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이 부족하다."
한화 이글스 김성근 감독(73) 특유의 직설 화법이 터져나왔다. FA선수들이 고액 연봉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실력의 유무를 떠나 '사명감'이 부족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화 소속 선수뿐만 아니라 프로야구판 전체를 향해 던진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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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는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은 선수들이 그에 합당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김 감독의 지적은 바로 이런 현상을 꼬집는 것이다. 프로페셔널 선수로서의 자각이 과연 충분히 갖춰졌느냐에 관한 문제제기다.
이와 관련해 프로야구 팬들 사이에 회자되는 표현이 있다. 바로 '~ 사용설명서'라는 말이다. 2012년에 개봉한 '남자 사용 설명서'라는 영화가 나온 이후 등장한 것으로 보이는 이 표현은 과거 한때 잘했다가 부진에 빠진 선수들에게 따라 붙었다. 그 선수가 다시 좋은 실력을 보이기 위해서는 과거 잘했을 때처럼 특정한 조건에서 활용해야 한다는 것.
또 소속팀 감독이 이 특정 조건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그 선수의 진짜 실력을 끌어내지 못한다는 식의 해석도 나온다. 어쨌던 '~사용설명서'라는 표현이 가장 많이 따라 붙은 대표적 인물이 두 명 있다. 2000년대 후반 SK 와이번스 마운드에서 전천후로 맹활약했던 송은범과 2009년 홈런왕에 올랐다가 부진의 늪에 빠진 김상현이다. 이들에게는 '김상현 사용설명서'나 '송은범 사용설명서'라는 표현이 곧잘 따라붙는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이런 표현이 따라붙는다는 건 선수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특정 조건이나 특정한 지도자 스타일에서만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인데, 이는 결국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곱게 키워진 '온실 속의 화초'라는 말과도 같다. 김 감독이 지적한 대로 '사명감'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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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노쇠화 현상이나 부상에 따른 신체 능력의 저하가 아니라면 수치로 나타나는 실력은 항상성을 유지해야 한다. LG 박용택이나 두산 홍성흔, 삼성 이승엽, 박한이 같은 인물들의 기록을 보면 이해가 쉽다. 이들은 진짜 프로의 의미를 알고 뛰는 선수들이다. 이 선수들에게 '사용설명서'라는 표현이 따라붙지 않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사용설명서'가 붙었던 김상현과 송은범이 올해 각각 kt 위즈,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으며 과거 전성기를 보낸 지도자와 재회했다는 것. kt 조범현 감독과 한화 김성근 감독이야말로 '김상현 사용설명서' '송은범 사용설명서'에 정통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예전의 기량을 회복했을까. 일단 김상현은 '거포'로서의 자질은 다시 회복했다. 16일까지 38경기에서 9개의 홈런을 날렸다. 홈런 부문 공동 9위다. 타율(0.243)은 낮지만 중심타자로서의 클러치 능력은 살아났다.
그러나 송은범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올해 10경기에서 평균자책점 5.23에 1승3패 1홀드1세이브를 기록 중이다. 선발 퀄리티스타트가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고 불펜으로 활용할 수도 없다. 구속, 제구력, 경기 운영능력이 모두 예전만 못하다. 한화 마운드에서 '계륵'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2010년 이후 꾸준히 떨어진 실력은 '사용법'에 정통한 은사 밑에서도 여전히 살아나지 않는다. 참고로 송은범은 지난해 한화와 4년간 34억원 FA계약을 맺었다. "일부 FA 선수들은 사명감이 부족하다"고 한 김성근 감독의 지적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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