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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유격수 김재호는 '유익수'다. 깊숙히 수비란 표현의 한도를 넘는다. 아예 외야 잔디를 떡 밟고 서있다. 좌익수 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가있다.
'저기서 송구하면 아웃 타이밍이 나올까?' 의구심이 생긴다. 2루수라면 모를까. 두산에는 '2익수'가 있었다. 고영민이다. 우익수 쪽 잔디까지 나가서 수비를 한다해서 붙은 별명. 2루수는 1루까지 송구 거리가 비교적 짧다. 그래서 가능한 이야기. 반면, 유격수는 1루까지 거리가 멀다. 가뜩이나 3루쪽으로 치우친 타구라도 나오면 더 멀어진다. 역모션도 걸린다. 잔디까지 걸어 나갈 수 있는 유격수는 강한 어깨와 정확한 송구가 가능한 자 뿐이다. 일종의 특권이다.
발 느린 타자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다. 유격수가 멀찌감치 서있으니 왠지 앞이 꽉 막힌듯한 느낌. 어지간히 강한 땅볼 타구로는 내야를 뚫지 못할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세게 치려고 힘이 들어간다. 리듬과 밸런스를 잃고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 김재호 시프트의 숨은 가치다.
타자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유익수' 김재호의 위치. 원칙이 있다. 17일 잠실 2차전을 앞두고 김재호는 살짝 공개했다. "그냥 아무데나 서는 건 아니고요. 그동안 관찰해온 타자의 타구가 자주 오는 위치가 있어요. 그 타구 방향과 타자의 걸음, 우리 팀 포수의 사인 등을 보고 위치를 정합니다."
김재호의 수비는 편안하다. 빠른 판단으로 미리 길목을 지키기 때문이다. 몸을 던지는 호수비. 보기는 좋지만 반드시 잘하는 수비라고는 단언하기 어렵다. 때론 위치 선정이 잘못 되고 판단이 늦었을 경우에 나오는 것이 또 호수비이기도 하다.
"제 수비는 멋이 없잖아요." 특유의 싱긋 웃음 속에 던진 김재호의 겸손 코멘트. 현존 프로야구 최고 수비를 자랑하는 유격수는 단연 김재호다. 그 자체만으로도 김재호는 충분히 '멋있다'.
잠실=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