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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들이 도와줘야 승리도 따내고 기분도 좋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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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가 등판하는 날, 타자들은 절로 힘이 난다고 한다. '오늘은 이길 수 있겠구나'라는 마음이 타격과 수비를 편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아홉수(數)'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홉수는 원래 '남자 나이에 9, 19, 29와 같이 아홉이란 수가 들면 결혼이나 이사와 같은 일을 꺼린다'는 말이다.
박세웅은 현재 팀 내 최다승으로 올시즌 사실상 에이스 역할을 해왔다. 외국인 투수들의 동반 부진이 22살의 박세웅에게 에이스라는 부담을 지운 셈이다. 하지만 박세웅은 한층 노련해진 경기운영과 자신감을 앞세워 평균 6이닝 투구를 하며 1선발로 자리잡았다. 문제는 동료들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올해 박세웅의 득점지원율(선발투수가 마운드에 있는 동안 타선이 올린 득점을 9이닝 기준으로 환산한 수치)은 3.60으로 규정이닝을 넘긴 투수 22명 가운데 13위다. 썩 좋은 편이 아니다. 이날 LG전과 직전 등판인 한화전에서도 6이닝 동안 2점 밖에 지원받지 못했다. 더구나 6경기 가운데 3번은 불펜이 승리를 날린 케이스다. 10승을 넘긴 5명과 비교해 팀전력 자체가 불안하다는 이야기다.
아홉수 조짐이 있는 롯데 투수가 한 명 또 있다. 개인통산 100승에 1승을 남겨놓은 송승준. 그는 7월 26일 한화전에서 7이닝 2실점의 쾌투로 통산 99승에 올랐다. 다음날 조원우 감독은 "승준이가 곧바로 100승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1일 잠실 LG전에서 송승준은 5이닝 9안타 2실점의 역투를 펼쳤지만, 0-2로 뒤진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가 패전을 안았다. 득점지원이 제로였다. 후반기 침묵을 벗지 못하고 있는 롯데 타선이 앞으로 송승준 등판 경기서 살아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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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양현종은 올시즌 통산 100승을 '편안한' 상황에서 달성했다. 7월 13일 광주에서 열린 NC전에서 6이닝 4안타 1실점의 호투로 시즌 13승과 함께 통산 100승 고지에 올랐다. KIA 타자들은 5점을 지원해줬고, 불펜진도 실점없이 경기를 마무리했다.
통산 100승의 추억은 메이저리거 박찬호에게도 있다. 박찬호는 2005년 6월 25일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이던 박찬호는 원정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 선발로 나가 5이닝 동안 11안타를 내주고 6실점하며 고전했지만, 타선 도움을 받아 시즌 6승과 함께 통산 100승에 입맞춤했다. 당시 텍사스가 14대9로 크게 이긴 경기였다. 직전 등판인 5월 30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서 6이닝 3실점으로 통산 99승을 올릴 때도, 텍사스 타자들은 폭발해 12대4의 승리를 이끌었다.
'아홉수'는 사실 심리적 부담의 의미가 담긴 말이다. 큰 일을 앞두고 부담을 가지면 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세웅과 송승준은 부담이란 말을 찾아보기 어려운 성과를 내고 있다. 단순히 운이 없을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투수의 승리가 혼자의 힘으로 이뤄질 수 없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