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기 직전의 가장 어두운 새벽같은 느낌이다. 이제 곧 결론이 날 시점인데, 프로야구 '5위 삼국지'는 더더욱 혼돈에 빠졌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가 모두 '상승-하강' 사이클을 오락가락 하는 바람에 어느 팀도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있다.
29일까지의 결과는 한화(57승60패)와 KIA(56승59패)가 승차없이 5위-6위. 승률에서 2모(0.0002) 차이로 한화가 앞서있다. 그 뒤를 SK(53승59패2무)가 1.5경기 차로 뒤쫓고 있다. 롯데(54승63패) 역시 SK와 1.5경기 차이밖에 나지 않아 '5위 싸움'에서 완전히 배제된 건 아니다. 하지만 일단 현재 '5위 전쟁'의 주역들은 한화-KIA-SK라고 볼 수 있다. 30일 경기를 포함해 남은 경기는 한화가 27경기, KIA가 29경기, SK가 30경기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 '5위 전쟁'의 주도권을 잡는 핵심 포인트는 '누가누가 잘하나'가 아니라 '누가누가 덜 못하나'로 바뀐 듯 하다. 결국 큰 악재가 벌어진 상황 속에서 '위기 관리'가 승부의 분수령이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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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장 시급하게 '위기 관리'에 나서야 하는 팀은 KIA다. 사실 KIA는 5위 싸움의 주도권을 확실히 거머쥘 기회가 있었다. KIA는 지난 25일 인천 SK전에서 1대0으로 승리하며 승률 5할에서 +1승을 쌓았다. 당시 6위 한화를 2경기 차로 따돌린 5위였다. 이때 SK는 롯데에 밀려 8위로 떨어져 있었고 KIA와는 무려 4.5경기 차이나 났다.
만약 KIA가 이때 연승을 조금만 더 쌓았더라면 사실상 5위 싸움은 완전 종식됐을 것이다. 하지만 KIA는 이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26일 인천 SK전이 뼈아팠다. 8회까지 4-2로 앞섰지만, 9회말 믿었던 마무리 윤석민이 끝내기 3점 홈런을 맞아 4대5로 역전패를 당했다. 이날의 패배는 대단히 큰 피해를 남겼다. 이때부터 KIA는 내리 4연패에 빠졌고, 그러는 와중에 에이스 양현종은 타구에 맞아 다쳤다. 불펜으로 전환해 강력한 힘을 실어주던 에반 역시 26일 경기 때 생긴 팔꿈치 통증 때문에 29일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양현종의 경우 엔트리에서 제외될 정도의 부상은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민감한 왼손의 타박상이라 향후 구위에 악영향이 생길 수 있다. 어쨌든 KIA로서는 에이스와 필승불펜의 두 카드가 모두 불안해졌다.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결국 관건은 투수진의 안정적인 운용이다. 일단은 양현종이 부상을 극복하고 에이스에 걸맞는 피칭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에반의 공백은 상당히 뼈아프다. 현재 KIA 불펜에 믿을만한 투수가 최영필과 김광수 정도인 터라 김기태 감독의 불펜 운용이 어떤 식으로 이뤄질 지가 관건. 결국 여기에 모든 해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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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 로저스 공백 관리
한화는 막강한 구위를 자랑하던 외국인 에이스 에스밀 로저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가뜩이나 선발진이 약한 상황에서 '초특급 에이스'가 최소 1~2경기에 나오지 못한다는 점은 큰 악재다. 게다가 선발진에서 좋은 구위를 보여주던 안영명도 지난 26일 대전 삼성전에서 아웃카운트 한 개도 잡지 못한 채 5실점하고 강판되고 말았다. 송은범은 한결같이 부진하다.
이로 인해 한화 역시 선발진 약화가 큰 고민거리다. 8월에 찾아온 7연패의 최대 위기를 벗어나며 새 힘을 찾는 듯 했는데, 다시 또 위기 상황이 반복된 것.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한화는 시즌 초반부터 늘 위기를 가까이해왔다는 점이다. 김성근 감독이나 선수들은 그래서 어느 정도의 위기에 관해서는 이제 면역력이 생겼다.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됐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전력이 향상되는 건 아니다. 결국 로저스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 빈자리를 어떻게 메우느냐가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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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역시 위기 신호가 나타났다. 하지만 KIA나 한화에 비해서는 그나마 약간 나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일단 가시적인 위기 상황은 바로 에이스인 김광현의 부상과 부진이다. 김광현은 29일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원정경기에 선발로 나왔다가 1⅓이닝만에 무려 8점을 내주고 무너졌다. 이는 지난 25일에 생긴 왼쪽 견갑골 통증의 여파로 분석된다. 김광현은 당시 인천 KIA전 때 선발로 나올 예정이었다가 갑작스럽게 생긴 통증으로 결국 등판을 취소한 바 있다.
이때부터 4일을 쉬고 29일 경기에 나왔지만, 예전의 기량이 아니었다.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거나 혹은 그 여파로 밸런스가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김광현의 이런 부진이 계속 이어질 경우 SK는 치명상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김광현이 회복되는 게 선결과제이고, 만약 그게 안될 경우 대체 선발요원을 물색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김광현의 부상 말고도 SK는 타선의 무기력증이라는 문제를 또 해결해야 한다. 8월들어 SK는 9승15패를 당했는데, 팀 타율이 2할6푼2리로 8위에 머물렀다. 박정권 최 정 브라운 이재원 정상호 등 화려한 면면에 비해 성과가 적었다. 특히 지난 22일부터 최근 일주일간 치른 7경기에서는 팀 타율이 2할6리로 10개 구단 중 최하위였다. 팀득점(18점) 역시 가장 적었다. 같은 기간 팀 평균자책점이 리그 3위(3.57) 이었지만, 타선이 침묵하는 바람에 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결국 타선의 무기력증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도 SK의 당면 과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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