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장도 패장도 없었던 훈훈한 KS 뒷장면

노재형 기자

기사입력 2013-11-02 11:01 | 최종수정 2013-11-02 11:01


지난달 23일 대구 시민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미디어데이에서 두산 김진욱 감독과 삼성 류중일 감독이 인터뷰 도중 활짝 웃고 있다. 대구=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승부가 끝나면 동료이자 선후배로 돌아간다.

삼성이 3연 연속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은 1일 대구에서 열린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7대3의 승리를 거두고 시리즈 전적 4승3패로 챔피언에 등극했다. 1승3패로 몰린 뒤 3연승을 거두는 '미러클' 우승으로 최강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승장' 류중일 감독의 리더십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반면 두산은 정규리그 4위팀 최초이자 12년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렸지만 뒷심이 부족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거치며 자신감과 경기력을 높였으나, 결국 삼성의 아성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 포스트시즌은 사령탑 2년차인 김진욱 감독이 새롭게 조명을 받은 무대였다. 한국시리즈에서는 '패장'에 그쳤으나, 뚝심의 용병술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류 감독과 김 감독은 선수와 지도자 시절을 통틀어 단 한 번도 한 팀에서 뛴 적이 없다. 김 감독이 3년 선배이다. 84년 동아대 졸업후 OB에 입단한 김 감독은 93년 쌍방울에서 은퇴를 했다. 프로 지도자는 2007년 두산 투수코치로 시작했고, 지난해 처음 지휘봉을 잡았다. 류 감독은 한양대를 졸업하고 87년 입단했다. 류 감독은 삼성에서만 뛰었고, 지도자 생활도 2000년 삼성서 시작했다. 두 사령탑은 학연, 지연 등 소위 공통 분모는 없지만, '덕장'으로 불리우며 양팀간 경기에서 숱한 명승부를 펼쳐왔다.

이날 삼성이 우승을 확정짓고 축하 행사를 벌이는 동안 김 감독은 경기장 실내에 마련된 인터뷰실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있었다. 류 감독은 홈관중을 위해 우승 소감을 밝히고 선수들의 샴페인 세례를 받으며 3년 연속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런데 류 감독은 우승 행사가 끝나자마자 프런트 직원에게 "김진욱 감독님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고 한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적장'이었지만, 야구 선배이자 동료로서 김 감독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3루 덕아웃에 있는 김 감독을 발견한 류 감독은 김성래 수석코치와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 김 감독은 덕아웃 앞까지 나가 이들을 맞았다. 류 감독은 김 감독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악수를 나눴다. 두 사령탑은 가벼운 포옹을 하고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며 한국시리즈의 노고를 격려하기도 했다. 물론 김 감독은 "축하한다. 수고 많았다"라고 축하해 줬을 것이고, 류 감독은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답했을 것이다. 류 감독은 관중석에서 나오는 환성과 음악 소리가 너무 컸는지 김 감독의 귀에 대고 뭔가 말을 전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승장과 패장이 따로 없는,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이다.

지난 2009년 KIA가 이름을 해태에서 바꿔단 이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 승장인 조범현 감독은 패장인 SK 김성근 감독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해 화제가 됐다. 당시 KIA는 7차전에서 나지완의 사상 최초 한국시리즈 최종전 끝내기 홈런을 앞세워 우승을 거머쥐었다. 조 감독은 우승이 확정되자마자 코칭스태프와 악수를 나눈 뒤 3루쪽 SK 덕아웃을 찾아 스승인 김 감독에게 제자로서의 예를 갖췄다. 김성근 감독은 밟은 미소를 지으며 조 감독의 머리와 어깨를 두드려주며 축하해 줬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사적인 관계는 없다. 그러나 승부가 끝나면 동업자로서 친구 또는 선후배로서 정을 나누는 것이 우리 야구의 따뜻한 정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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