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로 스포츠팀은 엄밀히 따져보면 프로라고 보기 어렵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는 주식회사 형태로 모기업과 분리돼 있지만 프로농구나 프로배구는 그 정도의 규모가 되지 않아 기업의 한 부서에 소속돼 있다. 모기업으로부터 지원받아야만 구단을 운영할 수 있는 구조다. 구단은 여러가지 형태로 돈을 벌고 있지만 팀 운영비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대다수 프로야구단의 1년 운영비는 300억원이 넘는다. 선수들의 연봉과 전지훈련, 1,2군의 원정경기 비용 등에 많은 돈이 들어간다. 한해 총 관중이 200만명선이었던 2000년대 초반엔 거의 대부분의 운영비가 모그룹에서 나왔다. 인기가 없으니 관중도 적고, 당연히 입장 수입도 보잘 것 없었다. TV중계도 해주는 것이 고마울 정도였다.
야구인기↑, 수입도 ↑
프로야구는 국내 최고의 스포츠 컨텐츠로 각광을 받고 있다. 당연히 중계권료가 오르고 있다. 프로야구의 타이틀 스폰서를 하기 위해서도 많은 액수가 필요해졌다. 한동안 올리지 못했던 프로야구 입장료도 최근엔 많이 상승했다. 그럼에도 야구장엔 관중이 꽉 찬다. 당연히 관중 수입도 구단의 수입에 큰 역할을 차지하게 됐다. 야구 인기가 높아지자 기업들도 돈을 풀고 있다. 야구장의 광고판엔 빈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프로 구단과 스폰서 협약을 해서 야구장과 언론을 통한 광고효과를 노린다.
이젠 야구 유니폼이 최고의 광고판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유니폼에 붙는 기업 광고는 대부분 구단에 지원을 하는 모그룹의 계열사였다. 그에 따른 광고비는 받지 않는다. 이미 많은 액수를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모기업의 지원을 광고비로 책정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KIA 유니폼에 금호타이어 로고가…
그러나 최근 모그룹이 아닌 다른 기업의 로고를 조금씩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롯데는 온라인 게임업체 넥슨의 로고를 유니폼 상의에 붙였다. KIA도 올시즌 유니폼 소매에 '금호타이어'를 붙이기로 했다. 올시즌 새롭게 출발하는 NC도 유니폼과 헬멧, 모자에 많은 기업의 이름이 들어간다. 야구 경기를 하는 내내 방송 노출이 되고, 언론에 사진이나 동영상을 통해 또한번 노출이 된다. 여러 자료 화면이나 사진으로 광고효과는 한 시즌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모기업이 없는 넥센 히어로즈는 메인 스폰서인 넥센을 포함해 100여개의 기업과 스폰서 계약을 해 운영비를 조달하고 있다. 처음 프로야구에 발을 디뎠을 땐 1∼2년 만에 무너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히어로즈는 올해로 출범 6시즌을 맞았다. 지난해부터는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아직 적자지만 모기업 없이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야구의 인기가 계속 커지면서 히어로즈가 더욱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자립? 아직은…
야구의 인기가 많아져 관중 수입이 늘어나고 예전엔 모기업의 영역이었던 유니폼과 헬멧, 모자 등에도 외부 기업의 광고로 채워진다면 모기업의 지원 없이 살아가고 나아가 흑자 프로구단시대를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많다. 지난해 100만명 이상의 관중을 동원한 A구단의 경우를 보자. 이 구단은 홈과 원정 관중 수입으로 80억원 이상을 벌었다. 또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중계권료 등으로 40억원을 받았다. 상품 판매와 야구장 내 식음료 임대로 약 50억원 가까이 벌어들였다. 여기에 스폰서십과 광고 수입이 약 70억원 정도였다. 이렇게 벌어들인 액수가 약 240억원. 그러나 A구단은 모기업으로부터 100억원 가량을 지원 받았다고 한다. 많이 벌어들였지만 그만큼 구단을 운영하기 위해서 쓸 돈도 많다는 것.
큰 구장을 가지고 있는 두산이나 LG,SK, 롯데 등은 이정도의 수입을 벌어들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구나 광주 등 작은 구장을 쓰는 삼성, KIA는 아무래도 관중수입이 적기 때문에 그만큼 모기업의 지원이 더 필요해진다.
자립을 위해서는…
메이저리그의 경우 관중 수입과 중계권료, 광고료 등으로 충분히 흑자를 내면서 좋은 선수 영입을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쓴다. 한국 프로야구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메이저리그처럼은 쉽지 않다. 히어로즈처럼 모기업의 이름 대신 다른 기업의 이름을 쓰는 네이밍 스폰서를 끌어들이면 독립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의견을 제시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모기업 만큼의 액수를 지불하고 네이밍 스폰서를 할 기업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
한 구단 관계자는 "아무리 인기 구단이라고 해도 네이밍 스폰서에 100억원을 받는 것은 무리다. 기껏해야 50억∼60억원 정도 아니겠냐"고 했다. 네이밍 스폰서를 끌어들인다고 해도 50억원∼100억원은 더 벌어야 자립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자립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팬들을 야구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팬들이 많아야 광고도 늘고 중계권료나 타이틀 스폰서 액수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경기의 질을 높여 팬들이 야구를 계속 좋아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필수. 여기에 시설 확충이 가장 시급하다. 시설을 더 좋게, 더 편리하게 갖춰야 팬들이 더 찾아올 수 있다. 광주와 대구에 새 구장이 들어서는 것은 야구의 인기 증가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구단이 야구장을 직접 운영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현재는 모든 구단이 야구장을 지방자치단체에 빌려 쓰고 있다. 야구장을 팬들이 이용하기 좋게 꾸미고 싶어도 구장을 소유한 지자체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모 구단 관계자는 "야구장과 멀티플렉스 극장을 비교해 보면 극장이 훨씬 좋지 않나. 그렇게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극장에 가고 싶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야구장을 마음껏 운영할 수 있다면 구단에서 투자를 할 수 있다. 홈경기 60여 게임을 치를 때만 사람들이 오는 곳이 아니라 야구경기가 없는 날에도 즐길 수 있도록 시설을 확충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법적인 문제와 특혜 시비 등으로 인해 구단이 야구장을 제대로 운영하기란 쉽지 않다.
9구단인 NC와 10구단인 KT는 창원시와 수원시로부터 25년간 구장 사용권을 확보했다. NC와 KT는 자립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을 갖춘 셈이다. 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