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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스토리]GM으로 만난 부산고 동기 양상문-김태룡, 그들의 새로운 승부

이원만 기자

기사입력 2017-12-28 21:05


◇지난 3월2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시범경기 LG-두산전에 앞서 환담을 나누는 양상문 당시 LG 감독(현 단장)과 김태룡 두산 단장(왼쪽부터). 스포츠조선 DB

지금으로부터 거의 40년 전의 일. 부산고 운동장에서 함께 공을 주고받던 까까머리 10대 야구 소년 두 명이 있었다. 아직은 이 땅에 '프로야구'가 탄생하기도 전. 그래도 두 야구 소년은 '야구 선수'로 성공하겠다는 결의를 가슴에 품은 채 힘든 훈련을 함께 견뎠다.

하지만 운명은 그들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안내했다. 한 명은 실업야구를 거쳐 프로선수로 이름을 알리고, 프로팀 감독까지 했다. 다른 한 명은 대학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그리고, 고향팀의 프런트로 입사해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아 나섰다. 흔히 말하는 꽃길과 흙길의 갈림. 그런데 서로 갈려 영 다르게 뻗어갈 듯 했던 운명의 갈림길이 다시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됐다. 프로야구 레전드 선수에서 코치, 감독으로 승승장구하던 한 소년은 LG 트윈스 양상문 단장(56)이다. 그리고 일찌감치 프런트 말단 사원으로 무대 뒤에서 궂은 일을 하던 다른 소년은 두산 베어스 김태룡 단장(58)이다. 이제 두 사람은 잠실 라이벌팀의 단장으로 또 다른 승부를 펼치게 됐다.

극과 극의 35년 프로 여정

원래 학년으로는 김 단장이 1년 선배다. 하지만 야구를 다소 늦게 시작한 김 단장이 중학교 시절 1년 유급을 하게 되면서 둘은 부산고 야구부 동기가 됐다. 양 단장은 팀의 에이스, 김 단장은 2루수를 맡았다. 그러나 고교 졸업 시점에서 운명이 갈렸다. 양 단장은 고려대로 진학한 뒤 1983년 실업팀 한국화장품을 거쳐 1985년 고향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반면 김 단장은 대학(동아대)을 끝으로 현역을 마감했다. 이어 1983년 롯데 프런트 직원으로 입사했다.

당연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양 단장에게 몰렸다. 롯데에서 2년(1985~1986)을 뛴 뒤 1986시즌 후 청보 핀토스로 트레이드 된 양 단장은 1987시즌 평균자책점 3.10에 12승을 거뒀다. 하지만 아마추어 시절 혹사로 프로에서는 크게 빛을 내지 못했다. 통산 9시즌 동안 평균자책점 3.59에 63승79패13세이브를 기록하고 1993시즌 후 은퇴한다.


◇LG 트윈스 양상문 단장이 현역 은퇴 1년 전인 지난 1992년 당시 태평양 돌핀스 소속으로 마운드에 올라 투구하는 모습. 스포츠조선 DB
양 단장은 은퇴 후 곧바로 1994년 롯데 투수코치가 돼 2001년까지 선수들을 지도했다. 2002년 LG 투수코치로 서울에 입성한 양 단장은 2년 후인 2004년부터 2년간 롯데 감독을 맡았다. 프로 감독으로 취임할 때(2003년 10월) 양 단장은 42세였다. 현역 시절보다 코치로서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셈.

2005년 롯데를 5위로 올렸지만, 재계약에 실패한 양 단장은 2006년 방송 해설위원으로 변신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나 곧바로 2006년 말 LG 투수코치로 현장에 복귀했고, 2008년 말에 고향팀 롯데 2군 감독으로 부임했다가 2010년에는 1군 투수코치로 일했다. 2010시즌을 마치고 다시 방송 해설위원, WBC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등을 거치며 야인 생활을 했던 양 단장은 2014년 5월 LG 감독으로 현장에 돌아왔다. 첫 해에는 9위, 2016년에는 4위, 2017년에는 6위로 팀을 이끈 뒤 시즌 종료 후 류중일 신임 감독 부임과 함께 단장으로 변신했다.

초보 GM vs 베테랑 GM


그 사이 김 단장은 말 그대로 밑바닥부터 정통 프런트오피스 맨의 길을 걸었다. 롯데에 입사한 뒤 1990년 OB 베어스(두산 베어스 전신)로 이직한 김 단장은 1군 매니저와 운영팀, 홍보팀을 골고루 거치며 '베이스 DNA'를 온몸에 심었다. 마침내 2011년 두산 단장에 올라섰다. 1983년 프런트 말단 직원으로 야구계에 발을 내딛은 후 28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이 때를 기점으로 스포트라이트는 김 단장에게 몰렸다. 마침 양 단장이 방송 해설위원을 하며 잠시 현장 일선에서 물러났던 시기다. 반면 김 단장은 본격적으로 GM 역할을 한 2012년 이후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 2회, 준우승 2회로 이끌었다. 이 덕분에 '현장 출신 정통 GM'의 성공 사례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이렇게 희비와 명암이 교차한 두 사람의 35년 야구 인생은 이제 2017년 겨울을 기점으로 또 다른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잠실 라이벌' LG와 두산
◇2016년 한국시리즈에서 NC다이노스를 꺾고 우승을 확정지은 두산 베어스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는 김태룡 단장. 스포츠조선 DB
의 GM으로서 새로운 형태의 승부를 펼치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GM 경력'과 노하우 면에서는 김 단장이 현재 월등히 앞서는 게 사실이다. 양 단장은 이제 겨우 두 달 남짓 밖에 안된 '초보 GM'이다. 같은 선상에서 역량을 비교할 순 없다.

양 단장 역시 "그런 면(경력, 노하우)에서는 김 단장의 내공이 깊다. 지금이야 같은 단장 입장이라 자세한 부분에 관해 이야기를 자주 나누긴 어렵지만, 과거에 내가 야인 시절이나 감독 시절에 김 단장으로부터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듣고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단장'은 프런트오피스의 수장이다. 때문에 그로부터 나오는 모든 결정에 관해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팀 성적에 반영되는 부분도 상당히 크다. 때문에 '초보'라는 타이틀을 방패로 삼을 순 없다. 양 단장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이제 같은 GM이라 따로 조언을 듣기는 어렵다. 게다가 서울 라이벌 팀을 이끄는 입장이지 않나. 나 역시 현장에서 이제껏 쌓아 온 노하우를 잘 활용하고, 이전에 들었던 여러 조언들을 참고해서 (김 단장과) 좋은 승부를 펼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태룡 단장과 양상문 단장. 두 사람의 긴 '우정의 승부'는 어떤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게 될까. 2018년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가 펼칠 승부가 더욱 흥미로워질 것 같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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