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현재 29승1무12패, 팀 평균자책점 1위, 팀 타율 1위, 팀 홈런 1위. 2위 NC 다이노스와는 6게임 차 압도적인 선두다. 두산 베어스는 1982년 창단 이후 가장 완벽한 시즌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우완 투수 노경은 얘기만 나오면 선수단 전체가 복잡한 표정이 된다. 답답함, 안타까움, 노심초사, 야속함, 그리고 분노.
요 며칠 선수가 생각하는 충분한 기회, 그리고 선수가 생각하는 코칭스태프의 최소한 배려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됐다. 상처를 다시 헤집는 이유는 노경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 구단과 마찰을 일으키는 고참선수 상당수가 같은 시각을 가지고 있다.
노경은은 김태형 감독으로부터 배려받지 못하고, 3차례 선발등판 만에 2군행에 이은 불펜 보직변경을 통보받자 화가 난 게 확실하다. 예전부터 쌓였던 감정이 폭발했다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얘기다. 최근 퇴출된 삼성 벨레스터는 3차례 등판에서 3패, 평균자책점 8.03을 기록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외국인 선수가 아니었으면 세번째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노경은은 두산의 5선발로 올해 세차례 선발등판해 2패, 평균자책점 11.17을 기록했다. 본인은 2군행이 과하다고 느꼈겠지만, 감독 입장에선 '5선발 노경은'을 염두에 뒀듯 불펜진도 미리 구상한다. 두산 불펜은 올해 훌륭하다. 4승4패10세이브20홀드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 3.76으로 전체 불펜 2위다. 심하게 말해 노경은 없이도 두산 불펜은 잘 돌아간다. 2군에서 구위를 가다듬는 것이 우선이다. 감독의 판단은 성적이 대변한다. 단적으로 '옳은 판단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성적이 옳은 판단'이다. 한 두해 미래 결과는 다른 문제다. 성적이 나쁘면 맨 먼저 옷을 벗는 이는 선수가 아니라 감독이다. 노경은이 두산이 유니폼을 입고 있는 동안 사령탑은 김인식→김경문→김광수 대행→김진욱→송일수→김태형 등 무려 5차례나 바뀌었다. 감독이란 자리는 결과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율과 판단은 이에 대한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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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신인지명에서 프로구단의 지명률은 11%에 불과했다. 884명이 프로행을 원했지만 700명 넘는 선수들은 꿈을 이루지 못했다. 입단후에도 10% 이내 선수들만 1군 주전자리를 꿰찬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더 많은 기회가 다른 이의 눈에는 감독의 편애로 비칠 수 있다. 노경은은 프로통산 12시즌 동안 37승47패7세이브11홀드, 평균자책점 5.07을 기록했다. 입단 때 기대에는 못미치는 성적이다.
노경은은 조만간 FA가 될 선수다. 실력으로 존재를 입증해야 하고,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도 평가받을 것이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의 호투는 올해 개막 5선발을 보장했다. 이제 2군에서의 호투로 1군행을 붙들고, 1군 불펜에서 잘 던져 단계별 중요 보직으로 올라서야 한다. 이것이 프로다. 감독의 호불호가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지만 이는 1군 기회 자체가 없는 이들에게 국한된 얘기다.
두산 구단은 어찌됐든 노경은 사태로 선수 관리 허점을 드러낸 것이 맞다. 선수를 설득할 때도 정해둔 원칙의 틀안에서 성의를 다해야 한다. 선수는 구단의 최고 자산이다. 무형의 가치, 미래 가치까지 따지면 수억원, 수십억원, 나아가 수백억원이 될 수 있다. 선수생명이 걸린 문제를 두고 뒤늦게 보고라인의 혼선 등을 논하는 것은 아마추어다.
한번 무너진 원칙은 문제가 생길때마나 나쁜 전례를 남긴다. 예전 프로야구는 모든 것이 폐쇄적이었다. 십수년 전 음주운전을 적발되면 경찰서에 가서 무마하고, 선수 개인의 일탈을 구단차원에서 입막음하고, 선수가 부인과 이혼소송을 하면 연봉외 가욋돈을 따로 챙겨주기도 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프로야구 인기는 높고, 팬들은 넘쳐나고 예의주시하는 미디어도 다양해졌다. 지금이라도 원칙과 선수관리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
덧붙여 선수는 구단과의 관계에서 약자인가? 프런트들은 이구동성으로 "선수가 상전"이라고 말한다. 여기서도 본질은 야구다. 야구 잘하는 선수에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프런트는 없다. 단장, 사장도 마찬가지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