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구'는 프로야구에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중 하나가 됐다. 연예인들의 홍보 수단에 불과할 것 같았던 시구도 이젠 튀지 않으면 주목받기 힘든 지경이 됐다. 2013시즌 프로야구에선 그 어느 때보다 멋진 시구가 쏟아졌다. 그래서 뽑아봤다. 올시즌 프로야구 시구 베스트5.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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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체조 선수 출신인 신수지의 '일루전 시구'가 올 한 해 최고의 시구로 꼽혔다. 지난 7월 5일 잠실 두산-삼성전에 시구자로 나선 신수지는 마운드 앞에 서서 왼 다리를 뒤로 내딛으며 와인드업 동작을 준비했다.
엉덩이를 쭉 뺀 준비동작만 봤을 땐 다른 여자 연예인들의 시구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신수지는 왼발 대신 오른발로 몸을 지탱한 채 순식간에 상체를 360도로 돌린 뒤, 다시 앞을 보고 공을 뿌렸다. 머리가 땅에 닿을락말락 할 정도로 아슬아슬하고 역동적인 시구였다.
순식간에 벌어진 회전동작이었지만, 밸런스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공은 정확히 포수 미트로 향했다. 전직 체조선수다운 신수지의 아크로바틱한 시구에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 이슈가 됐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는 '당신이 평생 볼 수 있는 가장 인상적인 시구 중 하나'라며 신수지의 시구를 소개했다.
신수지는 이 시구 이후 야구에 푹 빠졌다. 여자 사회인야구에서 뛰면서 타고난 운동신경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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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구 하나로 인생이 바뀌었다? 데뷔 8년차 방송인 클라라의 얘기다. 지난 5월 3일 두산과 LG의 잠실 라이벌전에 시구자로 나선 클라라는 당시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다. 하지만 과감한 시구 패션 하나로 '스타'가 됐다.
클라라는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의상을 선택했다. 타이트하게 리폼한 두산 유니폼 상의도 과감했지만, 압권은 레깅스였다. 하체에 완전히 밀착된 흰색 줄무늬 레깅스 차림은 클라라를 올 한해 최고의 이슈 메이커로 만들었다.
줄무늬 레깅스 때문에 홈팀인 두산팬들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이날 상대였던 LG의 홈 유니폼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논란도 있었지만, 클라라의 시구는 '핫'했다.
이후 클라라는 승승장구했다. 그녀의 시구 복장도 수많은 패러디를 낳으며 화제를 이어갔다. 클라라는 이후 인터뷰에서 "(시구는) 8년만에 다가온 기회였다. 레깅스는 신의 한 수였다"고 밝혔다. 또한 "무명인데 시구 기회를 준 구단에 감사드린다. 그동안 시구에서 상체만 주목받았는데 하체의 건강미를 보여드리기 위해 레깅스를 입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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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지의 '일루전' 시구에 이어 또다시 경이로운 시구가 나왔다.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 방송인 태미는 8월 17일 잠실 두산-SK전에서 시구에 태권도를 접목시켰다.
와인드업을 한 태미는 발을 앞으로 내딛는 대신 공중으로 재차 뛰어올랐다. 허공을 가른 왼발로 뒤돌려차기를 완성한 태미는 착지 후 자연스럽게 앞을 바라보며 공을 던졌다. 공을 던진 뒤 피니시 동작에선 오른발을 하늘 높이 차올렸다.
신수지에 이어 태미의 태권도 시구 역시 메이저리그 홈페이지를 강타했다. MLB.com에서는 '한국의 태권도 배우가 미친 시구를 연출했다'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또한 '단순히 던진다고 정의할 수 없는 정도다. 시구는 요즘 한국의 자랑거리'라며 신수지와 태미의 시구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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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한국프로야구에서도 일반인의 시구가 늘어가는 추세다. 각종 사연을 가진 이들, 그중에는 누구보다 팀을 사랑하는 팬들의 시구도 있다.
한화는 지난 5월 19일 대전 두산전에서 한 여성팬을 초청했다. SNS를 통해 수소문해 찾아낸 그녀는 누구였을까. 바로 개막 13연패중이던 한화가 첫 승을 거둔 4월 16일 NC전이 끝나자 관중석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던 민효정씨였다.
민씨는 당시 경기가 끝나자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고, 이 모습이 중계카메라에 포착되면서 '한화 눈물녀'로 화제가 됐다.
한화는 올시즌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내내 부진이 이어졌지만, 홈팬들은 최악의 성적에도 변함없이 응원을 보냈다. 한화 구단이 팬들에 대한 보답으로 마련한 이 시구에 야구팬들은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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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두산의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10월 27일 잠실구장. 경기 시작 전까지 시구자의 존재가 발표되지 않았다. 극비리에 초대된 시구자는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전두환, 김영삼,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시구를 한 역대 네번째 대통령이 됐다. 또한 지난 2003년 고 노 전 대통령의 올스타전 시구 이후 10년만이었다. 경호상의 문제로 미리 시구자를 밝힐 수 없었기에 관중들은 박 대통령의 깜짝 등장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판과 비슷한 복장을 한 경호원, 사진기자로 위장해 취재진 사이에 섞인 경호원들이 근접 경호에 나섰고, 태극기가 새겨진 글러브를 낀 박 대통령은 무사히 시구를 마쳤다. 박 대통령이 던진 공은 큰 포물선을 그리며 원바운드로 두산 포수 최재훈의 미트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2013 Korean Series'라고 적힌 곤색 외투에 회색 면바지의 캐주얼한 차림으로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시구를 마친 뒤엔 본부석에 마련된 좌석에 앉아 서울 언북중학교 야구부 학생들과 함께 1시간 가량 경기를 관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