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 이대호가 주전 1루수로 출전했다면 과연 어땠을까. 벌써 20홈런 가까운 엄청난 기록을 세웠을까.
이대호의 홈런 페이스가 대단하다. 이대호는 11일(이하 한국시각) 열린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경기에서 시즌 두 번째 연타석 홈런을 때려내며 미국 진출 첫해 10홈런 고지를 정복했다. 처음 마이너 계약을 맺었을 때는 과연 이대호가 메이저 무대에 쉽게 설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이제는 굳이 시애틀에 있을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존재감을 과시중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메이저리그는 세계 최고의 야구 무대다. 야구를 제일 잘한다는 선수들만 모여있다. 타자, 투수 마찬가지다. 이 최고의 투수들을 상대로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자체가 엄청난 능력.
여기에 이대호는 현재 쉽게 타격감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대호는 애덤 린드와의 플래툰 시스템 속에 주로 좌완 선발투수가 나올 때만 선발로 나선다. 시애틀은 11일 텍사스전까지 61경기를 치렀다. 이대호의 출전 경기 수는 고작 41경기. 이 중에 대타로 출전한 경기도 매우 많다. 절반 정도 경기를 띄엄띄엄 뛰며 낯선 무대에서의 타격감을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도 11홈런을 치며 한국 장타자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지만, 이대호와 비교하면 타수 차이가 많이 난다. 박병호는 11일 경기까지 181타수를 소화했지만, 이대호는 103타수에 그쳤다. 박병호가 평범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이대호의 집중력을 높이 평가해야 할 부분이다.
이대호에게는 메이저 무대가 오히려 쉽다?
사실 이대호는 전형적인 홈런타자가 아니다. 이대호 스스로도 롯데 자이언츠에서 뛸 때부터 "나는 중장거리 타자"라고 얘기해왔다. 그런 이대호가 제한적 기회에도 많은 홈런을 생산해낼 수 있는 이유는 어떤 것일까.
먼저 메이저리그 무대의 특성이 중요하다. 미국 야구는 방어적이지 않다. 강타자들이 나와도 투수들이 극단적인 경계를 하지 않고 승부를 한다. 이대호는 미국에서 새내기 타자일 뿐. 냉정히 투수들이 이대호라는 타자를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이나 브라이스 하퍼(워싱턴 내셔널스)처럼 경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대호에게는 그들의 공을 쳐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컨택트 능력이 매우 좋아, 아무리 빠른 공을 상대투수들이 던져도 충분히 맞혀낼 수 있다. 오히려, 빠른 공이 배트에 맞으면 더 멀리 나간다. 이대호가 "정면 승부를 많이 해줘 더 치기 좋은 면이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이대호는 한국과 일본 무대에서 자신을 극도로 경계하는 투수들을 상대로만 야구를 해왔다. 공이 느리거나, 변화구가 덜 꺾여도 치지 못할 곳에 던지면 타자에게는 그게 가장 어려운 공이다. 상대가 아예 건드리지도 못할 무시무시한 공을 던지지 않는다면, 적극적 승부를 해주는 메이저리그 무대가 이대호에게는 더 쉬울 수 있다는 역설적인 결론이 나온다.
이대호의 홈런수는 앞으로도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이대호가 잘 치고, 이름을 알려도 갑작스럽게 한국, 일본처럼 경계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이대호는 새로운 무대에 대한 적응력을 점점 키우며 야구를 할 수 있기에 유리하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