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1 인터뷰]로티노 "한 경기 9개 포지션도 뛰어봤다"

민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4-05-08 08:58


넥센 히어로즈의 외국인 타자 비니 로티노. 목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박병호가 너무 잘 하고 있어, 4번 타자는 넘보지 않는 게 좋겠다."

포수로 선발 출전했다가 좌익수 위치에 들어가기도 했고, 좌익수로 나섰다가 1루수로 이동한 적도 있다. 또 1~3번 타자에서 7~9번 타자까지 다양한 타순에서 상황에 맞는 역할을 매끄럽게 수행했다. 포지션별로 선수의 기능이 분화되고 특화된 프로에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확실하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그동안 한국 프로야구에서 유틸리티 플레이어(Utility Player), 만능 선수는 주전 선수가 빠졌을 때 다양한 포지션에서 백업 역할이 가능한 선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넥센 히어로즈의 외국인 타자 비니 로티노(34)를 보면 이런 편견이 사라진다.

로티노는 소통에 문제가 있고 상대 선수를 파악하기 어려워 외국인 포수는 어렵다는 생각의 틀을 깨트렸다. 4월 10일 목동구장에서 벌어진 KIA 타이거즈전에 외국인 선수로는 2004년 엔젤 페냐(한화) 이후 10년 만에 포수로 선발 출전했다. 그는 이후 경기에서도 에이스인 밴헤켄과 호흡을 맞췄고, 밴헤켄이 강판된 뒤에는 국내 투수의 공을 받았다. 또 좌익수 위치에서 정확한 빨랫줄 홈 송구로 주자를 잡아내며 팬들에게 짜릿한 감동을 선사했다.

그는 시즌 초 극심한 타격 부진 때문에 선발 라인업에서 빠진 적이 있다. 8번 타자로 출전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2군 강등 직전까지 갔던 선수다. 사실 개막을 앞두고 로티노를 높게 평가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다른 팀 외국인 타자에 비해 메이저리그 경력이 떨어지고,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에서는 주로 2군에 머물렀다. 크게 내세울 게 없었다. 하지만 로티노는 포수 선발 출전을 전후해 타격페이스를 끌어올려 타격 1위에 오르기도 했다. 7일 현재 타율 3할4푼, 1홈런, 11타점. 장타력보다 컨택트 능력이 뛰어난 타자다. 화려하지 않지만 꾸준하고, 착실하게 제 몫을 하고 있다.

로티노를 7일 오후 1시 서울 목동구장 홈팀 귀빈실에서 로티노를 만났다. '4번 타자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농담을 하자 로티노는 "박병호가 있어 어려울 것 같다"며 씩 웃었다. 그에게 '히어로즈(Heroes)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을 때, 팀명이 인상적이지 않았나'고 했더니 "타이거즈, 라이온즈같은 이름이 흔한데, 미국에서 히어로즈라는 이름의 팀은 못 본 것 같다. 독특하면서 상당히 좋은 팀명인 것 같다"고 했다. 물론, 로티노 또한 이제 히어로즈 구단의 '영웅'으로 자리를 잡았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우리는 만날 때마다 싸움이 일어나는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나.(KIA 브렛 필)


(질문이 재미있다는 듯 살짝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지난 번 KIA전 벤치클리어링 때 브렛 필부터 찾았다. (크게 웃으며)농담이다. 우리가 함께 있으면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지는 것 같다. 마이너리그 시절인 지난 2011년 필의 소속팀과 경기 때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다.(2011년 포수였던 로티노가 필이 사인을 훔친다며 항의해 언쟁이 벌어졌고,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지난 4월 8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KIA전 때도 빈볼 시비로 벤치클리어링이 있었다) 그 때 이후 3년 만에 한국에서 브렛 필을 다시 만났다. 물론, 그때 감정은 남아있지 않다. 그는 착하고 괜찮은 친구다.

-지난 번에 헛스윙을 한 후 '포크볼'이냐고 물어봤는데, "I don't know"라고 대답했다. 그 때 왜 안 알려준 건가.(롯데 정 훈)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내가 포수 위치에 있는 건 상대 타자를 잡기 위해서다. 어떻게 해서든지 출루를 막아야 하는 게 내 일이다. 타자가 물어본다고 무슨 공인지 알려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한 경기에 투수를 제외한 전 포지션을 경험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NC 김태군)

아니다. 그 때 투수로도 등판했다. 9개 포지션에 모두 출전했다. 풀타임 첫 해였던 2004년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싱글 A팀 시절이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였는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해 승패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팀에서 재미있게 해보자는 차원에서 전 포지션에 뛰게 했다. 이 경기 전에 각 포지션에 출전한 경험이 있어 별로 문제 될 게 없었다.

-포수는 상대 타자 분석, 수비포메이션 등 경기 전에 숙지해야 할 게 많다. 사인이나 볼배합은 직접 했나. 외국인 투수를 제외하고 혹시 배터리 호흡을 맞춰보고 싶은 국내 선수가 있나. 넥센 선수와 다른 팀 선수를 한 명씩 꼽아달라(SK 정상호)

(손가락을 꼽아보이며)한꺼번에 너무 많은 질문을 한다.(웃음) 경기 전에 상대 타자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다. 배터리 코치, 투수 코치와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볼배합 사인은 내가 주로 냈다. 투수가 누구든지 공을 받아야 할 상황이 되면 포수를 출전하고 싶다. 우리 팀의 모든 투수 공을 받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사실 다른 팀 투수는 잘 몰라서 지금으로선 말하기 어렵다.


넥센 히어로즈 로티노. 목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한국 포수들과 스타일이 다르다고 느꼈다. 한국 포수들을 보고 있을텐데, 어떤 차이가 있나.(삼성 이흥련, LG 최경철)

배터리 코치와 준비를 많이 했다. 특히 오른손 타자의 몸쪽 공을 받는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스타일에 차이가 확실히 있는 것 같다. 배터리 코치가 미트를 몸 안쪽에 두고 공을 잡으라고 강조하는데, 이게 한국 스타일인 것 같다.

-외야수를 보면서 포수까지 잘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나 궁금하다.(NC 권희동)

오랫동안 포수를 했기 때문에 외야수를 하다가 포수를 보는 게 전혀 낯설지 않다. 내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장난스런 얼굴로)고등학교 이후 포수를 안 해봤으면 조언해주고 싶은 게 있다. 꼭 낭심보호대를 착용하라. 하하.(권희동은 고등학교 2학년까지 포수로도 뛰었다. 1군 엔트리에 올라와 있는 포수가 모두 빠지는 비상 상황이 벌어질 경우 포수로 출전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수다)

-타자의 관점에서 대답해달라. 한국 투수와 미국 투수의 스타일상 차이점이 무엇인가. 당신의 조언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LG 티포드)

스타일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비슷한 점이 많다. (갑자기 농담 모드로 전환해)티포드에게 이 말을 꼭 전해달라. 나는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 직구를 제일 싫어한다고.(로티노는 경기에 관한 질문에 신중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비교적 짧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수시로 농담을 섞어가며 유쾌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어했다)

-외국인 선수답지 않게 매순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일본 투수와 한국 투수를 모두 상대해 봤는데, 차이점이 있나.(롯데 손아섭)

항상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데, 그런 면을 잘 봐줘서 고맙다. 투구폼에 확실히 차이가 있다. 대다수의 일본 투수들이 낮은 자세에서 팔을 끌고 나와 공을 던진다. 반면, 한국 투수들은 위에서 아래로 공을 찍어 내리면서 던진다. 한국과 미국 투수는 스타일이 비슷하다.

-가장 자신 있는 수비 위치는 어디인가.(넥센 이택근, KIA 신종길, 두산 정재훈)

포수를 보는 게 재미있지만, 사실 최근 2년간 포수로 자주 출전하지 못 했다. 최근 3~4년간 주로 외야 수비를 해왔기 때문에 외야수가 가장 편하고 자신이 있다. 좌익수로 출전해 홈에 쇄도하는 주자를 잡은 적이 있는데, 기분이 좋았다. 투수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팀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좋다. 이런 플레이가 야구장에서 내가 보여줘야할 일이다. 한국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베이스러닝을 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못 하는 게 없는 로티노다"라고 말한다. 도대체 못 하는 게 무엇인가.^^;(넥센 허도환)

(잠시 뜸을 들이다가)춤을 잘 못 춘다.(웃음) 얼마나 야구를 잘 하는냐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발전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이전보다 좀 더 발전하고 싶다. 그래서 매일 더 잘 할려고 노력하고 도전하는 자세로 야구를 한다. 항상 이런 마음을 갖고 경기장에 들어간다.(염경엽 감독은 시즌 개막 후에도 로티노를 포수로 쓸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포수로 출전할 수는 있지만 선발로 내보낼 생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주전 포수인 허도환이 허리통증으로 출전이 어려워지고, 백업 포수 박동원이 부진하면서 로티노의 포수 선발출전이 이뤄졌다)


넥센 히어로즈 의 외국인 타사 로티노. 목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한국야구를 접하고 생각하지 못한 일로 감동을 받은 적이 있나.(넥센 밴헤켄)

수준이 높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한국야구의 수준이 높다. 특히 관중석에서 나오는 에너지, 노래, 응원이 놀랍다. 팬들이 야구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 느껴진다. 우리 팀의 홈인 목동구장 열기도 뜨겁고, 광주 KIA 팬들의 열정적인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다른 외국인 타자에 비해 경력이 화려하지 않은데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적응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SK 조동화, 두산 유희관)

지난해 일본에서 뛴 게 많은 도움이 됐다. 지난 시즌에는 초반에 잘 하다가 페이스가 떨어졌다. 그 때는 빨리 안타를 때려야한다는 조급한 마음이 있었다. 그런 마음을 갖고서는 안타를 치기 어렵다는 걸 느꼈다. 올 해는 지난해처럼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올 해도 출발이 늦었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은 게 도움이 된 것 같다. 포수로 나설 때 마침 타격감이 좋았다. 타석에 자주 나가면서 타격 타이밍이 잘 맞아갔다. 여러가지 요인이 맞아 떨어진 것 같다.

-예전에 기내에서 우연히 만난적 있는데, 어떤 느낌이었나.^^(롯데 황재균)

왜 경기장에서 인사를 안 했나. 야구장에서 아는 척을 안 해 기억 못 하는 줄 알았다. (장난기어린 어투로)잘 생겼다는 말을 듣고 싶은 건가. 남자에게 잘 생겼다는 말은 하는 건 아닌 것 같다.(웃음)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게 선천적인 능력인가, 아니면 남이 모르는 노력이 있었나.(두산 홍성흔)

연습을 참 많이 했다. 사실 프로팀에 입단하기 전까지 포수를 해 본 적이 없다. 팀에서 포수를 해 보라고 해서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됐다. 공을 던지는 폼이 포수랑 비슷했고, 어렸을 때부터 어깨가 강해 권유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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