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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준비성은 알아준다. 모든 일을 진행시킬 때 미리 준비하고 일정한 메뉴얼에 따라 착착 진행시킨다. 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직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진행형이지만 그후를 대비하고 있다. 벌써부터 현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는 야마모토 고지 감독에게 계속 사령탑을 맡기기로 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일본 프로야구 12개구단은 대회 4강까지 올려놓은 야마모토 감독의 지도력을 인정했고 계약 연장을 요청할 것이라고 일본 스포츠전문지 스포츠닛폰이 12일 보도했다.
야마모토 감독은 일본이 생각한 첫 번째 카드는 아니었다. 일본은 이번 WBC를 준비하면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었다. 아키야마 소프트뱅크 감독, 하라 요미우리 감독 등이 사무라이 재팬 사령탑 제의에 손사래를 쳤다. 설득과 거절 끝에 지휘봉은 야마모토 감독에게 돌아갔다. 그는 '스몰볼' 야구의 신봉자다. 히로시마에서 두 차례 감독을 역임했지만 승률이나 대외적 인기는 떨어졌다. 제1회 대회 감독 오 사다하루와 2회 사령탑 하라 감독과 비교했을 때 실력은 밀리지 않았지만 이름값이 떨어졌다.
야마모토 감독에게 떨어진 숙제는 WBC 3연패였다. 그런데 선수 차출에 적신호가 켜졌다. 최강팀을 꾸리기 위해 메이저리거들에게 참가를 요청했지만 교타자 스즈키 이치로(뉴욕 양키스)와 선발 마쓰자카 다이스케(클리블랜드) 구로다 히로키(뉴욕 양키스) 다르빗슈 유(텍사스) 이와쿠마 히사시(시애틀) 등이 소속팀 훈련에 집중하고 싶다며 거부했다.
야마모토 감독은 망설임없이 '메이드 인 재팬'을 선언했다. 이전 두 대회와는 다른 식으로 세계 야구에 도전했다. 순수하게 일본 국내야구에서 뛰고 있는 선수로만 엔트리를 구성했다. 목표는 'V3'가 아닌 '미국에 가자'로 낮춰 잡았다. 준결승전이 벌어질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면 그때부터는 어떤 일도 가능하다고 봤다. 일본은 그 목표를 이미 달성했다.
일본 12개구단 대표자들은 야마모토 감독의 용병술과 야구 철학에 합격점을 줬다. 사무라이 재팬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잡았다는 평가다.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판단, 유연하게 선수를 적재적소에 기용했다. 또 미디어에 대한 차분한 대응과 팬 서비스 면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따라서 앞으로도 일본 대표팀의 얼굴로 충분하다고 본 것이다.
일본야구기구(NPB)는 야마모토 감독에게 일본의 야구의 미래를 맡길 예정이다. 국제야구연맹(IBAF)은 오는 2015년 3월 일본에서 국제대회 '프리미어 12'를 개최한다. 프리미어 12는 세계랭킹 상위 12개팀이 참가하는 대회다. 젊은 유망주들이 출전할 예정이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WBC에서 본선 2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이전 두 대회 4강과 준우승 성적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복병 네덜란드에 0대5로 굴욕적인 패배를 당한게 결국 부진한 성적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후 WBC에 대한 차분한 평가와 대책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일본이 성공을 거두고도 이미 다음을 준비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09년 이사회를 열어 '대표팀 감독은 현역감독으로서 전년도 우승팀 감독을 총재가 선임한다'는 야구규약을 만들었다. 중압감 때문에 감독을 맡지 않으려는 분위기 속에서 충분히 공감을 할만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현역 프로팀 감독들은 끊임없이 부담감과 효율성을 내세워 전임감독제 도입을 주장해 왔다. 당사자들이 원하지 않고, 효율성에 문제가 있다면 규정을 고치면 된다.
KBO와 9개 구단들은 대표팀 감독 선임 등 WBC 실패 대책 논의를 미루면 안 된다. 특히 감독 선임 문제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 현역 프로 감독의 다수가 바라는 전임 감독제에 대한 심도있는 검토가 있어야 한다. 한국 야구가 탈락 충격에 주춤하고 있을 때 일본 야구는 세계 정상 유지를 위해 달려가고 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