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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온 한국, NC 홍성용의 '야구 드라마'

이명노 기자

기사입력 2013-11-21 11:55



최근 한 스포츠 케이블 채널에서 투수발굴 서바이벌 오디션이 열렸다. '나는 투수다'라는 타이틀 아래 수많은 참가자들이 꿈을 던졌다. 그중에서 진짜 프로의 꿈을 이룬 선수가 있다. 바로 NC 다이노스에 입단한 좌완 홍성용(27)이다.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홍성용은 당당히 신인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했던 선수 출신이었다. 각종 사연이 있는 참가자들을 찾다 보니, 홍성용도 출연 기회를 잡게 됐다. 하지만 그는 망설였다. 그래도 "프로 선수 출신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 레벨이라고 말하기 힘든 이들이 주된 참가자였기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간절함'은 그를 이끌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카메라 앞에 섰다. 일본 독립리그 에이스 출신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그는 그렇게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쓸쓸히 떠난 한국, 독립리그의 에이스 되다

청소년대표 출신인 홍성용은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2005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5라운드 전체 35순위로 LG에 지명됐다. 하지만 1군 등판기록 하나 없이 2008시즌을 끝으로 한국프로야구를 떠났다. 2005시즌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가 1군 경험의 전부였다. 2006, 2007시즌엔 경찰 야구단에서 군복무했고, 2008시즌을 끝으로 방출통보를 받았다.

홍성용은 LG 시절을 떠올리며 "2군에선 기회도 많이 왔다. 하지만 결과는 결과다. 내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4년간의 짧은 프로 생활은 끝이 났다. 그가 야구를 계속 하기 위해 떠난 곳은 일본이었다.

2009년을 시작으로 간사이리그와 시코쿠리그를 오가며 독립리그에서 얼굴을 알렸다. 국내에서 교류경기를 가졌던 소프트뱅크 3군과 비등한 수준의 팀들이다. 일본 프로팀들과 연습경기도 종종 한다.

다소 기복은 있었지만, 홍성용은 독립리그의 에이스였다. 2010년엔 주니치와 연습경기 때 4회까지 노히트노런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일본 프로팀의 스카우트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홍성용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2군에선 외국인선수를 무제한으로 보유할 수 있다. '연습생' 개념의 선수들이 많다. 일본 프로팀들도 홍성용에게 그런 식의 제안만 했다. 요코하마 스카우트는 구체적으로 현재 최고 140㎞, 평균 130㎞대 중반의 공을 최고 145㎞, 평균 140㎞대 초반으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그 정도 구속이 나왔을 때 1군에서 진짜 '용병'으로 쓰겠단 것이었다.

홍성용은 일본프로야구의 외국인선수 제도에 대해 잘 몰랐다. 연습경기 때 프로팀들을 봤을 땐 외국인선수 보유 제한 등은 생각도 못했다. 좌완인데다 140㎞ 정도의 공도 컨트롤만 되면 승부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본에도 프로에선 홍성용 같은 투수는 많았다.


마산구장에서 마무리훈련에 한창인 NC 홍성용. 사진제공=NC다이노스
친정팀 LG의 러브콜,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 사이 친정팀이었던 LG에서도 꾸준히 연락이 왔다. 일본 독립리그발 소식을 들은 LG 쪽에서 꾸준히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이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LG로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홍성용은 그때마다 간곡히 사양했다. 첫번째로 실패를 안긴 한국 보단 일본프로야구에서 성공하고 싶었고, 두번째론 실패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처음 LG에서 연락이 온 건 2010년 초반이었다. 차명석 코치가 직접 연락을 했다. 그땐 "좀더 좋아져서 일본프로야구에 가겠다"며 거절했다.

2011년에도 다시 연락이 왔다. 하지만 그땐 일본팀 입단이 좌절되면서 컨디션이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차 코치는 "박종훈 감독님이 보고 싶어 한다. 일본 스프링캠프지로 바로 와라"고 했지만. 몸상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홍성용은 당시 선택에 대해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날 내보낸 팀이면 정말 좋은 컨디션을 보여줘야 하는데 몸상태에도 자신이 없었다"며 "사실 LG가 싫어서도, 날 잘라서도 아니었다. 신인지명 받고 LG에 입단해 실력으로 안 됐다. 나에게 변화를 줘야만 했다"고 고백했다.

변화를 주기 위해선 LG가 아닌 다른 팀이 필요했다. 첫번째가 일본팀이었고, 두번째는 한국 내 다른 팀이었다. 하지만 이후 프로팀의 러브콜은 없었다.

마지막 몸부림, 어머니 앞에서 NC 유니폼을 받다

2012년 어느 날 밤. 홍성용은 잠자리에 들려다 갑자기 글러브와 수건을 들고 숙소 밖으로 나갔다. 고교 때 잠시 던져봤던 투구폼이 기억난 것이다. 좋지 않을 때 과감히 변화를 줘야겠다는 생각에 혼자 몇 시간 동안 섀도 피칭을 했다.

팔을 높게 들었다 짧게 돌리는 게 핵심이었다. 팔스윙이 짧지만, 공을 최대한 숨기고 나오는 폼이었다. 은사였던 무라카미 다카유키 06BULLS 감독은 하던대로 홍성용에게 믿음을 보냈다. 꾸준한 훈련 결과 하체 밸런스도 잡히고 릴리스포인트도 일정해졌다. 동료들은 '볼끝이 좋아졌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갑작스런 투구폼 전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여기에 홍성용은 또 한 번 변신을 시도했다. 자신이 프로팀에 가려면 완급조절을 해서 길게 던지는 선발이 아닌, 좌타자를 상대하는 원포인트릴리프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길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독립리그라 해도 한 팀의 에이스를 갑자기 원포인트로 전환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 무라카미 감독은 원포인트 대신 마무리를 제안했다. 그는 "프로에서 왼손타자만 상대할 수는 없다. 박빙의 상황에선 상대가 오른손 대타를 낸다. 너에게 무조건 경기 마지막을 맡길 테니 좌우를 가리지 말고 연습해라"고 격려했다.

그 결과 홍성용은 불펜투수로 변신에 성공했다. 올해 들어 한국 프로팀에서도 처음 연락이 왔다. 9구단 NC 다이노스였다. '나는 투수다' 출연 전 이미 홍성용을 NC에서 점찍은 것이다.

홍성용은 지난 8월 당당히 테스트에 합격했다. 무엇보다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공을 던져 기뻤다. 홍성용은 "어렸을 때부터 힘겹게 뒷바라지를 해준 어머니가 야구장에 오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와 테스트를 본다고 하니, '이번엔 꼭 보고싶다'고 하시더라. 긴장되는 자리지만, 이번엔 어머니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NC 마무리 훈련에 합류한 홍성용은 5년만에 한국 생활을 시작했다. 넉넉치 않은 독립리그 연봉에 고국행 비행기표는 언감생심이었다. 이제 부모님이 있는 한국땅에서 공을 던지게 됐다. 홍성용은 "난 이제 시작이다. 스프링캠프, 시범경기, 그리고 1군까지 갈 길이 멀다. 1군에서 '홍성용'이란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공을 던지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명노 기자 nirvan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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