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김성근 감독 "한낮에 훈련마친 적은 이번이 처음"

박재호 기자

기사입력 2016-11-14 00:57 | 최종수정 2016-11-14 14:32


◇김성근 한화 감독.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6.09.25/

한화 이글스가 마무리훈련중인 일본 미야자키 기요타케 종합운동공원에는 요즘 기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원래 젊은 선수들이 한데뭉쳐 훈련을 하면 고함도 지르고, 서로를 격려하는 소리도 크다. 한화 훈련장에는 늘 빠지지 않는 한가지가 더 있었다. 땀범벅과 흙투성이가 된 선수들이 몰아쉬는 거친 숨소리.

올해 가을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김성근 한화 감독은 늘 하던대로 그라운드에 꼿꼿이 서서 훈련을 지휘하지만 연습시간은 오전 10시 전후로 시작돼 투수들의 경우 오후 3시면 끝난다. 야수들도 일몰 이전에 훈련을 모두 마친다. 4일 훈련 뒤 하루 휴식의 일정이다. 김 감독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옥훈련', '야간훈련'은 없다.

하지만 선수들은 사령탑의 얼굴이 더 밝아진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김 감독은 13일 오후에 줄곧 투수들과 함께 있었다. 어린 투수들의 불펜피칭을 체크한 뒤 베테랑 선수들이 러닝훈련을 하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배영수는 "감독님이 계속 계시면(눈치가 보여) 러닝하다가 숨넘어갈 수도 있다"며 우스갯소리를 했고, 송은범은 "오늘 감독님 기분이 좋은 것은 내가 불펜에서 108개나 볼을 뿌렸기 때문"이라며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화의 올해 마무리캠프는 이전과는 180도 다르다. 자율색이 짙고, 베테랑이 중심이다. 일반적인 마무리캠프는 고참선수들이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화의 경우 야수는 김태균 이용규 정근우 송광민 등 다수의 베테랑은 대전에서 자율훈련중이다. 투수들은 다르다. 박정진과 심수창이 미야자키행을 자원했고, 윤규진 이태양 정대훈 배영수 이재우 안영명 김민우 김혁민 등 베테랑과 부상재활 선수가 총망라됐다. 팔꿈치 수술을 권 혁과 송창식, 그리고 마무리 정우람만 빠진 상태다.

김 감독은 "3년 만에 모처럼 많은 투수들이 러닝으로 몸을 단련할 만큼 건강하게 훈련하고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은 투수들의 러닝량을 늘린 상태다. 내년 2월 스프링캠프에서 무리없이 볼을 뿌리기 위한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미야자키 캠프에서 수비펑고를 직접 쳐주는 김성근 감독. 미야자키=박재호 기자
"해가 중천에 있는데 숙소가는 건 이번이 처음"

김 감독은 이날 투수들이 오후 3시가 되자 짐을 싸서 숙소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벌써 훈련을 마쳤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많은 훈련량을 고집했던 야구관이 바뀐 것이 아니다. 김 감독은 "내가 아니라 요즘 선수들이 바뀐 것이다. 미야자키캠프 초반 사흘간 훈련량을 늘렸더니 선수들이 하나둘씩 지쳐 주저앉았다. 안되겠다 싶었다. 양보다는 질, 맞춤형이 낫겠다 싶었다. 트레이닝 파트에서 알아서들 잘한다"고 말했다.

훈련 분위기는 부드럽다. 김 감독은 신인 내야수 김주현(23)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배팅연습에서 몸쪽 높은 볼을 왜 안치냐고 했더니, '볼입니다'라고 하더라. 속으로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연습배팅 때 십여개의 타구를 담장 밖으로 넘겼다. 폴을 살짝 빗나간 것을 보고 '파울'이라고 했더니 '폴을 스쳤다'며 우겼다"며 웃는다.

김 감독은 이용규와 송광민의 대전훈련 상황도 매일 보고서를 통해 체크하고 있다. 김 감독은 "최근 둘에게 전화를 걸어 '여행삼아 미야자키로 들어오라'고 했더니 '러닝할 준비가 전혀 안됐다'며 뒤로 물러서더라(웃음). 알아서 하는 선수는 혼자서도 알아서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투수 둘이 합쳐 20승만 해주면 소원이 없겠다"

올해 한화의 성적은 뼈아프다. 부임 첫 해인 2015년 6위, 올해 7위. 지난 3년간 외부 FA 영입 등 대대적인 투자를 했던 한화. 김성근 감독 영입은 방점을 찍는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년간 가을야구를 하지 못했다. 명백한 실패다. 여기에 FA 영입으로 인한 유망주 유출과 선수단 고령화 현상, 투수난에 따른 마운드 보직 파괴는 부상자 증가로 이어졌다. 성적이라는 반대급부가 없는 상황이어서 마이너스 측면이 더 커 보인다.

김 감독은 "올해는 뭔가 단단히 꼬인 한해였다. LG와의 개막 2연전이 가장 속상하다. 2차전에서 스퀴즈 번트 찬스가 있었지만 3루 주자가 김태균이었다. 안정적으로 가자 싶었는데 패착이었다. 고비를 넘지 못했고, 부상선수도 많이 나왔다. 결국 좀더 꼼꼼하지 못했던 내 탓이다"고 말했다.

외국인 선수 영입은 발등에 불이다. 외국인 타자 로사리오를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 좋은 외국인 투수 2명도 확보해야한다. 로저스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후 미국에서 재활중이다. 본인은 한국에 오고싶어한다. 하지만 몸상태가 우선이다. 김

감독은 "그저 외국인 투수 2명이 10승씩, 둘이 합쳐 20승만 해주면 좋겠다. 더 바라지도 않는다. 매번 같은 투수들로 경기를 막다보니 5연승 이상은 무리다. 나라고 같은 투수만 쓰고 싶겠나. 경기를 미리 포기하면 다른 길도 있겠지만, 그건 팬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수만 버텨주면 불펜도 살아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목표는 말하지 않아도 나와 선수들이 본능적으로 안다"

김 감독은 내년 구상에 대해 "먼저 부상 선수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 젊은 투수들 사이에서 성장하는 선수도 나올 것이라고 본다. 내 입으로 목표를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팀 구성원들이 피부로 느낄 것이다"고 말했다. 한화는 이미 성적에 상관없이 치고 인기 구단 중 하나다. 한화 관련 뉴스는 10개 구단 중 최고의 주목도를 자랑하고, 김 감독의 이름이 들어간 기사는 예외없이 팬들의 눈길을 끈다.

김 감독의 거취는 올가을 핫이슈였다. 한화그룹은 김 감독에게 임기보장을 하는 한편, 단장을 교체하며 구단 전체에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박종훈 신임 단장은 KBO리그 첫 감독 출신 단장이다. 김 감독은 1군 경기력 부분만 전담하게 된다. 역할이 줄어드는 것을 달갑게 여길 이는 없다. 김 감독의 마지막 임기는 지난 2년보다 훨씬 다이내믹할 전망이다.


미야자키(일본)=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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