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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조롱인가. 특유의 스타일로 이해해야 하나.'
두산 투수 유희관(27)은 올시즌 특이한 피칭으로 화제의 중심에 있다.
대다수 투수들에게서 보기 힘든 초저속 투구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래서 팬들은 그를 '느림의 미학'이라고 부른다.
특히 유희관은 시속 79km짜리 슬로커브로 시선을 끌고 있다. 직구 최고 시속도 137km라고 하니 웬만한 고교생 투수도 던지지 않는 '이상한 공'을 갖고 있는 셈이다.
유희관은 느려도 너무 느린 자신의 구속을 장점으로 승화시켜 성공한 케이스다.
"나는 직구 속도가 느리지만 변화구 속도는 더 느려서 그에 대한 속도차가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보다 더 크기때문에 타자들의 타이밍을 빼앗는데 유리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올시즌 그가 4승1패3홀드1세이브, 평균자책점 2.60으로 선전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더구나 유희관은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초저속 커브를 경기마다 1개씩 정도는 꼭 구사하려고 한다. 시즌 초반 언젠가 초저속 커브를 던져서 재미를 본 적이 있는데 팬들이 기립박수를 쳐주면서까지 환호하는 것을 보고 팬 서비스를 위해서라도 종종 선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막 던지는 것은 아니다. 공이 너무 느리면 주자 견제가 힘들기 때문에 리드를 하고 있거나, 주자가 없는(특히 2사후) 여유있는 상황에서 초슬로 커브를 구사한다.
그런 유희관의 트레이드 마크가 논란의 대상이 됐다. 6일 잠실 삼성전에서다. 유희관은 4-1로 앞서던 7회초 2사에서 대타 진갑용을 상대로 79km 커브를 던졌다. 볼이었다.
이 때 진갑용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투수의 공을 평생 받아온 불혹의 베테랑 포수 입장에서 유희관의 공이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희관은 "타이밍을 빼앗기 위해 던지는 공인데 본의 아니게 오해의 소지가 생겼다면 사과한다"는 뜻을 밝혔다.
두산 김진욱 감독도 유희관을 옹호했다. 김 감독은 7일 삼성전을 앞두고 "유희관의 어제 사례는 다른 투수들이 하는 것과 다르다. 유희관은 원래 느린 공을 간간이 구사하는 투수다. 그런 행동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그랬다면 상대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평소대로 한 것"이라며 "이를 모를 리 없는 진갑용이 전혀 불쾌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김 감독은 "아무래도 진갑용이 경험이 많으니까. 투수와의 심리전, 기싸움에서 기선을 잡기 위해 은근슬쩍 유희관을 압박한 것이 아니겠냐"면서 "진갑용이 언짢은 표정을 지은 것도 승부의 측면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 류중일 감독도 김 감독과 같은 입장이면서도 품 안의 자식 진갑용을 끌어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선 류 감독은 "유희관은 그런 공을 이전에도 던지는 투수라고 하더라. 투수들이 모두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구종과 구질을 몇 개씩 갖고 있는데 유희관의 슬로커브가 그 종류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쿨'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진갑용이 불쾌하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에 대해 그럴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과거의 경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상대 팀 투수가 우리 팀 타자에게 아주 느린 공을 던진 적이 있다. 이에 투수코치가 나중에 상대팀 투수코치와 따로 만나서 야구판에서 통용되는 상대 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느냐며 항의한 뒤 사과를 받아낸 적이 있다. 때에 따라서 타자는 자신을 깔본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물론 류 감독이 거론한 과거 경험은 유희관과 달리 평소 느린 공을 던지지 않던 투수가 갑자기 상대 타자의 약을 올리게다는 의도가 담긴 경우다. 하지만 류 감독이 '예의'를 강조한 데다, 포수 진갑용은 투수들의 공을 잘안다고 언급한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희관의 스타일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고참 포수 진갑용 앞에서는 사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잠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