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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뒤에 있는 파도일 뿐이죠. 하지만, 앞 파도를 밀어낼 날이 올거에요."
3년 전, 한화 주전 3루수 송광민(30)이 딱 그랬다. 사상 초유의 시즌 중 군입대. 당시 엉망진창이던 한화의 선수관리 시스템이 만들어낸 한 편의 촌극이었다. 공수에서 팀을 이끌어가야 할 핵심선수였던 송광민은 2010시즌이 한창 치러지던 중 입대영장을 받는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자 리얼 '시트콤'의 한 장면이나 나름없었다. 그렇게 그라운드를 떠난 송광민이 다시 한화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꼬박 3년이 시간이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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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송광민은 기자와 소줏잔을 기울이며 "뭐가 어떻게 된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열심히 시즌을 준비했는데, 너무 허망하다"고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한창 전성기를 만들어나가던 프로야구 선수에게 2년의 공백은 무척 크다. 게다가 당시 송광님은 현역 입대결정이 내려진 상황이었다.
황당하기는 당시 팀을 처음으로 맡은 한대화 전 감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전 감독은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선수 관리를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다"며 당황스러워했다. 후회와 탄식, 허망함이 팀에 가득 퍼졌지만 구단은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결국 송광민은 2010년 7월 13일, 머리를 짧게 깎고 훈련소로 떠났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반전이 터져나왔다. 막상 훈련소에 들어가고 보니 입대전 다쳤던 왼쪽 발목의 상태가 안좋아 퇴소 처분과 함께 신체검사 재검 판정을 받은 것이다. 퇴소하고, 수술을 받고, 다시 재검 일정을 기다리며 꼬박 1년을 그냥 보냈다. 선수 신분도 아니고, 군인 신분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의 허송세월.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다보니 남들은 2년이면 되었을 군복무 시기가 결과적으로 3년으로 늘어나버렸다.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은 송광민은 2011년 6월에 다시 훈련소에 입소해 7월부터 충남교육청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제서야 어느 정도 복잡하게 얽혔던 실타래가 풀리는 듯 했다. 낮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서류정리 등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 후에는 발목 부위에 대한 재활과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몸을 만들었다. 언젠가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갈 때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송광민은 장난끼가 많고, 유쾌한 선수였다. 그러나 군 복무와 관련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한층 더 진중해졌다. 달아오른 쇠에 망치질을 하면 더 단단해지듯, 송광민도 시련을 통해 더 단단한 마음을 갖게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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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19일 오전 9시. 드디어 공익근무요원 송광민에 대한 '소집 해제 명령'이 떨어졌다. 이제 다시 '야구선수 송광민'이 된 것이다. 소집 해제를 4개월 정도 앞둔 지난 2월부터 송광민은 충남교육청에서 서산초등학교로 근무지를 변경했다. 한화의 2군 훈련장이 있는 서산 쪽에서 남은 공익근무요원 기간을 채우는 동시에 저녁 퇴근 후 현역 복귀를 위해 본격적인 훈련을 받기 위해서다.
송광민은 "이전까지는 혼자서 운동하다가 올 2월부터 본격적으로 팀과 함께 훈련을 하니까 정말 좋았죠. 낮에는 서류정리, 풀뽑기, 나무심기, 주차관리 등 공익근무 작업을 하고, 저녁 때는 서산훈련장에서 계속 뛰고 방망이를 휘둘렀어요. 휴일인 주말에는 3군 경기에도 출전했어요."라며 복귀를 위한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훈련을 많이했다"는 말은 송광민의 몸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여전히 짧은 머리의 송광민은 살이 쪽 빠진 모습이다. "요즘에 다시 7㎏를 뺐어요. 공익근무를 하면서 혼자 훈련할 때보다 더 많이 뛰었죠." 얼굴은 헬쑥해진 모습이지만, 유니폼 겉으로 드러나는 탄탄한 하체근육이 그간의 훈련량을 짐작케할 수 있었다.
지난 3년의 시간 동안 송광민은 기회를 잃었지만, 강하고 단단한 마음을 얻었다. 송광민의 입에서 '절박함' '목표의식' '앞만 보고 달린다'와 같은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복귀의 각오가 얼마나 뜨거운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서산에서 훈련하던 시기에 송광민은 가끔씩 혼자 서산 앞바다를 바라봤다고 한다. 석양에 물든 그 파도 소리를 들으며 송광민은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일종의 개인적인 '힐링 타임'이었던 셈.
"서산 바닷가에서 파도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뒤의 파도가 계속 밀려오면서 앞에 있는 파도를 밀어내잖아요. 그걸 보고 '아, 지금의 나는 저 뒤에 있는 파도고, 1군 선수들은 앞에 있는 파도구나'. 저 앞의 파도를 따라잡고 밀어내기 위해서는 계속 더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겠다고 결심했죠." 서산의 바다는 송광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동시에 각성의 기회를 줬다.
이제 막 현역으로 복귀한 송광민이 언제 1군에 올라올 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한화 김성한 수석코치는 "일단 차분히 몸을 만들고, 아프지만 말아라"며 송광민에게 서둘지 말라고 했다. 송광민의 표현처럼 아직은 '뒤에 있는 파도'인 셈이다. 그러나 언젠가 송광민이 다시 한화의 주전 3루수 자리를 되찾을 날은 반드시 올 것으로 보인다. 파도가 자연스레 밀려오듯 말이다. 송광민은 20일부터 본격적으로 한화 2군에 합류해 훈련과 실전을 병행하게 된다.
대전=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