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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기 들어 무서운 속도로 홈런수를 늘린 넥센 히어로즈 박병호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도 '페이스'를 늦추지 않았다. 홈런왕 경쟁에서 '역전승'할 수 있을 지에 더욱 큰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박병호는 아시안게임에서 4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조별 리그 홍콩전부터 슈퍼라운드 일본전 및 중국전에 이어 일본과의 결승전까지 4경기 연속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일등공신이 됐다. 경기가 벌어진 GBK야구장의 펜스 거리(좌 100m, 중 122m, 우 99m)가 국내구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는 점에서 박병호의 홈런 4개는 모두 비거리를 충분히 확보한 것이었다. 특히 박병호는 중국과의 슈퍼라운드 2차전에서 2-0으로 앞선 5회말 중앙 펜스 뒤 스크린을 넘어가는 대형 아치를 그리며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아시안게임에서 박병호는 특유의 '몰아치기'와 '괴력'을 모두 발휘한 셈이다.
박병호의 홈런 페이스가 무서운 것은 지난 4월 13일 종아리 근육 부상으로 한 달 넘게 공백기를 가졌으면서도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점 때문이다. 경쟁자들과 비교해 박병호는 29경기를 덜 치렀다. 부상 이전 박병호는 4홈런을 기록했다. 그가 재활을 하는 동안 홈런 레이스를 주도한 선수는 SK 최 정과 로맥, 김재환이었다. 박병호가 복귀하기 직전인 5월 19일 홈런 순위는 1위 최 정(18개), 2위 로맥(14개), 3위 한화 이글스 제라드 호잉(12개), 4위 김재환(11개)이었다. 최 정을 비롯한 3~4명의 선수가 시즌 끝까지 치열한 싸움을 할 것으로 예상됐고, 박병호는 이름조차 거론될 수 없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한여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중순 이후 양상이 달라졌다. 최 정은 허벅지 부상으로 3주간 빠져 있었고, 경쟁자들의 페이스는 뚝 떨어졌다. 그 사이 박병호가 스퍼트를 낸 것이다.
물론 홈런왕이 가장 유력한 후보는 여전히 로맥이다. 펜스 거리가 짧은 문학구장을 홈으로 쓰는데다 남은 경기수도 가장 많기 때문이다. 3일 현재 SK는 32경기, 넥센은 26경기, 두산과 KT는 31경기를 각각 남겨놓고 있다.
그러나 박병호는 페이스를 유지하며 아시안게임에서도 장타 감각을 이어갔다. 특유의 간결한 스윙과 정확한 선구안이 발군이고,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이 보태졌다. 아시안게임 중계 해설위원으로 활약한 이승엽은 일본과의 결승전 당시 박병호가 백스크린을 맞히는 홈런을 때리자 "백스크린도 넘기지 못하니 실망스럽다"는 반어적 코멘트로 놀라움을 표시했다. 박병호가 홈런을 칠 때마다 "박병호 선수 대단합니다"라고 연신 외쳤던 이승엽이다.
경기수와 홈구장 조건을 감안하면 여전히 불리하지만, 가장 유력한 홈런왕으로 박병호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안게임은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