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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가 끝나면 동료이자 선후배로 돌아간다.
삼성이 3연 연속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삼성은 1일 대구에서 열린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7대3의 승리를 거두고 시리즈 전적 4승3패로 챔피언에 등극했다. 1승3패로 몰린 뒤 3연승을 거두는 '미러클' 우승으로 최강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승장' 류중일 감독의 리더십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류 감독과 김 감독은 선수와 지도자 시절을 통틀어 단 한 번도 한 팀에서 뛴 적이 없다. 김 감독이 3년 선배이다. 84년 동아대 졸업후 OB에 입단한 김 감독은 93년 쌍방울에서 은퇴를 했다. 프로 지도자는 2007년 두산 투수코치로 시작했고, 지난해 처음 지휘봉을 잡았다. 류 감독은 한양대를 졸업하고 87년 입단했다. 류 감독은 삼성에서만 뛰었고, 지도자 생활도 2000년 삼성서 시작했다. 두 사령탑은 학연, 지연 등 소위 공통 분모는 없지만, '덕장'으로 불리우며 양팀간 경기에서 숱한 명승부를 펼쳐왔다.
이날 삼성이 우승을 확정짓고 축하 행사를 벌이는 동안 김 감독은 경기장 실내에 마련된 인터뷰실에서 기자 회견을 하고 있었다. 류 감독은 홈관중을 위해 우승 소감을 밝히고 선수들의 샴페인 세례를 받으며 3년 연속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런데 류 감독은 우승 행사가 끝나자마자 프런트 직원에게 "김진욱 감독님 어디 계시냐"고 물었다고 한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적장'이었지만, 야구 선배이자 동료로서 김 감독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3루 덕아웃에 있는 김 감독을 발견한 류 감독은 김성래 수석코치와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 김 감독은 덕아웃 앞까지 나가 이들을 맞았다. 류 감독은 김 감독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뒤 악수를 나눴다. 두 사령탑은 가벼운 포옹을 하고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며 한국시리즈의 노고를 격려하기도 했다. 물론 김 감독은 "축하한다. 수고 많았다"라고 축하해 줬을 것이고, 류 감독은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답했을 것이다. 류 감독은 관중석에서 나오는 환성과 음악 소리가 너무 컸는지 김 감독의 귀에 대고 뭔가 말을 전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승장과 패장이 따로 없는,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이다.
지난 2009년 KIA가 이름을 해태에서 바꿔단 이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 승장인 조범현 감독은 패장인 SK 김성근 감독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해 화제가 됐다. 당시 KIA는 7차전에서 나지완의 사상 최초 한국시리즈 최종전 끝내기 홈런을 앞세워 우승을 거머쥐었다. 조 감독은 우승이 확정되자마자 코칭스태프와 악수를 나눈 뒤 3루쪽 SK 덕아웃을 찾아 스승인 김 감독에게 제자로서의 예를 갖췄다. 김성근 감독은 밟은 미소를 지으며 조 감독의 머리와 어깨를 두드려주며 축하해 줬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사적인 관계는 없다. 그러나 승부가 끝나면 동업자로서 친구 또는 선후배로서 정을 나누는 것이 우리 야구의 따뜻한 정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