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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엿한 37살 장년 KBO리그, 손봐야 할 장기과제들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17-12-31 19:34


'무술(戊戌)년' 새해가 밝았다. 한국 프로야구는 37번째 시즌을 맞는다. 유년기-소년기-청년기를 거친 KBO리그는 이제 장년기의 중후한 멋을 풍길 때가 됐다.

KBO리그는 경기력과 흥행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했지만, 제도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양적 팽창 못지 않게 중요한 질적 향상도 도모해야 하는데, 현실을 반영하면서 이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제도 정착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어 보인다. KBO리그는 그동안 여러 선진적 제도를 도입했으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어설픈 흉내만 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8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다. 관중 1000만명 달성을 위한 흥행 기세를 이어가야 하고, 오는 8월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과 2020년 도쿄올림픽도 준비해야 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리그가 발전하기 위해 보완이 필요한 세 가지 제도를 들여다본다. KBO리그 3대 장기과제다.


정운찬 KBO 신임 총재는 최근 몇 년 동안 문제로 지적돼 온 프로야구의 장기적 현안들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용병 3명 철폐 고민해야 한다

1998년 외국인 선수 제도를 도입할 때 취지는 전력 보강과 선진 기술(技術) 습득이었다. 전력 보강은 당연한 것이고, 한 단계 높은 기술을 지닌 선수들의 유입이 국내 선수들의 기량과 경기력 향상에 이바지할 것이란 기대가 컸다. 기존 선수들의 기회가 박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도 했지만, 지난 20년간의 시행 역사를 들여다 보면 본래 취지에 충실했음을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둘씩 드러나고 있다. 외국인 선수 보유 제한 때문에 비용적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외국인 선수 보유 규정은 초창기 2명 보유에서 '3명 보유-2명 출전'(2001~2002년)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2명 보유로 환원돼 2013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다 2014년 3명 보유-2명 출전에 같은 포지션에서 3명의 선수를 모두 뽑을 수 없다는 규정으로 바뀌어 일단 이번 시즌까지 시행된다.

문제는 투자 대비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는 선수는 보통 100만달러 이상을 줘야 데려올 수 있다. 영입 첫 시즌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할 경우 들여야 할 추가 비용이 만만치 않다. 2017년 10개 구단이 외국인 선수 교체에 들인 돈은 총 825만달러(약 88억원)다. 퇴출 선수 7명의 보장 연봉이 542만5000달러였고, 이들의 대체 요원 7명에게 282만5000달러를 썼다. 실력 미달로 잘라낸 선수들은 계약된 연봉을 모두 줘야 하기 때문에 '매몰 비용(sunk cost)' 측면에서 폐해가 더욱 크다. 넥센 히어로즈는 110만달러짜리 투수 션 오설리반과 65만달러 외야수 대니 돈을 중간에 퇴출해야 하는 고통을 겪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외국인 선수 보유 제한을 철폐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웃 일본 프로야구(NPB)가 좋은 예다. NPB의 외국인 선수 규정은 '1,2군 무제한 보유에 1군 등록 4명'이다. 1군에서는 투수와 야수 한 포지션에 최대 3명까지 허용되는데, 보통 투수 3명-야수 1명으로 구성된다. 1953년부터 공식적으로 외국인 선수를 쓰기 시작한 NPB는 꾸준히 3명 보유를 유지해 오다 1996년부터 무제한 보유에 1군 4명으로 바꿨다. 이유는 지금 KBO리그가 겪고 있는 이런 문제 때문이었다.


젊고 유망한 외국인 선수들을 싼값에 데려와 육성해 써보자는 취지다. NPB에서 '육성형 용병'으로 스타가 된 선수는 한둘이 아니다. 토니 블랑코, 아롬 발디리스, 미첼 어브레유, 알렉산드라 마에스트리, 막시모 넬슨 등을 들 수 있다. 단기간 성과를 거두기는 힘들어도 꾸준히 키우다 보면 1군 전력으로 만들 수 있다. 검증 안된 어중간한 선수를 비싸게 데려와 쓰지 못할 경우 육성 선수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아예 육성 선수를 1군 주력으로 삼을 수도 있다. 김응용 감독, 김성근 감독 등 원로 야구인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외국인 선수 보유 제한을 풀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는 FA 몸값 거품 현상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 쓸 자원이 많으면 값비싼 FA를 무리하게 데려올 필요가 없다. 해당 FA에게서 원하는 역할을 기존 외국인 선수가 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NPB처럼 무제한은 아니더라도 3명으로 묶어 둔 지금의 제도를 어느 정도 완화시킬 필요는 있다.


144경기 체제로 시즌을 치르면서 각 구단들은 페넌트레이스 막판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팀당 144경기 줄여라

10개팀-144경기 체제로 지난 3시즌을 현장 지휘한 감독들 대부분은 "경기수가 늘어난 뒤로 야구가 재미없어졌다. 타고투저가 이와 무관치 않고,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제대로 쓸 선수가 없다"고 토로한다. 144경기는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의견들이다. 1군 엔트리를 늘리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경기수를 지금처럼 유지하다간 주력 선수들의 수명이 짧아질 수도 있다고 걱정한다.

KBO리그 경기수는 8개팀 체제가 시작된 1991년부터 1998년까지 팀당 126경기를 치르다 1999년 132경기, 2000~2004년 133경기, 2005~2008년 126경기, 2009~2012년 133경기, 2013~2014년 128경기로 바뀌었다. 2015년 10개팀 체제가 되면서 팀당 경기수가 갑자기 16경기나 늘어났다. 현장에서는 이것이 정상적인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KBO의 입장은 이렇다. 팀 수가 늘었으니, 경기수도 늘리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매일 경기가 열리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서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또 하나 흥행, 즉 입장관중 규모도 커져야 프로야구의 존재 이유가 더욱 뚜렷해진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선수들의 경기력을 생각해야 한다. 144경기를 소화할 수 있는 체력과 시스템이 아직 정착돼 있지 않다고 봐야 한다. 한 베테랑 선수는 "128경기를 하다가 갑자기 144경기를 하니까 힘들다. 돈을 받는 만큼 일을 하는건 맞지만, 환경을 만들어 놔야지 무조건 경기수를 늘린다고 능사는 아니다"고 했다. 대신 1군 엔트리를 26명(25명 출전)에서 27명(25명 출전)으로 확대하기는 했지만, 현장에서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반응이다. 모 감독은 "결국 투수 또는 야수 한 명 늘리는 건데, 실제로 경기에 나가는 선수는 정해져 있다. 오늘 나간 선수가 내일도 나간다. 선수층이 그만큼 안된다는 이야기다"고 했다.

NPB의 경우 2007년부터 144경기를 하다가 2015년 143경기로 줄여 지금도 시행하고 있다. NPB는 경기수를 급격히 늘리지는 않았다. 1990년대 이후만 보더라도 130, 132, 135, 138, 140경기로 조금씩 늘렸고, 2005~2006년 센트럴리그가 146경기를 치렀지만 이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인터리그, 즉 교류전 경기수 때문에 변동이 있으나, 경기수를 지금 수준에서 늘리자는 의견은 없다.

우리에게 팀당 144경기는 아직은 너무 많다. 경기수 문제는 현장의 목소리도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 아울러 팀간 16차전을 위해 2연전을 두 차례씩 불가피하게 집어넣어야 하는 까닭으로 8월 이후 경기 일정이 버겁다는 점도 충분히 고민해 봐야 한다.


LG 트윈스는 유턴파 김현수에게 4년 115억원의 거액을 안겼다. 그러나 추가로 옵션 조항이 있는 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깜깜이 계약, 투명하게 해라

이번 스토브리그서도 각 구단은 FA 계약 내용 발표에 관해 여전히 소극적이다. LG 트윈스는 해외 FA 김현수와 4년 총액 115억원에 계약했다. 계약금 65억원, 연봉 50억원이 발표 내용의 전부다. 연도별 연봉이 얼마인지, 추가적으로 옵션 금액이 있는 지 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KIA 타이거즈는 양현종과 1년 23억원에 재계약했다. KIA 구단의 발표에 다른 내용은 없었다. 양현종의 경우 규정상 1년 계약으로 발표했을 뿐, 1년 전 FA를 선언한 뒤 해외진출을 시도했다가 KIA에 잔류하면서 1년 계약만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몇 년 기간을 보장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해당 내용은 누구도 알 수 없고, 또한 23억원 이외에 옵션 조항이 붙었는지 여부도 비밀이다.

kt 위즈도 지난달 'U턴파' 황재균을 4년 88억원에 영입하면서 '계약금 44억원, 연봉 각 11억원'이라고만 발표했다. 역시 옵션은 밝히지 않았다. 김현수, 황재균 모두 새삼스럽지만 계약금이 전체 금액의 절반 넘게 차지한다는 사실이 웃을 일이고, 실제 계약서에 담긴 내용을 온전히 공개한 건지도 의문이다. 옵션, 엄격히 말하면 성적에 따른 인세티브 조항이 담겨 있음에도 일부러 발표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지난해 이맘때 KIA는 FA 최형우와 4년 100억원에 계약했지만, 계약금 40억원에 연봉 15억원만 공개됐다. 옵션이 추가로 담겼는지, 담겼다면 그 규모는 얼마이고 조건은 무엇인지 1년이 지난 지금도 '내부자'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거품론'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발표 내용의 투명함과 대중과의 공유가 아쉽다는 이야기다. 이 부분에서 구단들이 후진적인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프로야구 프런트를 지낸 한 인사는 "계약 내용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지 않는 것은 선수가 원하기 때문이다.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또 계약 규모가 그대로 노출될 경우 더 커지는 여론의 반감을 경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직업 운동선수와 연예인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매년 5월 종합소득세를 납부하게 돼 있다. 실제 구단에서 받은 금액을 국세청에 신고해 일반 경비 등 공제 방식에 따라 실소득액을 산출하고 해당 세율에 따라 세금을 낸다. 이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들이 실제 얼마에 계약했는가를 알 수는 있지만, 팬들이나 언론이 굳이 그렇게 할 능력도 의무도 사실 없다.

프로야구는 팬들의 지지와 응원을 먹고 산다. 선수들이 일반인이 누리기 힘든 경제적 대우를 받는 건 특별한 재능을 통해 팬들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용인된다. 이제는 계약금, 연봉, 옵션 등 있는 그대의 내용을 소상히 공개하는 게 바른 길이다. 축소 계약, 이면 계약 같은 말이 더이상 나오지 않도록, 이왕 밝히기로 한 거 정확히 밝혀야 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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