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 부린 일본에서 2006 WBC 미국이 보였다

권인하 기자

기사입력 2015-11-17 10:31


한국 야구대표팀이 쿠바를 꺾고, 4강에 진출한 뒤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타이중(대만)=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2015.11.16

어처구니가 없었다.

한국이 미국에 져서 B조 3위가 됐을 때 준결승은 20일 열리는게 확정됐다. 대회일정에 그렇게 나와있었다. B조 1,3위는 8강전서 승리하면 20일 준결승을 치르고, 2,4위는 19일에 치르기로 돼 있었다. 21일이 결승전이라 19일에 준결승전을 치르는 2위가 되는 것이 좋았는데 오심 등이 겹치며 3위가 된게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본이 준결승에 올라가면 무조건 일본의 준결승전이 19일에 열린단다. 그래서 B조 1위인 일본이 준결승에 진출해 한-일전이 19일에 열리게 됐다. 아무리 주최국이라지만 일정이 중간에 바뀌는 어이없는 촌극이 연출됐다. 19일에 준결승전을 치러 이긴 뒤 하루 휴식을 취하고 21일 결승전에 올라 우승을 하겠다는 일본의 얄팍한 전략.

2006년 WBC가 생각났다. 그때 주최국인 미국도 처음으로 창설된 WBC에서 우승을 하기 위해 희한한 조편성을 들고 나왔다. 16개팀이 ABCD조로 나눠 풀리그 1라운드를 치러 조 1,2위가 2라운드에 오르고 2라운드도 다시 2개조로 나눠 조 1,2위가 4강에 올라 준결승과 결승전을 치르는 일정을 만들었다. 보통 국제대회에서 볼 수 있는 일정.

그러나 조편성이 문제였다. 예선리그 1,2위가 다음 조에도 함께 올라가는 이상한 시스템이었다. 보통은 조별 순위 1,2위는 다음 라운드에선 만나지 않도록 조편성을 하는데 2006년 WBC에서는 조별 순위 1,2위가 다음 라운드에서도 같은 조에 편성되게 한 것.

그래서 A조의 한국과 일본, B조의 한국과 멕시코가 2라운드 1조가 됐고, C조의 쿠바, 푸에르토리고, D조의 도미니카공화국, 베네수엘라가 2조가 됐다. 그런데 준결승도 같은 조 1,2위가 붙게 만들었다. 미국이 결승전까지 쉽게 오르기 위해 쿠바 도미니카공화국 베네수엘라 등 강팀을 다른 조로 밀어넣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미국의 바람과는 다르게 대회가 흘러갔다.

미국은 2라운드에서 일본을 4대3으로 이기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허나 한국에 3대7로 패했다. 마지막 멕시코전을 이기면 무조건 4강에 올라 한국과 준결승전을 치르는 상황. 미국의 시나리오대로 되는 듯했다. 그런데 미국은 멕시코에 단 3안타의 빈공으로 1대2의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3승을 거둔 한국이 1조 1위로 4강에 올랐고, 일본과 멕시코, 미국이 모두 1승2패로 동률이 됐다. 3개국간의 대결에서 이닝당 실점으로 조 2위가 가려졌는데 승자가 일본이었다. 일본과 미국이 똑같이 5실점을 했는데 일본은 17⅔이닝이었고, 미국은 17이닝이어서 이닝당 실점에서 일본이 더 적었다.


미국이 만들어놓은 일정의 덕은 일본이 봤다. 일본은 1,2라운드에서 모두 한국에 패했지만 준결승에서 승리하며 결승에 올랐고, 결승에서 쿠바까지 꺾고 WBC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주최국이 꼼수를 부리면 안된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했던 일본이 이번에 스스로 꼼수를 부렸다. 하루 먼저 준결승을 하는게 결승전에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체력적, 심리적으로 하루의 휴식이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겨야 결승전이 있는 것이다. 일본의 준결승 상대는 한국이다. 일본이 무조건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일본이 만들어놓은 좋은 일정을 한국이 누릴 수도 있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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