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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대를 호령하던 '괴물'의 위용은 미국의 '몬스터'들 사이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괴물'에서 '코리안 몬스터'로 진화한 메이저리그 LA다저스 선발투수 류현진(26)은 실로 위대한 데뷔 시즌을 보냈다.
류현진이 드디어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을 성공리에 마쳤다. 비록 시즌 마지막 등판이었던 30일(한국시각) 콜로라도와의 홈경기에서 투구수 제한에 걸려 4이닝 8안타 1볼넷 4삼진으로 2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됐지만, 류현진이 올해 남긴 기록은 '위대했다'고 표현해도 과하지 않다. 그만큼 뚜렷한 성적을 냈고, 또 강한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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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류현진은 시즌 초반부터 LA다저스의 3선발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결국 류현진은 올해 총 30경기에 나와 192이닝을 소화하면서 14승8패, 평균자책점 3.00, 154탈삼진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거뒀다. 신인 중에서는 세인트루이스의 셸비 밀러(15승)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승리를 챙겼고, 평균자책점 역시 마이애미의 호세 페르난데스(2.19)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소화 이닝수는 신인 중 1위다.
류현진이 데뷔 시즌에 이런 성적을 거두리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시즌 개막전이던 4월 3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6⅓이닝 동안 무려 10개의 안타를 맞으며 3실점(1자책)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류현진은 금세 빅리그에 적응하며 한국 시절 보여줬던 위력을 과시했다. 두 번째 등판이던 4월 8일 피츠버그전에서 6⅓이닝 3안타(1홈런) 2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따낸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후 류현진은 꾸준히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이닝이터'의 위용을 과시했다. 올해 등판한 30경기 중 무려 22경기를 퀄리티스타트로 장식했다.
압권은 11번째 등판인 5월 29일 LA에인절스와의 홈경기에서 보여준 완봉승. 류현진은 이날 9이닝 동안 단 2개의 안타만을 허용하며, 무4사구 완봉승을 따냈다. 삼진도 7개를 곁들였다. 이 완봉승으로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뚜렷이 알리게 됐다.
이와 함께 7월 23일 토론토전부터 8월 14일 뉴욕 메츠전까지 달성한 선발 5연승도 류현진이 위대한 데뷔시즌을 보냈다는 이정표다. 결국 이런 거침없는 행보로 류현진은 데뷔 첫해 14승을 달성할 수 있었다.
박찬호 뛰어넘은 류현진, 다르빗슈한테도 안밀린다
류현진은 한국 프로야구 한화 소속으로 7년간(2006~2012) 활약한 뒤 지난해 말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LA다저스는 류현진을 잡기 위해 포스팅 비용으로만 무려 약 2573만 달러(한화 약 277억원)를 썼고, 이후 단독 협상을 통해 류현진과 6년간 36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LA다저스는 류현진을 잡기 위해서만 무려 61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쓴 것이다.
현지 언론에서는 당장 '과잉 지출'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낯선 투수에 대한 싸늘한 시선은 스프링캠프 뿐만 아니라 시즌 초반에도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류현진이 꾸준히 승승장구하자, 이런 시선은 금세 따뜻한 호의로 바뀌었다.
결국 프로는 성적으로 말해야 한다. 류현진은 스스로 거둔 성적으로 자신에 대한 LA다저스의 투자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급기야 시즌 막판에는 현지 언론에서 "류현진의 영입은 2013년 최고의 결정 중 하나"라는 찬사까지 나왔다.
이처럼 현지 언론의 평가를 180도 뒤바꿀 수 있던 것은 류현진이 시즌을 통해 남긴 위용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서 과거에 활약했거나 현재 활약 중인 아시아 출신 투수들 중에서도 발군이다. 류현진이 스스로의 '멘토'이자 '레전드'로 여기는 박찬호는 이미 뛰어넘었고, 현재 아시아 출신 투수 중 최강이라 불리는 텍사스의 다르빗슈 유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
데뷔 시즌의 기록을 살펴보자. 류현진은 올해 30경기 192이닝 14승8패, 평균자책점 3.00에 154삼진을 달성했다. 내로라했던 다른 아시아 출신 투수들은 어땠을까. 같은 LA다저스에서 지난 1995년 신인상을 따낸 노모 히데오는 28경기에 나와 191⅓이닝 동안 13승6패, 평균자책점 2.54, 236삼진을 올렸다. 출전경기수와 총 이닝수, 그리고 승수에서 류현진이 앞선다.
박찬호의 경우는 한국 프로무대를 거치지 않고, 마이너리그부터 차츰 올라왔기 때문에 진정한 데뷔 시즌은 첫 선발 풀타임 시즌이었던 1997년으로 봐야 한다. 이때 박찬호는 32경기에서 192이닝을 던지며 14승8패, 평균자책점 3.38, 166삼진을 기록했다. 류현진은 승패수에서는 박찬호와 동률을 이뤘지만, 평균자책점과 탈삼진에는 약간 못미쳤다. 하지만 경기당 이닝수에서 박찬호를 다시 앞질렀다. 더불어 데뷔 시즌 불과 11경기 만에 완봉승을 거둔 것은 박찬호가 오르지 못한 경지다. 이런 점을 보면 류현진이 충분히 박찬호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르빗슈와는 어떻게 비교해볼 수 있을까. 우선 다르빗슈의 데뷔시즌 성적을 보자. 지난해 류현진과 마찬가지로 포스팅을 통해 빅리그에 입성한 다르빗슈는 29경기에서 191⅓이닝을 소화하면서 16승9패를 달성했다. 그러면서 삼진 221개를 잡아냈다.
하지만 류현진도 이에 못지 않았다. 승수와 탈삼진에서 뒤졌지만, 출전 경기수와 이닝수에서 다르빗슈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평균자책점에서 다르빗슈가 3.90이나 되는 반면, 류현진은 3.00으로 낮다. 패전수도 상대적으로 적다. 이렇듯 서로 호각을 이루는 데뷔 시즌 기록을 보면 결국 류현진이 일본 최강 출신인 다르빗슈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