상식에서 '기량발전상'을 받았다. 생애 첫 시상식 참석이었다고?
퓨처스리그에서 개인 타이틀 상(2010년 상무에서 타격 6관왕)을 받긴 했지만, 그때는 대륙간컵에 나가있어서 참가를 못했다. 시상식 자체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상받는 걸 미리 알고 있었는데도 엄청 떨렸다. 기량발전상이라 더 의미 있었다. 그렇게 많은 야구계 관계자들이 오신 큰 시상식인줄 몰랐다. 그동안 시상식을 사진으로만 봤으니…. 내게는 꼭 청룡영화상처럼 느껴졌다.(웃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던 (한)동민이도 '욕심이 난다'고 하더라. 시상식에 한번 가보니 동기부여가 확실히 생겼고, 여기서 안주하지 말고 더 높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는 오기가 생겼다.
-비시즌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아직은 쉬고 있다. 이제 곧 PT(1:1 트레이닝)를 시작할 예정이다. 지금은 안좋았던 복부 통증을 가라앉혀야 한다.
-시즌 도중에 스포츠탈장 증세가 있었는데.
알고보니 스포츠탈장이 아니라 치골염이었다. 올해 6월부터 조짐이 있었다. 처음에는 복근쪽이 조금 땡기는 느낌이었는데, 그 부위에 자극이 많이 가다 보니 상태가 점점 안좋아졌다. 병원에서는 처음에 스포츠탈장으로 진단을 내렸다. 2번,3번 정밀 검진을 다시 해보니 치골염이라고 결론이 났다. 스포츠탈장과 증상이 비슷하다고 한다. 치골 사이 힘줄 부위에 염증이 생겨서 뛸 때 아픈 것이다. 축구 선수들이나 육상 선수들이 자주 겪는다는데, 나는 이례적인 케이스다. 치골염 때문에 후반기에는 전력 질주를 잘 못했다. 몇 발자국만 가면 얼굴이 일그러질 정도로 통증이 왔다. 치골염은 수술을 할 수도 없고 휴식이 정답이다. 다만 시즌을 치르느라 쉬지 못하고 계속 근육을 사용했기 때문에 회복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리고 있다.
-통증이 있었는 데도 큰 탈 없이 시즌을 무사히 마쳤다.
관리를 해주신 덕분이다. 김태형 감독님과 조성환 수비코치님이 조절을 잘해주셨다. 한달 반 정도는 펑고를 안받았다. 상태가 심해질까봐 조절을 잘해주셨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미야자키 교육리그에 갔을 때도 통증이 다시 심해졌었는데, 그때 감독님이 많이 배려해주셨다. 그 덕분에 한국시리즈 때는 아픈 것을 잊고 뛸 수 있었던 것 같다.
-선수들에게 김태형 감독은 어떤 지도자인가.
한번씩 마음에 훅 와닿는 명언을 한마디씩 하신다.(웃음) 제가 꼽는 감독님의 명언 중 하나가 바로 "자신감있는 '척' 하지 말라"는 거다. 거기 안에 많은 뜻이 담겨있다. '척'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실력도 나와야 진짜 강한 선수로 상대에게 보여진다. 타석에서도 액션만 큰 선수는 자신감있는 '척'하는 선수인 거다. 감독님은 카리스마 있는 분이고, 선수들에게 일일이 많은 말을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사실 감독님에게 말을 많이 안들으면 잘하고 있는거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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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당시 두산 선수들의 상심이 굉장히 컸을텐데.
어쩌다보니 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다. 우리가 이길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필요할 때 무언가가 터지지 않았다. 또 (박)건우나 (오)재일이 형처럼 원래 잘하는 선수들이 그때 페이스가 떨어져있어서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힘들어 했다. 특히 건우는 경기 전후로도 라커룸에서 너무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부상으로 빠진) 김재환도 얼마나 미안해했는지 모른다. 우리가 반드시 우승을 해야한다는 부담감을 느꼈다기보다는 의도치 않게 경기가 잘 안풀리다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
-6차전 연장에서 SK 한동민의 홈런으로 두산의 준우승이 확정됐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멍했다. 다른 단어는 생각 나지도 않고, 너무 아쉬웠다. 그 생각 뿐이었다. 차라리 열받았으면 욕이라도 했을텐데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6차전은 정말 이길 수도 있다고 봤었기 때문에 더 아쉬웠다. 9회에 조쉬 린드블럼이 2아웃 잡았을 때까지만 해도 더그아웃에 있던 모두가 기대에 차서 경기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 정의 동점 홈런이 나온 순간 마치 꿈 같았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경기가 끝난 직후에는 감정이 없었고, 한참 후부터 후폭풍이 밀려왔다. 나같은 경우에는 계속 잠을 잔 것 같다. 우승을 했으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결과가 안좋으니 훨씬 더 피로감이 몰려와서 잠만 계속 잤다.
-마무리가 아쉬웠지만, 개인적으로는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거짓말처럼 내 성적은 기억 속에서 싹 사라졌다. 결국 개인 성적은 연봉으로 평가를 받는 거니까, 정규 시즌이 끝난 순간 잊어버리고 한국시리즈에만 몰두했다. 마지막에 꼭 우승트로피를 들고 싶었는데, 그거까지 했으면 정말 좋은 시즌이었을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 여파가 생각 이상으로 컸다. 우승은 마치 마쉬멜로우 같다. 2년 연속 우승할 때는 마냥 달콤하다가, 2년 연속 준우승을 할 때는 흔적도 없이 녹아 없어져버렸다.
-이번 한국시리즈 외에 최주환이 성장할 수 있었던 또다른 원동력이 있다면.
좋았던 것은 작년 플레이오프 2차전 역전 만루홈런. 자신감을 끌어올리고, 스스로 확신을 갖게 하는 굉장한 터닝 포인트였다. 그리고 이건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데, 작년에 SNS 사건이 있었다. (최주환은 지난해 개인 SNS 계정에서 한 야구팬과 설전을 벌인 일이 공개되는 논란을 겪었다) 저에게는 무척 큰 일이었다. 정말 힘들었다. 한국시리즈를 치르면서 그런 일이 있었고, 지금도 몇몇 분들에게 욕을 먹고 있다. 당시에 제가 잘못했던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많이 반성했고, 많이 생각했다. 경솔했던 부분을 인정한다. 그 후에 그 팬분과 전화 통화를 했다. 제가 죄송하다고 말씀드렸고, 그분도 제게 죄송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앞으로 꼭 더 잘했으면 좋겠다고 응원도 해주셨다. 프로 선수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운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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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두산에서는 수비 포지션이 애매하다. 내야수지만 내야 주전들이 꽉 차있으니 주로 지명타자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원래는 2루수가 맞다. 하지만 지금 (오)재원이 형이 잘하고 있으니까. 물론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고민이 있다. 난 반쪽짜리 선수가 아닌데, 그런 평가를 받을 때가 있으니 마음이 좋지는 않다.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다.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
-빠른 1988년생으로 1987년생 06학번들과 동기다. 메이저리거 류현진을 비롯해 LG 트윈스 김현수, SK 와이번스 최 정, 두산 동료 양의지 등 동기들이 모두 최전성기에 올라있다.
내 동기들은 다들 일찍부터 훨씬 잘됐다.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겨우 조금씩 자리잡고 있는 단계다. 이건 재미있는 이야기인데, 사실 KIA 양현종과 나는 생일이 딱 하루 차이다.(최주환은 1988년 2월 28일생, 양현종은 3월 1일생) 하지만 현종이는 나를 꼬박꼬박 형이라고 부르고 존칭을 쓴다. 초중고 후배이기 때문이다.(웃음) 가끔 빠른 년생이라 족보가 꼬일 때도 있는데, 야구계는 학번으로 하다보니 철저하게 나눠지는 것 같다.
-자리를 잡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20대때는 멋 모르고 할 때라 실감이 잘 안났다. 그래도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신인때 처음 1군에 올라왔다가 다시 2군에 내려가라는 통보를 받고, 너무 서러워서 짐 챙겨 야구장을 나가다가 하늘 쳐다보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 눈물 덕분에 더 악착같이 할 수 있었다.
-술,담배를 안한다고 들었다.
몸 관리를 위해 절대 안한다. 그나마 자동차를 좋아하는 편인데, 지금은 제 기준에 좋은 차를 타고 있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히 만족한다. 옷 욕심도 특별히 없다. 정말 사고 싶은 게 생기면 하나씩 사는 정도다.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고.
세살 차이 나는 동생은 내 매니저다. 어제도 시상식 다녀와서 피곤해서 뻗었는데, 동생이 대신 빨래도 해줬다.(웃음) 사이가 무척 좋은 편이다. 동생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함께 산지 4~5년 정도 됐다. 동생이 이제는 매니저처럼 내가 야구에 집중할 수 있게끔 많은 도움을 준다. 동생이 스포츠마사지 실력이 정말 좋은데, 시원하게 몸을 풀어주면 엄청난 도움이 된다. 마사지 실력은 타고 난 것 같다. 사실 더 잘해주고 싶지만, 저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는 입장이라.(웃음)
-연봉 관리를 부모님이 해주시나.
그렇다. 그래서 월급날이 돼도 돈이 들어온다는 실감 자체가 별로 없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관리를 해주셨다.
-32살 청년 중 부모님께 연봉을 전부 맡기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놀랍다.
그런가. 부모님이 어릴 때 키워주신 거에 비하면 별거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예전보다 연봉이 조금 올라서 맛있는 걸 더 많이 사먹을 수 있다.(웃음) 고기도 많이 사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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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좋았던 것들은 다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좋았던 것에만 너무 얽매어있으면 심리적으로 묶인다. 올해 성적을 계속 생각하면 앞으로도 근접한 성적을 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릴 수 있다. 이미 2016년에 한번 겪었다.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잘한다고 으스대고 자만하면 바로 끝난다. 어릴 때부터 그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그래서 늘 스스로 감시하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려고 한다. 2019년에도 그동안 해왔던 대로 절박하고 겸손하게 준비하겠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