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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인치, 870g의 배트가 가볍게 돌아갔다. 그리고 한국 야구에 길이남을 또 하나의 역사가 쓰여졌다.
넥센 서건창이 2014시즌 정규리그 최종전인 17일 목동 SK전에서 '꿈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200안타를 달성했다.
한국 프로야구 33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나온 기록. 한 시즌 128경기에 불과한 한국 프로야구에서 그동안 '꿈의 기록'으로 불렸던 금자탑을 '제2의 야구인생'을 살고 있는 서건창이 해냈다. 144경기를 치르는 일본에서도 고작 5명이 6차례밖에 해내지 못했다. 162경기를 치르는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올해 고작 2명만 200안타를 넘었을 뿐이다.
서건창의 200안타는 말 그대로 '인간극장'이 아닐 수 없다. 서건창은 지난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야구 명문 광주일고 3학년생이었지만 프로팀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테스트를 통해 2008년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지만 겨우 1군에서 1경기만을 뛴 채 방출 통보를 받았다. 어쩔 수 없이 서건창은 2009년 일반 현역병으로 군에 입대해야 했다.
보통 이 정도까지 밀리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라운드를 떠난다. 프로에서 날고 기는 선수들도 계속 경기에 나서야 실력을 유지하는 마당에, 불러주는 팀도 없는데 그것도 배트나 글러브 대신 2년 가까이 총을 쥐어야 하니 선수 생활을 계속 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쩌면 마지막 도전이었던 2011년 넥센의 공개 테스트. 여기서 다시 신고선수로 뽑힌 서건창은 독하게 훈련을 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맞은 2012시즌. 생갭다 기회가 빨리 왔다. 개막 이틀을 앞두고 주전 2루수였던 김민성이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고, 서건창은 이 자리를 꿰찼다. 누구보다 그가 열심히 땀을 흘렸던 것을 코칭스태프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서건창의 기용은 모험에 가까웠다. 1군 경기에서 고작 1경기를 뛰었던 중고 신예에게 개막전부터 주전 2루수를 맡겼기 때문. 그러나 정직한 땀, 그리고 끝까지 해내겠다는 집념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2012년 서건창은 127경기에 나와 타율 2할6푼6리, 115안타, 40타점, 70득점으로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실책은 7개에 그칠 정도로 수비 능력도 안정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3시즌에는 발목 부상으로 86경기밖에 나서지 못했지만 이 정도의 시련에 꺾일 서건창이 아니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타격 스탠스를 좁혀 컨택트 능력을 향상시킨 서건창은 타격 포인트를 가장 몸쪽으로 끌어와서 칠 수 있는 타자로 진화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날 200안타 고지에 올랐다. 끝임없는 자기혁신과 도전, 서건창의 향후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목동=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