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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번째 짜릿함' 강명구, 이 남자가 사는 법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3-05-21 11:43 | 최종수정 2013-05-21 11:43


지난해 SK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주루 플레이로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 삼성 강명구.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주전이 아닌데 아프지 않은 한 좀처럼 엔트리에서 빠지지 않는 선수가 있다.

수수께끼 정답은? 삼성 강명구(33)다. 그는 매 경기 딱 한 순간을 위해 기다린다. 1점이 꼭 필요한 긴박한 승부처. 일 할 시간이다. 임무는 대주자. 주로 1루에 선다. 벤치에서는 딱 한번 빼들 수 있는 카드. '대주자 강명구'란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 상대 벤치에 보내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도루를 하겠다'는 뜻이다. 일종의 예고 도루라고 해야할까…. 상대 배터리가 분주해진다. 비상이다. 수시로 견제가 날아온다. 하지만 본인은 이렇게 말한다. "타자와의 타이밍 싸움이라면 모를까 견제는 아무리 많이 해도 (제 도루에는) 큰 영향을 받지는 않아요." 대도다운 자신감이다.

그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이다. 자신의 임무를 정확히 알고, 노력하고, 즐길 줄 안다. "상대 배터리와의 타이밍 싸움과 흔드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타고난 재능에 즐기며 노력하는 자. 당할 자가 없다. 도루는 어느덧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통산 101 차례의 도루 성공. 그중 딱 4개를 뺀 97개의 도루가 대주자로 성공시킨 경우다. 실패는 22번 뿐이다. 전설적 홈런 타자 베이브 루스가 '예고 홈런'을 날렸듯 강명구는 온갖 견제를 뚫고 '예고 도루'를 성공시키고 있는 셈. 진정한 스페셜리스트다.

그는 원래 도루를 잘 했을까. 초등학교 시절 육상을 했을 정도로 빠른 발은 타고났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스피드는 도루의 한가지 요소일 뿐. 프로야구 초창기 롯데가 전문 대주자 요원으로 영입했던 스플린터 서말구씨의 실패 사례도 있지 않은가.

최고의 도루 전문가로 설 수 있었던 비결. 두가지가 있다. 노력과 자신감이었다. "프로에 와서 김일권 김평호 코치님께 투수의 버릇, 스타트, 주법 등에 대한 노하우를 배웠습니다." 이론으로 무장해도 정작 실전에서 써 먹지 못하면 무용지물. 자신감이 필요했다. 그 선물은 선동열 전 감독에게서 받았다. "2005년인가 수원 경기였던 걸로 기억해요. 선 감독님께서 '넌 죽어도 좋으니까 무조건 뛰라'고 하셨어요." 실행하고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자신감도 발전했다. 이제는 자신만의 확고한 이론도 생겼다. 노하우에 대해 그는 "영업비밀"이라며 웃는다.

최고의 도루 전문가. 포스트시즌 같은 박빙의 큰 경기에서 그의 가치는 배가된다. 타 팀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두려운 존재다. 두산 김진욱 감독은 지난 16일 삼성전에 앞서 "도루하겠다고 나오는 선수 아닌가. 그런데도 잡기 어렵다. 제구력에 자신이 없는 투수면 피치아웃을 시키는 것도 부담스럽고…. 훌륭한 불펜 투수만큼의 가치가 있는 특화된 선수"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노력한다. 상대 투수에 대한 비디오 분석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일반 야수와 달리 엑스트라 분석 시간도 빼놓지 않는다. 일반 타자와 달리 구종 분석이 나닌 주로 투구 동작에 대한 시간을 많이 할애한다. "타격도 중요하지만 우선 이게 제 일이고 감독님께서 여기(1군)에 저를 데리고 다니는 이유니까요."

타고난 재능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으로 최고의 경지에 우뚝 선 강명구. 그에게는 고충이 없을까. "저는 거의 중요한 상황에서 나오잖아요. 승패가 왔다갔다 하는…. 만약 죽으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아요. 잠도 못자죠." 하지만 그를 뛰게 만드는 힘은 101차례 맛본 성공의 짜릿한 희열감이다. "어떨 때는 제 스스로가 대견할 때도 있어요. 너무 기분이 좋아서 혼자 박수칠 때도 있다니까요." 노력의 대가를 맛본 자. 그 짜릿함을 잊을 수 없다. 그 맛을 또 보기 위해 그는 오늘도 달린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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