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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말하면 딱 3경기다. 올 시즌 더스틴 니퍼트(두산)가 제대로 위력을 발휘한 경기 수다.
시즌 전 니퍼트는 역대 외국인 선수 최고대우인 150만달러(약 15억원)에 재계약했다. 충분히 자격이 있는 선수였다. 2011년부터 두산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굳이 수치를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위력적인 투구를 했다. 페넌트레이스와 포스트 시즌에서 모두 존재감을 과시했다.
왜 니퍼트는 그동안 부진했나
그는 6월9일 어깨충돌증후군으로 1군에서 제외됐다. 두 달 여의 재활끝에 복귀했다. 8월18일 삼성전에서 우측 허벅지 부상으로 다시 전열에서 이탈.
이 과정에서 그는 전성기의 위력을 전혀 찾지 못했다. 1차 부상 이후 첫 선발경기 울산 롯데전. 5이닝 5피안타 3실점. 그 다음 경기인 KIA전 3⅓이닝 6피안타 7실점. S급 투수의 경기력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2차 부상. 당시 두산 김태형 감독은 "시간이 얼마 없다. 몸을 만들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 부상에서 돌아오면 니퍼트를 중간계투라도 써야 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니퍼트의 경기력이 제대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허준혁의 부진 등 선발 로테이션이 뻑뻑해졌다. 결국 니퍼트는 다시 선발 로테이션이 합류했다. 이 과정에서 니퍼트의 공은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었다. 갑작스럽게 제구가 흔들렸다. 실전감각과 체력의 문제가 혼합된 결과물. 어깨부상에 의한 투구 소화력에 대한 의구심도 있었다. 60개 정도를 넘어가면 패스트볼과 변화구의 위력 자체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결국 승부처에서 난타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니퍼트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따져보면 결국 문제는 니퍼트의 어깨였다.
어깨가 완치되자 공이 찢어졌다.
니퍼트는 컨디션이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 공이 들어가는 궤적이 약간 다르다.
흔히 니퍼트가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타자 바깥쪽으로 공이 날린다'고 한다. '날린다'는 의미는 '살랑거리는 느낌'으로 약간 높게 붕 떠다니는 것이다. 장타를 허용하기 딱 좋은 상태다.
반면 그의 공이 좋을 때는 '타자 무릎 근처에서 예리하게 박힌다'고 한다. 또 다른 말로는 '공이 찢어진다'고 한다. 찢어질 듯한 느낌으로 팍 와서 박힌다는 얘기.
60구가 넘어설 때 니퍼트의 투구는 '날리는' 경향이 많았다. 그 부분은 어깨 상태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니퍼트가 컨디션이 좋을 때는 오른 어깨 뒷근육을 충분히 쓰면서 최대한 공을 앞으로 가져와서 투구한다. 어깨부터 릴리스 포인트까지 최대한 힘을 집중시킨 상태이기 때문에 공 자체의 회전수가 극대화되면서 묵직하게 타자의 무릎 쪽에 박힌다.
그런데 올 시즌 뿐만 아니라 최근 2년간 오른 어깨 뒷근육이 고질적으로 좋지 않았다. 결국 두 차례의 부상으로 실전감각까지 떨어지면서 니퍼트의 경기력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패스트볼 구위 뿐만 아니라 변화구의 '영점 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당연히 투수구 관리나 승부처 위기관리능력도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어깨 상태가 회복되자, 서서히 위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페넌트레이스 선발 마지막 등판인 2일 광주 KIA전. 경기 전 벤치에서는 "니퍼트가 드디어 잘 던질 것 같다"는 얘기가 돌았다. 연습 투구를 지켜본 관계자들은 "공 자체가 전성기 시절로 돌아온 느낌"이라고 했다. 6이닝 3피안타 1실점. 탈삼진은 무려 11개. 완벽히 상대를 압도하는, 니퍼트다운 피칭이었다.
오른 어깨를 충분히 쓰면서 최대한 공을 끌고 나왔다. 결국 패스트볼은 전성기의 위력을 되찾았다. 타자 앞에서 공은 '날리는' 게 아니라 '찢어졌다'.
결국 두산 김태형 감독은 '포스트 시즌 1선발'을 니퍼트로 굳혔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니퍼트는 더욱 강력했다. 2개의 솔로홈런을 내줬지만, 7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 투구 위력 자체는 더욱 좋아졌다.
그리고 플레이오프 1차전. 완봉승을 거뒀다. 9이닝 3피안타 6탈삼진. NC 타자들은 니퍼트의 무시무시한 구위에 완벽히 봉쇄당했다. 오른 어깨 뒷근육이 완치되면서 예전의 구위를 완벽하게 찾은 니퍼트다.
극한의 인내력과 변하지 않는 루틴
문제는 이 과정을 어떻게 견뎠냐는 점이다.
니퍼트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두 차례의 부상과 재활, 그리고 복귀 과정이 있었다. 재활 자체가 매우 지루하다. 경기 감각을 잊어버릴 수 있다. 투수들은 민감하다. 부상 이후 자신의 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오른어깨 뒷근육이 완치되면서 전성기의 구위를 찾았지만, 그 바탕에는 니퍼트 특유의 성실함과 루틴이 있다.
그는 하루도 빼지 않고 피칭과 러닝을 한다. 가볍게 하기도 하고, 실전등판 대비를 위해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수요일이 선발이면, 휴식일인 월요일에도 나와서 불펜 피칭을 꼭 한다. 만약 선발 다음날이 휴식일인 월요일이어도, 혼자 구장을 돈 뒤 백네트에 가볍게 공을 던져본 후 귀가한다. 프로의식에서 바탕이 되는 성실함이다. 국내 선수들이 니퍼트에게 꼭 '빼 먹어야' 할 태도다.
그의 가장 큰 장점은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다. 두산이 모든 선수들은 니퍼트에 대해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루틴이 있다. 냅두면 알아서 잘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부상을 입었지만, 그는 미동도 없다.
평상시와 똑같이 자신의 상황에 맞는 훈련을 한다. 재활을 하고, 회복기를 가지고, 다시 훈련한다 정말 재미없을 정도로 똑같은 패턴이다.
하지만 어깨 근육이 완치되면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다. 실전공백을 최소화했고, 곧바로 자신의 전성기 구위를 회복하는 원동력이 됐다. 올 시즌 딱 3경기 잘 던졌다. 니퍼트의 극적인 변신의 진정한 이유는 그의 성실함에 있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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