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베이스볼]누구는 쉽고 나는 어려운 '아홉수' 실력인가 운인가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17-08-04 07:34


롯데 자이언츠 박세웅은 지난 2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또다시 시즌 10승에 실패했다. 그가 마운드에 있는 동안 롯데 타선은 2점 밖에 내지 못했다. 잠실=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동료들이 도와줘야 승리도 따내고 기분도 좋은 법이다.

2일 현재 10승대 투수는 5명이다. KIA 타이거즈 헥터 노에시(15승)와 양현종(14승), SK 와이번스 메릴 켈리(12승), 두산 베어스 더스틴 니퍼트(11승), NC 다이노스 에릭 해커(10승)가 다승 1~5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 시즌 10승을 따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이들은 9승에서 10승을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5명 모두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9승 다음에 바로 10승을 따냈다.

가장 최근 10승 고지를 밟은 해커의 경우 7월 21일 SK를 상대로 시즌 9승, 27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10승을 거뒀다. 해커는 6⅔이닝 2안타 무실점의 완벽한 투구를 했고, 팀 타선도 그가 마운드에 있는 동안 7점을 지원했다. 양현종은 6월 25일 두산을 상대로 시즌 9승을 따냈고, 이어 27일 삼성전서 6이닝 3실점의 퀄리티 스타트로 10승 고지에 올랐다. 당시 KIA 타자들은 6회까지 10득점을 올렸고, 결국 11대4로 승리했다. 둘 다 동료 타자들의 폭발적인 지원을 받았다.


KIA 타이거즈 헥터 노에시는 올시즌 본인의 출중한 실력과 동료 타자들의 화끈한 도움 속에 14연승을 달리기도 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물론 투수 본인의 호투도 빼놓을 수 없는 공통점이다. 켈리는 6월 28일 두산전서 7이닝 7안타 무실점, 헥터는 6월 14일 롯데 자이언츠서 7이닝 3실점의 쾌투를 펼치며 10승에 올랐다. 다만 니퍼트는 지난달 21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6이닝 6실점으로 고전하고도 동료들이 6회까지 8점을 뽑아줘 승리투수가 될 수 있었다.

에이스가 등판하는 날, 타자들은 절로 힘이 난다고 한다. '오늘은 이길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이 타격과 수비를 편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아홉수(數)'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홉수는 원래 '남자 나이에 9, 19, 29와 같이 아홉이란 수가 들면 결혼이나 이사와 같은 일을 꺼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올시즌 유독 10승 달성에 애를 먹는 투수가 있다. 풀타임 선발 두 번째 시즌을 맞은 롯데 박세웅이다. 지독한 아홉수에 걸린 것이다. 박세웅은 6월 25일 두산전에서 시즌 9승을 거뒀다. 이후 6경기에서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고 1패만 당했다. 6경기 연속 6이닝 이상을 던지고, 4번의 퀄리 티스타트를 기록하고도 10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도 6이닝 5안타 2실점으로 잘 던졌으나, 2-2 동점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와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다.

박세웅은 현재 팀 내 최다승으로 올시즌 사실상 에이스 역할을 해왔다. 외국인 투수들의 동반 부진이 22살의 박세웅에게 에이스라는 부담을 지운 셈이다. 하지만 박세웅은 한층 노련해진 경기운영과 자신감을 앞세워 평균 6이닝 투구를 하며 1선발로 자리잡았다. 문제는 동료들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올해 박세웅의 득점지원율(선발투수가 마운드에 있는 동안 타선이 올린 득점을 9이닝 기준으로 환산한 수치)은 3.60으로 규정이닝을 넘긴 투수 22명 가운데 13위다.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이날 LG전과 직전 등판인 한화전에서도 6이닝 동안 2점 밖에 지원받지 못했다. 더구나 6경기 가운데 3번은 불펜이 승리를 날린 케이스다. 10승을 넘긴 5명과 비교해 팀전력 자체가 불안하다는 이야기다.

아홉수 조짐이 있는 롯데 투수가 한 명 또 있다. 개인통산 100승에 1승을 남겨놓은 송승준. 그는 7월 26일 한화전에서 7이닝 2실점의 쾌투로 통산 99승에 올랐다. 다음날 조원우 감독은 "승준이가 곧바로 100승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1일 잠실 LG전에서 송승준은 5이닝 9안타 2실점의 역투를 펼쳤지만, 0-2로 뒤진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가 패전을 안았다. 득점지원이 제로였다. 후반기 침묵을 벗지 못하고 있는 롯데 타선이 앞으로 송승준 등판 경기서 살아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KIA 타이거즈 양현종은 지난 7월 13일 광주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전에서 개인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반면 양현종은 올시즌 통산 100승을 '편안한' 상황에서 달성했다. 7월 13일 광주에서 열린 NC전에서 6이닝 4안타 1실점의 호투로 시즌 13승과 함께 통산 100승 고지에 올랐다. KIA 타자들은 5점을 지원해줬고, 불펜진도 실점없이 경기를 마무리했다.

통산 100승의 추억은 메이저리거 박찬호에게도 있다. 박찬호는 2005년 6월 25일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이던 박찬호는 원정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 선발로 나가 5이닝 동안 11안타를 내주고 6실점하며 고전했지만, 타선 도움을 받아 시즌 6승과 함께 통산 100승에 입맞춤했다. 당시 텍사스가 14대9로 크게 이긴 경기였다. 직전 등판인 5월 30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6이닝 3실점으로 통산 99승을 올릴 때도, 텍사스 타자들은 폭발해 12대4의 승리를 이끌었다.

'아홉수'는 사실 심리적 부담의 의미가 담긴 말이다. 큰 일을 앞두고 부담을 가지면 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세웅과 송승준은 부담이란 말을 찾아보기 어려운 성과를 내고 있다. 단순히 운이 없을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수의 승리가 혼자의 힘으로 이뤄질 수 없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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