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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는 프로야구 선수들에게는 어떤 면에서 자존심의 상징과 같다. 그래서 새로 팀을 옮길 때 원래 달았던 등번호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크다. 그런데 해당 번호를 이미 다른 선수가 사용하고 있다면 어떨까. 대부분 선수들끼리의 선후배 관계를 기반으로 교통정리가 된다.
색다른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오승환은 전날 삼성 경산 볼파크에서 한신과 2년간 계약금 2억엔에 연봉 3억엔 그리고 옵션 1억엔 등 최대 9억엔(약 95억원)에 입단계약을 맺은 바 있다. 이는 역대 한국 프로무대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선수 가운데 최고 대우다. 그만큼 한신에서 오승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증거다.
더불어 한신이 마무리 투수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는 대목. 한신은 지난해까지 현역 최고의 마무리로 평가받던 후지카와 덕분에 뒷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지카와가 지난해를 끝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 올 시즌 내내 마무리 약화 문제로 고민해왔다. 오죽하면 오승환의 입단 소식을 전해들은 와다 유타카 한신 감독이 "1년간 고생한 포지션이라 (오승환이) 단단히 메워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인지 한신이 오승환에게 바라는 목표는 정확히 '후지카와만큼 해주는 것'이다. 2007년부터 한신 마무리로 활약해 온 후지카와는 2012시즌 2승2패 24세이브에 평균자책점 1.32를 기록했다. 통산 세이브 기록은 220개나 된다.
재미있는 점은 한신이 아예 오승환에게 후지카와가 달았던 등번호 '22번'까지 내주기로 한 것이다. 후지카와가 팀을 떠난 뒤 '22번'은 아무나 달 수 없는 번호로 인식돼왔다. 올해 누구도 '22번'에 탐을 내지 않았다.
원래 오승환은 한국에서 '21번'을 달았다. 하지만 현재 한신에서는 좌완 선발 이와타 미노루(30)가 21번을 달고 있다. 비록 오승환이 큰 기대를 받고 한신에 입단했지만, 신인이 아니라 팀에서 오래 기여해 온 선수의 번호를 달라고 할 입장은 아니다. 자칫 첫인상을 안좋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 대해 한신이 멋진 해결책을 내어놓은 것이다. 후지카와의 이적 후 주인을 잃은 '22번'을 맡기면서 동시에 후지카와처럼 맹활약해달라는 기원을 담아내기도 했다. 한신 '22번'의 새 주인으로 유력시되는 오승환이 과연 '원주인' 후지카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줄 지 기대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