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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시즌 초반 때 일이다. 잠실 라이벌전에 앞서 LG 트윈스 선수단의 훈련 장면을 지켜보던 허경민(26·두산 베어스)이 연방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잘 하네요. 정말." LG 유격수 오지환을 지켜보면서였다. 그는 "송구, 스텝이 완벽하다"고 했다. "한 눈에 봐도 예전의 수준이 아니다. 나보다 훨씬 잘 한다"고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조금은 의아했다. 허경민이 그런 얘기를 할 줄이야. 그는 2008년 7월 캐나다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 주전 유격수였다. '고교 4대 유격수'로 불리던 김상수(삼성 라이온즈) 안치홍(경찰청) 오지환을 제쳤다. 당시 김상수는 우익수, 안치홍 2루수, 오지환은 1루수였다.
자존심이 상할 법 했다. 연봉부터 차이가 심했다. "나보다 훨씬 수비를 잘 한다"는 말. 사실은 아니었지만 정말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출전 시간에서 허경민은 친구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훈련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닌데 두산에는 기량이 더 뛰어난 선배가 존재했다.
점점 자신감이 떨어지는 나날들. 그런 그에게 2015년은 반전의 계기가 됐다. 졍규시즌 117경기서 타율 0.317로 맹활약했고 가을야구에서 23안타를 쳐내며 역대 단일 포스트시즌 최다안타 주인공까지 됐다. 올해 연봉도 9800만원에서 1억200만원 오른 2억원. 이변이 없는 한 그는 주전 3루수로 개막전을 맞을 것이다. 프로에 입단해 처음으로 자신의 자리가 생겼다.
다만 허경민은 스스로를 주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21일 이본 미야자키에서 "여전히 (최)주환이 형, (김)동한이 형과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라면서 "언제나 그랬듯 남이 잘했다고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내 것만 하면서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아픈 곳 없고 몸 상태도 좋다. 호주는 더워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일본에서 경기에 들어갈 수 있는 날씨다"며 "지난해 규정타석에 진입하긴 했지만 내 타격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동안 내 것을 만들기 위한 훈련을 했고, 체력적인 준비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아주 특별한 기록을 목표로 정했다. 그동안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팀내 최다 수비 이닝이다. 허경민은 "매년 (김)현수 형이나 (정)수빈이가 수비 이닝 1위다. 그만큼 팀에 공헌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며 "그 기록이 욕심난다. 수비를 하면 무엇보다 타석수도 늘어나기 때문에 꼭 달성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작년 같은 경우 시즌 시작부터 나간 것이 아니라 풀타임 뛰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해는 시작부터 마지막 경기까지 해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스로를 채찍질 하기 위해 모자에는 '가족', '꿈'을 새겼다. 틈만 나면 이를 보며 투지를 불태운다. 그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프로야구선수가 될 수 있었다. 늘 감사한 마음뿐"이라며 "프로선수가 되겠다는 꿈은 이뤘다. 앞으로는 조금 더 큰 꿈을 가져야 하기에 모자에 적어 놨다"고 밝혔다. 아울러 "야구를 하면서 프리미어12가 가장 떨렸다. 그 때의 실책이 많은 공부가 됐다"며 "지난해 위기를 경험해 보니 3루에서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가을야구 때 영상을 보고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질문. 대표팀 동기들. '이제는 좀 어깨를 나란히 한 것 같은가'라고 묻자 허경민은 웃었다. 아직 멀었다는 것이다. 그는 "친구들과 비교되는 것은 숙명인 것 같다. 한 때는 이 친구들과 함께 거론되는 게 민망하기도 했다"면서 "지환이나 상수, 치홍이가 각 팀의 주전이기 때문에 나도 꾸준히 뛰어야 할 것 같다. 일단 기록으로 역전하지 않는 이상 난 여전히 4등"이라고 말했다.
미야자키(두산)=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