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발맞춰 스포츠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스포츠 대리인(에이전트) 제도 활성화를 그 일환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최근 스포츠산업진흥법을 개정하고 프로 스포츠단체에 에이전트 제도를 권장하기로 했다. 현재 프로축구의 경우 이미 에이전트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번 문체부의 움직임에 가장 민감할 수 있는 종목이 프로야구다. 프로농구와 프로배구는 샐러리캡(팀 연봉상한제)이 있어 대리인 제도가 활성화되기 힘든 구조를 갖고 있다.
프로야구는 국내 프로스포츠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30년이 넘었지만 에이전트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 정부에선 이미 2000년대부터 KBO(한국야구위원회) 쪽에 에이전트 제도 도입을 권유해왔다. 현행 규정에서 변호사에 한해 대리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실효는 거의 없다. 구단 입장에선 대리인 제도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정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다수의 선수들은 자신들의 권익 보호 차원에서 대리인 제도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구단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정부에서 에이전트 제도를 권유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면서 프로야구선수협회를 중심으로 KBO와 구단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 정부와 KBO 그리고 구단, 선수협은 구체적인 에이전트 제도 시행안을 갖고 있지 않다. 정부는 화두를 던졌고, KBO와 구단 선수협은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
먼저 프로야구 시장 상황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 에이전트 도입시 가장 먼저 구단의 예산 부담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대개 스포츠시장에서 에이전트 수수료는 5~10% 정도다. 선수들은 에이전트에게 줄 수수류를 구단과의 협상 과정에서 더 받아내려고 할 것이다. 일례로 에이전트가 강민호(롯데와 75억원에 계약) 정도의 거물 FA 대리인으로 나서 협상할 경우 대행 수수류를 구단에서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 구단은 전력 강화를 위해 꼭 잡아야 하는 FA라면 수수료를 부담하는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가 구단별로 한두건만 되더라도 한해 인건비는 수 억에서 수 십억원까지 상승하게 된다.
국내 야구는 현재 스포츠산업의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된다. 넥센 히어로즈를 뺀 9팀(KT 포함)이 모그룹의 지원을 받고 있다. 무그룹이 협찬비 차원으로 매해 수백억원씩 도와주지 않으면 운영이 안 된다. 한마디로 매년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수입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에이전트가 들어올 경우 인건비 상승이 불가피하고 구단 경영을 더욱 압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에이전트 제도 도입이 선수들간 '빈익빈 부익부'의 격차를 더욱 크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결국 구단들이 정한 연봉은 고정돼 있다. 에이전트들은 고액 연봉 선수들의 이익을대변할 가능성이 높다. 연봉 5000만원 이하 선수들의 에이전트는 수수료를 받아봐야 액수가 적다.
에이전트 도입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현재 구단과 선수간의 협상에선 객관적인 잣대 보다 인간적인 정이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아 뒷거래가 잦았다. KBO 규정을 어기면서 묵인돼 왔다. 하지만 에이전트가 중간에서 협상을 진행할 경우 이중 계약서 등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야구계에선 에이전트 제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행할 지에 의견을 모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까지 에이전트로 인정할 지, 또 에이전트 자격 시험을 볼 것인지 등 결정해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메이저리그에선 이미 에이전트 제도가 활성화된 지 오래다. 스캇 보라스, 제이 지 같은 거물 에이전트가 여럿 있다. 일본 야구에선 변호사와 메이저리그 에이전트 자격 시험을 통과한 자를 에이전트로 인정하고 있다. 국내 프로축구에선 FIFA 에이전트, 변호사, 직계가족에 한해 대리인 자격을 주고 있다.
KBO는 또 에이전트 제도 도입에 따라 법정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규정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수정해야 한다. 현행 규정에는 선수의 권익을 일방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것들이 다수 있다.
에이전트 제도는 야구판의 태풍의 눈이 될 수 있다. 꼼꼼하게 준비해야 시행한 후 잡음을 취소화할 수 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