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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덕수고를 졸업한 이정호(20)는 야구와 공부를 병행해 서울대에 진학한 첫 번째 주인공이다. 지난해 말 서울대 사범대는 체육교육과 수시에 단체종목 4명, 개인종목 2명, 무용 4명, 체육리더십 4명 총 14명을 뽑았다. 이정호는 당당히 단체종목 4명 중 한 자리에 들었다.
이정호가 대학생이 된지 이제 두 달이 지났다. 체육계와 교육계는 이정호가 과연 어떻게 성장할 지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는 몇 해전부터 '공부하는 운동 선수를 기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엘리트 체육 선수도 초중고교 시절 운동에만 매달릴게 아니라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호는 이 정책의 본보기가 되는 사례다. 이정호가 서울대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 지 궁금했다. 그래서 지난달 29일 서울대 캠퍼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시간이 부족해서 잠을 못 자는 날도 있다. 오늘은 2시간 자고 학교에 왔다"고 했다. 이정호는 고교때 처럼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이광환 감독이 이끌고 있는 서울대 야구부에 가입했다. 서울대 야구부는 전문적인 엘리트 훈련을 받은 선수들이 아닌 일반 학생들이 동아리 처럼 꾸려왔다. 이정호는 서울대 야구부에 들어간 첫 엘리트 출신 선수다. 그의 원래 포지션은 외야수. 하지만 서울대 야구부 사정상 투수도 겸하고 있다. 불가피하게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서울대 야구부는 최근 대학리그전에서 세계사이버대(1대11), 우석대(0대11)에 연달아 졌다. 이정호가 안타도 치고 도루도 하고, 마운드에도 올랐지만 대패를 막지 못했다. 이정호 혼자서 발버둥을 친다고 전문적인 야구 선수들과 싸워 이기기는 어려웠다. 현재 서울대엔 이정호와 야구 실력으로 경쟁할 선수는 없다. 그는 "간혹 이러다 내 실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고 했다.
이정호는 두 가지 꿈을 갖고 있다. 최종 목표는 야구 행정가다. 또 짧게라도 프로무대에서 선수 경험을 쌓길 원한다. 그런데 이정호가 이렇게 야구를 해서 프로팀의 지명을 받을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이정호의 덕수고 야구부 졸업 동기는 총 11명. 2명(한화 한승택, NC 유영준)이 프로팀에 갔고, 나머지 9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그는 친구들이 어떤 길을 가고 있는 지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그들 보다 야구 실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요즘 그의 최대 고민거리는 야구가 아니다. 글쓰기와 독서라고 했다. 이정호는 주위 친구들이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보는 게 싫었다고 했다. 운동 하나 제대로 하기도 힘든데, 공부까지 해서 서울대에 진학했느냐는 시선이었다. 이정호는 공부만 하고 서울대에 온 학생들과 출발점이 달랐다. 그가 느낀 가장 큰 차이는 글쓰기라고 했다. 3학점짜리 체육교육론 수업에선 매주 책을 읽고 관련 리포트를 제출하게 돼 있다. 글쓰기 훈련이 부족했던 이정호에게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기초교양 과목인 대학국어에서도 같은 문제에 부딪혔다. 공부만 하고 온 학생들과는 리포트에 대한 접근이 달랐다.
그래서 이정호는 잠이 항상 부족하다. 덕수고 때 6시간을 잤는데, 요즘에는 하루 평균 5시간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부족한 잠은 낮잠으로 틈틈이 채운다.
제2의 이정호를 꿈꾸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게 힘들다. 특히 고교 때는 더 그렇다. 하지만 공부만 아니라 책을 더 많이 읽고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덜 힘든 초중 때 독서를 해 기초를 다져두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다."
이광환 감독은 이정호에게 자주 이렇게 조언한다고 했다. "정호야, 공부는 형들에게 배우고, 너는 야구를 형들에게 가르쳐줘라."
이정호는 누구도 걸어가지 않았던 힘든 도전을 하고 있다. 둘 다 잡기 어려운 두 마리 '토끼'를 계속 쫓고 있다. 이정호가 어떤 선례를 남기느냐는 무척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성공해야 '공부하는 운동 선수'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그래야 학교 스포츠도 변하게 된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