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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쪽-몸쪽-몸쪽-몸쪽-몸쪽. 왜 LG 트윈스 팬들이 그토록 데이비드 허프(32)에 열광하는지, 이 한 장면이면 설명이 가능했다.
허프는 정규시즌에서 피안타율이 2할5푼4리다. 주자가 없을 때 2할2푼4리, 득점권에서는 3할2푼4리로 꽤 높다. 그런데 동점주자가 있을 때는 피안타율이 뚝 떨어진다. 1할4푼3리밖에 되지 않는다. 기록은 틀리지 않았다. 이택근을 상대로 초구 체인지업(130㎞)을 바깥쪽으로 떨어뜨린 뒤 2구부터 6구까지 모두 몸쪽 승부를 펼쳐 내야 플라이로 돌려 세웠다. 소위 말하는 먹힌 타구를 만들어 내야 땅볼이나 얕은 뜬공을 유도하겠다는 의도였고, 이것이 적중했다.
그런데 이 같은 볼배합은 말처럼 쉽지 않다. 같은 코스로 비슷한 공을 잇따라 던질 경우 타자의 눈에 익기 때문이다. 통상 지도자들은 "같은 코스로 3개의 공을 연달아 던지지 마라"고 포수에게 주문한다. 가끔 타자의 의표를 찔러 기막힌 결과로 이어지기는 하나, 대체적으로 최고의 시나리오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면에서 이날 허프와 포수 유강남의 볼배합은 탄성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계속해서 타자 몸쪽으로 앉은 유강남이나, 또 고개 한 번 흔들지 않고 몸쪽으로 붙인 허프나,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허프는 계속된 2사 3루에서 '깜짝 선발 출전한 김지수마저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주먹을 불끈 쥐고 포효하는 세리머니를 했다. 당시 그는 볼카운트 3B까지 몰렸다. 이택근에게 잘 먹힌 직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4구 직구로 영점을 잡은 뒤 6,7구로 거푸 체인지업을 던져 헛방망이질을 유도했다. 130㎞ 체인지업이 기막히게 떨어졌다. 베테랑 이택근에게 철저한 배짱투를 했다면, 경험이 적은 김지수를 상대로는 '꾀는' 투구를 했다.
만약 허프가 줄무늬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면. LG 팬으로선 끔찍한 상상이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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