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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필(40·KIA)에게 대뜸 "요즘 뭐하냐"고 물었다. "아니 야구선수가 할게 뭐 있어? 운동하지." 간단명료하다.
이 남자의 겨울은 쉴틈이 없다. 요즘 수원 경희대 야구장으로 출퇴근을 한다. 몸을 만들고 있다. 내년 1월 중순에 전지훈련을 떠나기전에 일찌감치 훈련에 필요한 기초체력을 다지기 위해서다. 내년이면 한국나이로 마흔하고 둘이다. 마음가짐이나 몸상태는 예년 그대로다. 평소와 바뀐 것이 있다면 소중한 존재가 옆에 있다는 사실이다. 제물포고 3학년인 아들 종현군(18)은 경희대에 진학할 예정이다. 경희대 야구부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대학동문이 된다.
종현군은 아버지와 함께 내년 프로무대에서 같이 활약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올해 신인드래프트 2차지명에서 호명받지 못했다. 여기에서 멈추면 '오뚝이 아빠'가 섭섭하다. 종현군은 꿈을 부여잡기 위해 경희대에서 더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 최고무대에서 뛰겠다는 설렘이 땀흘리는 원동력이다.
최영필은 "아직 아들과 같이 운동을 하지는 못한다. 나는 내 스케줄에 맞춰 몸을 만들고 있다. 이곳(경희대)에서 여러차례 고비를 넘어왔다. 내년에도 그냥 힘껏 던진다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우여곡절 많은 최영필에게 2014년은 잊지못할 해다. 2010년 한화에서 FA를 선언한 뒤 미아가 돼 오갈데 없는 몸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사회인 야구에서 뛰었다. 공을 놓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이후 2012년과 2013년 SK에서 활약한 뒤 코치직을 제의받았으나 다시 현역의사를 밝혔다. 불러주는 팀은 없었고 올초 우연찮게 KIA와 인연이 닿았다. 연봉 7000만원을 제시받자 두말 않고 유니폼을 챙겨 들었다.
'신고선수' 최영필은 봄동안 2군에서 구위를 가다듬고 6월1일 1군 무대를 밟은 뒤 40경기에서 4승2패14홀드, 방어율 3.19를 기록했다. 53⅔이닝은 짧은 기간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치다. 허물어진 KIA 마운드의 몇 안되는 믿을맨이었다.
KIA는 투지와 팀공헌도 등을 종합해 불펜투수 중 최고고과임을 확인시켜줬다. 연봉협상 테이블에서도 충분한 보상을 약속한 상태다.
기정사실인 억대연봉도 좋지만 최영필은 선수이기 전에 '아버지'다. 같은 길을 걷는 아들 앞에서 당당한 것이 참 좋다. 나이가 들면서 최영필이 마주하는 최대 적은 '편견'이다.
편견이 무서운 것은 묘한 전염성이 있기 때문이다. 몇 사람이 나쁜 시선으로 바라보면 대중이 흔들리고, 급기야 본인마저 '내가 과연 될까'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최영필은 운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굳게 믿고 손에서 볼을 놓치 않았다. 이대로 은퇴할 수 없다는 의지가 늘 몸을 최상으로 만들었고, 이를 통해 딱 한번의 기회를 붙들 수 있었다. 1997년 현대에 입단한 최영필은 이제 내년이면 프로 19년차가 된다. 프로야구 투수 최고참이다.
경희대야구장의 겨울바람은 늘 최영필을 긴장시킨다. 모두가 '안된다'는 말만 할때 스스로 "할수 있다"며 이를 악물던 곳이다. 올겨울 안심되는 것이 있다면 내년엔 그나마 머무를 곳이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