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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에서 4번 타순이 어려운 것은 그 무게감 때문이다. 우선 상대편이 4번 타자를 경계한다. 그래서 4번에겐 투수와 포수가 모두 신경을 바짝 쓴다. 치기 좋은 공을 주지 않는다. 4번 타자도 한 팀의 중심에 자신이 선다는 심적 부담을 갖기 마련이다. 이래서 4번 타자는 단순히 네 번째 등장하는 선수가 아니다. 일부 선수들은 그 어려움을 덜기 위해 일부러 4번에 대한 부담이 없다고 애써 말한다. 따라서 타순을 짜야하는 사령탑은 4번 때문에 자주 골머리를 앓는다. 지난해 통합 챔피언 삼성의 류중일 감독도 시즌 초반 최형우(삼성)가 흔들리면서 속앓이가 심했다. 결국 이승엽→박석민으로 갔다가 한국시리즈 때 최형우로 돌아왔다. 2013시즌 페넌트레이스 개막을 앞두고 9개 구단 감독들의 다수가 4번 타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4번 타자를 확정한 팀은 삼성(최형우) 넥센(박병호) NC(이호준) 정도다. 나머지 6개팀이 미확정이라고 봐야 한다. 이호준을 NC에 빼앗긴 SK는 박정권 최 정 안치용 등을 두고 테스트 중이다. 두산은 김동주를 1순위로 두고 홍성흔 윤석민 등을 저울질하고 있다. 김시진 롯데 감독도 전준우를 마음에 둔 가운데 강민호 김대우에게도 가능성을 열어놨다. KIA는 이범호 나지완 최희섭 3명 중에서 한 명을 낙점해야 한다. LG는 정성훈 박용택 중 골라야 한다. 한화는 김태균 김태완 중 한 명이다.
SK는 이호준이 NC로 이적하면서 바로 공백이 찾아왔다. 두산도 김동주 홍성흔이 은퇴하면 윤석민에게 기대야할 판이다. 롯데는 이대호(오릭스) 홍성흔(두산)이 차례로 빠지면서 타자 중심에서 마운드 중심으로 팀 컬러가 바뀌었다. KIA는 몇 년째 이범호 최희섭 나지완이 될 듯 하면서도 터지지 않고 있다. 2009년 36홈런을 쳤던 김상현이 제대로 커주지 못한게 아쉬웠다. LG는 수년째 늘 보던 정성훈 박용택 등에 기대고 있다. 한화도 김태균과 쌍포를 이룰 거포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고민이 한두 시즌에 그칠 것 같지 않다. 한 팀을 대표하는 슬러거는 금방 만들어지지 않는다. 심정수 이대호 이후 국내야구를 대표하는 강력한 4번 타자의 맥은 끊어진 셈이다. 김상현 최형우 박병호 등이 등장했지만 아직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 꾸준한 맛이 떨어졌다.
유망주들의 다수가 어릴 때부터 타자 보다 투수에 흥미를 갖는다. 박찬호 김병현 등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들이 성공한 게 영향을 주었다. 류현진이 총액 700억원(포스팅비+연봉)에 달하는 초대형 계약을 하면서 LA 다저스로 진출한 것도 성장하는 선수들의 진로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게다가 프로팀들은 최근 외국인 선수 2명을 전부 투수로 뽑는다. 팀 성적을 내기 위해선 투수를 외국인 선수로 채우는 게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타이론 우즈(옛 두산) 같은 강력한 외국인 타자를 구경하기 어렵게 됐다. 그런 상황에서 4번 타순을 전부 토종 선수로 채우려고 하다보니 선수가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일부 구단에선 지난 겨울 스토브리그 때 외국인 타자 영입을 검토했었다. 하지만 결국 외국인 선발 투수를 데려오는게 타자를 뽑는 것 보다 팀 성적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했다. 이렇게 되면서 팬들의 볼거리는 항상 똑같다.
벌써부터 일부에선 올해도 40홈런 이상을 치는 '괴물' 거포를 보기 어렵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대호가 2010년 44홈런을 친 게 마지막이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