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시즌56호-통산400호 어느 쪽이 귀한가

박재호 기자

기사입력 2015-06-01 10:23 | 최종수정 2015-06-01 10:23


이승엽은 한국프로야구에 잠자리채를 등장시킨 인물이다. 홈런을 관중들의 즐길거리로, 나아가 문화로 승화시켰다. 이승엽의 홈런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을 꼽는다면 언제일까. 타이론 우즈와의 홈런왕 경쟁에서 아쉽게 무릎을 꿇은 22세 그시절인 1998년(38홈런), 일본 홈런왕 왕정치의 아시아홈런기록(55홈런)에 도전했던 1999년(54홈런), 그리고 아시아홈런신기록을 쏘아올린 2003년(56홈런)? 매홈런마다 의미가 남다르겠지만 통산 400홈런에 도전하는 올해도 같할것이다. 이승엽도 한국나이로 불혹이다. 시즌 56홈런과 통산 400홈런 중 어느 쪽이 더 가치있는 기록일까. 두 기록 모두 경신이 너무나 어렵지만 희귀성의 정도가 정답일 수 있다.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주말 3연전 마지막 경기가 31일 잠실에서 펼쳐 졌다. 개인통산 400호 홈런에 한 개를 남겨 놓은 이승엽이 8회 우측 담장을 훌쩍 넘기는 대형 파울 홈런을 날리고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우측 폴대를 살짝 빗나간 이 타구는 관중석 상단에 꽂혔다.
잠실=조병관기자 rainmaker@sportschosun.com

/2015.05.31/
류중일 삼성 감독은 통산 400홈런에 대해 "앞으로 다시 나오기 힘든 기록"이라고 했다. 한 두해 반짝 잘한다고 해서 나올 수 없다. 거포의 상징이라는 20홈런을 20년간 때려야 한다. 통산홈런 2위는 양준혁 해설위원인데 351개, 현역 2위 이호준(NC)은 299개로 100개 차이나 난다. 현실적으로 후배 타자들중 '괴물'들이 10년 이상 꾸준히 활약해야 근접할 수 있는 수치다. 사실 이승엽에겐 일본에서의 활약기간도 있다. 타자로서 가장 뜨거웠을 20대 후반과 30대 중반까지 8년을 일본에서 보냈다. 일본에서도 매년 20개에 해당하는 159홈런을 때렸다. 일본은 투수들의 기량도 좋고, 구장도 더 크다. 이승엽이 한국에 있었다면 이기간 280개(40홈런 4시즌, 30홈런 4시즌)는 너끈히 때렸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일본진출 직전인 2002년 47홈런, 2003년 56홈런을 날린 이승엽이다. 그랬다면 지금 400홈런이 아닌 700홈런에 도전하고 있을 것이다. '대단한'기록은 '불멸의' 기록이 됐을 지 모른다.

반면 이승엽의 시즌최다홈런(56)은 끊임없이 도전받을 태세다. 지난해 넥센 박병호는 52홈런을 날렸다. 올해는 경기수가 144경기로 크게 늘어난다. 1일 현재 홈런 선두는 NC테임즈(18홈런)다. NC는 50경기를 치렀다. 144경기로 환산하면 51개 페이스다. 무더위로 투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면 타자들의 방망이는 더욱 살아난다. 50홈런을 넘을 여지도 있다. 후배들이 뛰어넘는다고 해도 지금같은 타고투저 시대가 아닌 12년전 이승엽의 56홈런기록은 그 자체로 엄청나다.

56홈런과 400홈런의 가장 큰 차이는 긴박감일 것이다. 시즌최다홈런은 데드라인이 있다. 한정된 경기수 내에 홈런을 때려내야 하지만 통산홈런은 이승엽이 현역으로 활동하는 한 시간제한은 없다. 시즌기록 달성은 해당 선수뿐만 아니라 팀으로서도 여러가지 신경이 쓰인다. 1999년 10월 7일 시즌최종전인 한화-삼성전에서 삼성 벤치는 이승엽의 마지막 타석에 앞서 2명의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했다. 병살타가 나오면 이승엽까지 타석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화 계형철 투수코치는 홍우태에게 정면승부를 주문했지만 이승엽의 홈런은 54에서 멈춰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통산 기록은 이런 부담에선 자유롭다. 삼성 벤치와 이승엽의 공통된 걱정은 400홈런 때문에 타격밸런스가 다소 흔들리지 않을까 하는 정도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이승엽만큼 많은 견제를 받은 선수도 드물다. 1999년에도 정면승부를 피하는 투수들이 많았고, 2003년에는 더했다. 그 숱한 난관을 뚫고 이승엽은 한계단 한계단 올라 399홈런을 딛고 서 있다. 그가 걸어온 프로 21년을 뒤돌아보면 타고난 재능, 무던한 노력, 철저한 자기관리, 그리고 어쩌면 하늘의 가호까지 더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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