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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에서 길을 찾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는 비교적 좋은 조건에서 뛰고 있다.
따라서 주로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외국인 선수들은 '코리안 드림'을 일구기 위해 기꺼이 한국을 찾는다. 형식적으로 존재하던 외국인 선수 연봉 상한제도 없어진데다 올해부터 팀별 보유 인원이 3명(NC는 올해까지 4명)으로 늘었고, 제도를 도입한지 17년째를 맞으면서 이미 한국 야구를 경험한 선배들의 강력 추천도 한 몫 했다. 이제 메이저리그에 콜업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선수들에겐 한국은 자신의 실력도 뽐내면서 많은 돈까지 벌 수 있는 최고의 무대로 떠오른지 꽤 됐다.
이는 지난해까지 KIA에서 뛰었고 지난달 중순 넥센에 합류한 외국인 투수 헨리 소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KIA에서 2년간 18승17패를 거뒀던 소사는 기복 있는 투구 때문에 재계약에 실패하고 마이너리그로 복귀했다가 지난달 중순 넥센의 부름을 받고 한국땅을 다시 밟았다.
하지만 소사는 초반부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넥센 데뷔전인 5월24일 대구 삼성전에서 6이닝 3실점으로 비교적 호투했지만, 5월29일 목동 SK전에선 5⅓이닝동안 5실점으로 패전을 기록한데 이어 6월4일 창원 NC전에선 무려 4홈런을 맞으며 3이닝 12실점으로 무너졌다. KIA 시절 '고무팔'이라는 별명답게 전형적인 이닝이터로 활약하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이 고심 끝에 찾은 소사의 부진 원인은 투심 패스트볼을 비롯해 싱커, 서클 체인지업 등 변화구 구사에 있었다. 특히 소사가 마이너리그에서 큰 재미를 봤다는 투심 패스트볼은 스피드가 떨어지는 대신 공 끝의 변화가 크기 때문에 제구력만 뒷받침 된다면 상당히 효과적인 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소사는 KIA에서도 손쉽게 150㎞대를 넘는 직구가 가장 큰 장점이었지 커맨드가 좋은 투수는 아니었다.
마음 먹은대로 공이 떨어지지 않다보니 투심을 비롯해 변화구를 던지다 난타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초반 3~4경기를 통해 이를 파악한 염 감독은 소사에게 투심과 싱커 등을 던지지 말라고 주문했다. 대신 자신의 장점인 직구를 살리기 위해 슬라이더를 곁들이는 투구, 즉 '투피치'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소사는 좀처럼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마이너리그에서 효과적이었던데다, 단조로운 구종을 다양화시킨 자신의 회심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염 감독은 칼을 꺼내들었다. 지난 22일 목동 KIA전에서 7이닝 4실점으로 비록 승리투수가 되긴 했지만, 투심을 계속 고집할 경우 내년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이강철 수석코치를 통해 전달한 것. 소사를 데려올 때부터 "향후에도 국내 선수처럼 장기적으로 계약하고 활용할 선수"라고 강조했던 염 감독으로선 일종의 '벼랑끝 전술'인 셈이었다. 자칫 소사가 태업이라도 할 경우 투수 운용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뛰는 것이 마이너리그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아는데다 인성이 좋은 편인 소사는 기꺼이 변화를 택했다. 28일 잠실 두산전에서 단 1개의 투심도 던지지 않는 것. 대신 직구와 슬라이더, 포크볼 등으로 상대했고 이는 7이닝 1실점의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넥센 데뷔 후 최고의 투구였던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2탈삼진에 불과했지만, 앞선 6번의 경기 가운데 5경기에서나 허용했던 피홈런이 없었다는 것이 염 감독을 흡족하게 했다.
29일 잠실 두산전을 앞두고 만난 염 감독은 "사실 그런 주문이 효과적일지 나도 100% 확신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평소에도 투수코치의 지도를 잘 이행하는 소사의 태도를 믿었고, 좋은 결과로 나타나 다행"이라며 "또 5회까지만 던져도 괜찮으니 1회부터 150㎞대의 직구로 전력 투구하라고 했는데, 이 역시 잘 지켰다"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소사가 7이닝동안 버텨준 덕분에 필승조를 투입하지 않고도 28일 경기를 8대1로 크게 이길 수 있었다. 지난달 중순부터 선발 투수들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불펜에 과부하가 걸려 1위에서 4위까지 추락, 5할 승률까지 위협받던 넥센으로선 소사의 부활 덕에 다시 최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든든한 발판을 마련했다.
잠실=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