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두산 유희관(27)은 상식에서 벗어난 선수다.
때문에 유희관은 뚜렷한 한계가 있는 선수다. 그런데 기록 하나만 살펴보자.
올 시즌 30이닝 이상 소화한 선수들 중 경기당(9이닝) 탈삼진 비율에서 그는 8위다. 비율은 8.10이다. 매우 높은 수치다. TOP 10에 들어있는 선수들 대부분이 150㎞의 패스트볼을 뿌리는 선수들이다. 130㎞ 중반대의 패스트볼을 가지고 삼진을 잡는다는 것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이미 알려진 또 하나의 상식을 벗어난 에피소드. 두산 김진욱 감독은 "보통 멀리 던지기와 구속은 비례한다. 유희관은 뛰어난 멀리 던지기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공은 느리다"고 했다.
그는 20일 전화통화에서 농담섞인 말로 "신이 저에게 스피드가 아니라 손장난을 주신 것 같다"고 했다. '손장난'이란 변화구를 던질 때 손가락 감각을 뜻한다.
그는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구종을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패스트볼과 커브, 슬라이더를 던진다. 그리고 포크볼과 싱커를 함께 던진다.
그는 장충고 3학년 때 싱커를 익혔다. 그리고 중앙대 3학년 때 본격적으로 포크볼을 던지기 시작했다. 보통 한 구종을 습득하는데 1~2년 정도가 걸린다. 그러나 류현진이 서클 체인지업을 장착했던 것처럼 유희관도 별다른 부작용없이 빨리 익혔다. 그는 "변화구를 익힐 때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재미있었다"고 했다.
'손장난' 역시 타고나는 부분이 있다. 유희관은 당구, 농구 등 공을 가지고 하는 종목은 감각적이었다. 때문에 그의 대학 별명은 '야구빼고 다 잘해'였다.
포크볼과 싱커를 함께 던지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두 가지 구종을 자유자재로 던지는 것은 매우 어렵다. 포크볼은 위에서 내려찍듯 던져야 한다. 반면 싱커는 릴리스를 할 때 비틀어야 한다. 메커니즘 자체가 좀 다르다. 따라서 두 구종을 함께 구사할 때 투구 밸런스가 흐트러질 위험성이 높다.
유희관은 두 가지 구종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더 나간다. 비밀은 그의 두 가지 싱커에 있다. 지난해 홀드왕 박희수의 주무기는 '투심성 체인지업'이었다. 싱커와 투심 패스트볼, 그리고 서클 체인지업은 궤도가 비슷하다. 좌완투수 박희수의 경우 우타자 기준으로 볼 때 바깥쪽 패스트볼처럼 들어오다가 급격히 가라앉는다. 스피드를 더하면 투심 패스트볼, 떨어지는 낙폭에 중점을 두면 서클 체인지업으로 변환할 수 있다. 박희수는 이런 투심패스트볼과 서클 체인지업의 스피드와 낙폭을 자유자재로 섞으며 '투심성 체인지업'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유희관의 싱커도 비슷하다. 그는 두 가지의 싱커를 완벽하게 던진다. 스트라이크를 잡을 때와 타자를 유인할 때 스피드와 낙폭에 대한 변화를 선택적으로 구사한다. 여기에 정교한 제구력이 뒷받침된다.당연히 상대 타자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타격하기 전 타자들이 보통 투수들이 3~4가지 중 1가지를 노린다면, 유희관에게는 6개 중 1가지를 노려야 하기 때문이다. 볼카운트가 몰릴 경우에는 확률이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7개의 삼진을 잡은 19일 대전 한화전을 살펴보자. 유희관은 2회 선발 이정호에 이어 등판, 6⅓이닝 3실점했다. 5회와 7회에는 세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았다.
5회 오선진 조정원 박노민과 상대했다. 오선진에게 빠르게 오다가 떨어지는 투심성 싱커로 헛스윙 삼진. 조정원에게도 떨어지는 싱커로 헛스윙 삼진. 박노민에게는 타자 안쪽 꽉 찬 직구를 돌려세웠다.
7회에는 김태완에게 가운데 몰리는 패스트볼을 던져 헛스윙 삼진. 김경언에게도 바깥쪽 꽉 찬 패스트볼로 스트라이크 아웃을 만들어냈고, 오선진에게 낙찬 큰 커브를 두 개 던진 뒤 안쪽 패스트볼로 삼진을 낚았다.
카운터를 슬라이더나 커브로 잡고, 결정구를 싱커나 포크, 그리고 패스트볼로 삼았다. 즉 싱커와 포크볼을 자유자재로 던질 수 있기 때문에 컨트롤된 패스트볼이 위력을 발했다.
김태완의 경우가 상징적인 장면이다. 김태완은 타격감이 급격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상황. 때문에 유희관의 5구 실투성 가운데 패스트볼을 놓칠 가능성은 낮았다. 하지만 헛스윙이었다. 4구째 바깥으로 휘는 싱커를 보여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 김태완 입장에서는 떨어지는 싱커와 포크, 그리고 짧게 휘는 슬라이더까지 신경써야 하는 순간. 때문에 유희관의 패스트볼이 통했다.
군에서 제대한 뒤 맡는 첫 시즌. 올해 그는 19경기에 출전, 2승3홀드1세이브, 평균 자책점 2.40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행보가 어떻게 될 지는 아직까지 알 수 없다. 패스트볼의 한계때문에 시즌 중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볼끝'이 무뎌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희관은 "체력이 떨어져 볼끝이 무뎌지면 안된다"고 했다. 그럴 경우 느린 구속 때문에 공략당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투구시 그의 하체 이동은 매우 이상적이다. 컨트롤이 좋은 이유. 게다가 많은 투구를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다. 대학 시절 경기당 100개 이상은 거뜬히 던졌다.
따라서 그의 위력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완벽하게 던지는 6구종과 볼끝이 살아있는 패스트볼, 그리고 정교한 제구력. 여기에 투구 체력도 대단하기 때문이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