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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야구를 즐기고, 내년엔 야구에 미쳐보겠다."
지난해 시즌 개막 시점, NC의 마무리투수는 김진성(29)이었다. 프로에서 두 차례 방출된 끝에 트라이아웃으로 신생팀에 합류한 무명투수. NC는 1군 기록이 전혀 없는 김진성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김진성의 어깨는 무거웠다. 팀의 부진이 자기 책임 같았다. 당시를 회상하며 "작년엔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성격상 스스로 위축되는 일이 많았다. 블론세이브를 해도 동료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혼자 미안하다는 생각에 어딘가로 숨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김진성을 바꾼 건 통산 102승 투수 박명환이었다. 베테랑답게 김진성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김진성은 "마무리훈련 때 처음 인사를 드렸다. 처음엔 무서운 선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같이 몸을 만들면서 내가 말하지 않는 속마음까지 짚어내더라. 내가 불안했던 걸 하나씩 조언해주셨다"고 말했다.
박명환은 마운드에서의 마음가짐이나 훈련 방법, 자신감을 갖는 법에 대해 끊임없이 조언해줬다. 캠프 때도 방에 혼자 있으면 찾아와 대화를 나눴다. 다소 소심했던 김진성의 성격도 박명환 덕에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나도 바뀔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불안하지만 명환이형 덕에 80~90%는 극복했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선배의 어떤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을까. 김진성은 "명환이형이 '넌 엄청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데 그 이상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 그리곤 '넌 즐기지 못했다'고 했다"고 했다. 이어 "이제 즐길 때라고 하셨다. 야구를 즐기게 된다면, 그 다음엔 야구에 미쳐보라고 하더라"며 "올해는 야구를 즐기는 게 목표다. 내년엔 미쳐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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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즐기지 못했던 야구, 이젠 마운드에서 즐길 줄도 알게 됐다. 김진성은 시범경기 6경기에 등판해 단 1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6이닝 동안 2안타 1볼넷만을 내줬다. 탈삼진은 4개. 평균자책점 0에 3세이브를 올리며 시범경기 구원 1위에 올랐다.
그는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이다. 큰 의미 없다. 작년에도 정규시즌에 들어가니 타자들 눈빛이 바뀌더라"며 "시범경기 땐 감을 찾으려고 살살한 것 같다. 타석에서 느껴지는 기가 달랐다"고 했다.
그래도 코칭스태프는 김진성에게 합격점을 주고 있다. 올해는 마무리로 믿어볼 만하다는 생각이다. 김경문 감독은 "현재 팀 구성상 진성이가 마무리를 잘 해주는 게 베스트"라며 "작년보다 부담을 덜 해줘 편하게 던지게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김 감독이나 최일언 투수코치 모두 김진성에게 "네가 마무리다"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자연스레 마무리로 낙점돼 평소처럼 던지게 하는 것이다. 김진성은 "부담을 안 주려고 말씀을 안 하신 것 같다. 최 코치님이 올해 캠프에서 '이제 좀 투수가 돼가는 것 같다'는 말씀만 하셨다"며 미소지었다.
김진성의 올해 목표는 '즐기는 것'이다. 마무리로 어떻게 한다거나, 수치상의 목표는 없다. 즐기다 보면 성적은 따라올 것이라 믿고 있다. 즐기는 증거는 마운드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는 "작년엔 6회쯤 되면 심장이 벌렁벌렁 거렸다. 잘 던져야 된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요즘에도 긴장은 되지만, 포수 미트만 보고 정확히 던지면 된다고 편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지난해 김진성과 처음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그는 다른 팀 선수들에게 "쟤가 무슨 마무리냐"라는 말을 듣고 이를 악물었다고 털어놨었다. 하지만 타팀 선수들의 말처럼, 마무리로 실패하고 말았다.
정확히 1년만에 다시 그 얘기를 꺼냈다. 김진성은 "작년엔 그 말이 생각나서 다른 팀 선수들을 피해다녔다. 하지만 이젠 전혀 그렇지 않다. 1군에 있으면 같은 1군 선수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